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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순천 동화사 ‘석가후불도’ 및 목조금강역사상 2구

기자명 이숙희

도난 사실 감추려 덧칠하고 제작시기 물로 지워

1988~1992년  대각국사 창건한 순천 동화사서 연쇄 도난 발생 
지난해 7월 조계종·문화재청·경찰 공조로  33년 만에 회수 성공 
16세기 양식 가진 ‘석가후불도’지만 도난 과정에서 화기 사라져

사진1) 동화사 금강역사상, 조선 후기,  높이 105cm. 필자 제공.
사진1) 동화사 금강역사상, 조선 후기,  높이 105cm. 필자 제공.

전라남도 순천시 별량면 대룡리 282번지에 위치한 동화사의 불교문화재들이 몇 년에 걸쳐 연쇄적으로 도난됐다. 1988년 3월부터 1992년 3월에 이르기까지 응진당의 금강역사상 2구를 비롯하여 ‘석가후불도’와 부도 2기가 도난된 것이다. 그중 부도 1기는 회수되었고 불화와 금강역사상은 2020년 7월경에 되찾아왔다. 33년간 은닉돼 온 것이 문화재청과 조계종, 경찰의 긴밀한 공조수사를 통해 서울의 한 개인 사립박물관장 수장고에서 발견된 것이다.

순천 동화사는 1047년 고려 문종 때 대각국사 의천이 창건한 사찰로 알려져 있지만 구체적인 연혁은 알 수 없다. 조선시대의 기록인 ‘낙안군개운산동화사중창기’에 의하면, 동화사는 정유재란 때 폐사됐다가 1601년에 신총이 대웅전을 중건한 후 1630년에 계환에 의해 중창됐고 이후 몇 차례의 불사를 통해 지금의 모습을 갖추게 됐다고 한다. 경내에는 고려시대의 삼층석탑(보물 제831호)과 조선 후기의 대웅전(유형문화재 제61호), 부도 등이 남아 있어 11세기의 창건설을 말해준다.

회수된 동화사 금강역사상 2구는 석가삼존불상을 주존으로 모시는 응진당(應眞堂)에 십육나한상과 범천·제석천상, 사자(使者)와 함께 봉안돼 있었다(사진 1). 금강역사가 하는 역할은 무엇일까? 금강역사는 사찰의 입구나 문을 지키는 한 쌍의 신장상으로 인왕(仁王), 이왕(二王), 집금강신(執金剛神)이라고도 부른다. 보통 사찰의 입구나 응진당 또는 명부전 안에 한 쌍을 마주보게 해 세우는 것으로 사악한 기운이 성스러운 경내에 들어오는 것을 막는 수문장의 역할을 한다. 원래 인도의 민간신인 야차(藥叉)에서 유래한 것인데 불교에 수용되면서 옷을 입지 않은 상반신에 천의만 걸치고 팔을 들어 강력한 힘을 강조하는 모습으로 표현됐다. 한 상은 입을 벌리고 있는 ‘아(阿)금강역사’로 손에 금강저와 같은 무기를 들고 있고 다른 한 상은 입을 꽉 다물고 있는 ‘훔금강역사’로 주먹을 쥐고 치려고 하는 권법의 자세다. 그런데 명부전에는 도교에서 유래된 지옥의 장군으로 흔히 삼원장군(三元將軍: 상원주장군, 중원갈장군, 하원당장군)이 배치돼야 도상적으로 맞다. 그러나 시대가 내려가면서 삼원장군은 마을을 지키는 장승과 같은 역할로 점차 바뀌게 되고 명부전에는 장군상 대신 금강역사상이 배치됐다. 그래서 명부전에 가면 험상궂은 얼굴로 칼을 들고 있는 장군상이 서 있거나 험한 얼굴에 맨주먹을 쥐고 있는 금강역사상을 만날 수 있는 것이다. 금강역사는 조각상 외에 석탑이나 부도에 새겨지기도 하고 ‘신중탱’과 같은 불화에 권속으로도 그려졌다.
 

사진2) 금강역사상 뒷면 복장공. 필자 제공.
사진2) 금강역사상 뒷면 복장공. 필자 제공.

