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76. 출생을 강조하는 바라문을 교화하다

태어난 신분이 아닌 행동에 따라 바라문이 된다

신분 질서 어기면 죽이는 시대에
부처님은 승단 내 신분질서 혁파
축생은 출생에 따라 특징 다르나
사람은 태생에 따른 차이가 없어

흔히 하는 말 가운데 하나가 그 사람을 알려면 ‘출신’을 보아야 한다는 말이 있다. 이 말을 들으면 대개는 ‘무슨 말이야?’라고 반응을 하지만, 실제 그 사람의 출생에 대해서 완전히 무시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 사람의 출신이란, 그 사람의 배경을 말하는 것이기도 하다. 아버지가 누구인지, 부와 권력은 얼마나 갖고 있는지, 인맥은 어떠한지 등. 이는 예나 지금이나 큰 차이가 없는 것 같다. 

고대인들은 대부분 신분사회 속에서 살았다. 그만큼 신분질서로부터 자유롭지 못했고, 어떤 신분을 갖고 있는지에 따라 사회적 역할과 인간들 사이의 위계질서가 정해지게 된다. 그러한 시대에 신분에 대해서 부정하거나 비판한다는 것은 상상하기도 어려운 일이다. 설혹 용기를 내어 그렇게 한다고 해도 사회적으로 지탄을 받거나 심지어 목숨을 잃기도 한다. 이러한 예는 역사 속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그런데 부처님은 이러한 출생에 따라 신분질서를 정면으로 부정하셨다. 단순히 말로만 부정한 것이 아니라, 실제 승단 내에서 이러한 신분질서 자체를 폐기하고, 인정하지 않으셨다. 국가에는 법령이 있고, 이 법령은 사회질서를 유지하는 기능을 한다. 그렇기에 사회질서 유지에 반하는 것은 법에 의해 처벌을 받게 된다. 그렇다면 부처님의 출생에 따른 신분질서를 부정한 것은 법을 위반한 것이고, 단체를 구성하여 사회법에 정면으로 반하는 것을 실현한 것은 더욱 큰 죄가 될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부처님은 이러한 사회적 관념과 법이 잘못된 견해로 인해 일어난 것임을 사람들에게 인식시켰고, 상당부분 사회적 동의를 얻었다고 할 수 있다. 그 예를 ‘맛지마 니까야’의 ‘와셋타의 경(Vāsṭṭhasutta)’에서 볼 수 있다. 동명의 경이 ‘숫따니빠따’에도 있다. 

이 경은 혈통의 순수성에 의해 바라문이 된다고 주장하는 바라드와자(Bhāradvāja)와 덕행을 갖춘 사람이 바라문이라고 주장하는 와셋타의 논쟁으로 시작한다. 이들은 서로를 설득시키지 못했고, 와셋타의 제안으로 부처님을 찾아뵙고 가르침을 청하게 된다.

[와셋타] 세상의 눈으로 출현하신 고따마께 여쭙습니다. 출생에 따라 바라문이 됩니까? 행위에 따라 바라문이 됩니까? 어떻게 바라문을 알아보는지, 모르는 저희에게 말씀해 주십시오.