동화사 금강역사상 2구는 높이 105cm로 도난된 후에 개채되어 얼굴과 옷의 색깔이 확연하게 다르다. 대좌도 흰색으로 다시 칠한 것이다. 한쪽 손의 주먹을 불끈 쥔 자세를 하고 있지만 무서운 형상이라기 보다는 동자상 같은 귀여운 모습이다. 상체가 하체에 비해 크고 다리는 짧은 편으로 신체비례가 맞지 않고 육중한 몸에 어울리지 않게 발가락까지 표현되어 앙증맞은 느낌을 준다. 그러나 꽉 다문 입과 목에 표현된 힘줄 등은 금강역사상의 힘을 강조하는 듯하다. 머리는 상투 모양으로 틀어 올리고 그 위에 화려한 관을 쓰고 있으며 눈썹과 수염은 녹색을 두텁게 칠하여 강조했다. 몸에는 바지 형태의 군의(裙衣)만 걸쳤는데 어깨 위에는 녹색과 흰색, 붉은색의 천의를 걸치고 있고 옷자락은 길게 늘어져 발등을 감싸고 있다. 뒷면에는 머리에 원형의 복장구멍이 있고 등과 다리에도 장방형의 복장구멍이 있는데 내부는 비어 있는 상태이다(사진 2). 아쉽게도 복장물을 잃어버려 금강역사상의 조성시기를 정확하게 알 수 없지만 크기가 적당한 체구와 어린아이와 같은 모습에서 조선 후기로 볼 수 있는 상이다.

사진3) 동화사 석가후불도, 조선 말, 크기 282x242.6cm. 필자 제공.
사진3) 동화사 석가후불도, 조선 말, 크기 282x242.6cm. 필자 제공.

회수된 ‘석가후불도’는 대웅전 목조삼세불좌상 뒤에 놓여 있었던 것으로 3m가 넘는 대형의 후불도다(사진 3). 전체 바탕을 붉은 색으로 칠하고 백색 안료를 사용해 그린 선묘화의 일종으로 16세기 이후에 나타나는 불화 형식이다. 이 후불도 역시 1992년 3월 1일 도난 이후 화면을 개채했고 테두리를 두른 장황(裝潢)도 비단을 덧대어 새로 했다. 그래서 원래 족자 형태의 불화가 액자 형태로 변형되었고 흰색의 선묘는 짙은 붉은 색에 덮여 잘 보이지 않는다. 이처럼 불화의 형태와 관련있는 장황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그냥 잘라 버리거나 새로 보수하게 되면 원형을 알 수 없는 경우가 상당수 있다.

화면의 구성은 연화대좌 위에 앉아 있는 항마촉지인(降魔觸地印)의 석가불좌상을 중심으로 좌우에 4구의 보살입상을 협시로 배치했다. 석가불좌상은 한쪽 어깨를 덮은 우견편단의 옷을 입고 중앙에 크게 그려져 존재감을 드러낸다. 머리 위에는 이중의 계주(髻珠)가 놓여 있고 그 주위로 비치는 세 줄기의 빛은 여래의 영묘하고도 불가사의한 힘을 표현한 것이다. 협시보살상 4구는 머리에 두건을 쓰고 손에 석장과 보주를 쥐고 있는 지장보살상만 확인된다. 나머지 보살상은 연꽃가지를 손에 쥐고 있지만 도상적 특징이 뚜렷하지 않아 존명을 알 수 없다. 아마도 ‘법화경’을 배경으로 석가모니가 인도의 영축산에 머물면서 설법하는 모습을 그린 ‘석가후불도’로 볼 수 있다. 다만 석가의 협시보살 가운데 아미타불의 협시인 지장보살상이 등장한 것은 당시 유행했던 아미타신앙을 수용한 것으로 조선 후기 불화의 특징이기도 하다. 19세기 조선 말에는 이처럼 특정한 불교의 주제 보다는 여러 신앙이 복합적으로 결합된 불화들이 많이 제작됐다. 매우 단순한 구성이지만 화면의 크기나 주존불을 비롯한 협시보살의 간략화된 표현, 협시보살 모두 입상인 점은 조선 후기의 ‘괘불도’를 보는 듯하다. 이런 스타일의 후불도는 19세기에 많이 제작되었으며 대웅전을 비롯하여 응진전과 팔상전에 주로 봉안됐다.

화기는 화면의 아랫쪽 양 끝에 있는데 인위적으로 물로 지운 흔적이 있어 원봉안처와 제작시기를 확인할 수 없다. 이렇듯, 불화의 화기를 일부러 지우거나 잘라서 훼손하는 것은 대개 도난된 불화임을 감추기 위해 봉안되었던 사찰명을 알 수 없도록 한 것이다.
순천 동화사와 같이 금강역사상과 후불도가 잇달아 도난된 것은 인적이 드문 깊은 산중에 위치하고 있어 보안장치가 체계적이지 못하고 미비하기 때문이다. 특히 불화는 돌이나 금속으로 만들어진 불상에 비해 무게가 훨씬 가볍고 부피도 적어 도난당하는 경우가 상당히 많다. 설령 규모가 큰 후불도라 하더라도, 대부분 족자 형태라 그림부분만 오려서 접거나 둘둘 말면 쉽게 가져갈 수 있는 것이다.

이숙희 문화재청 문화재감정위원 shlee1423@naver.com

[1598호 / 2021년 8월25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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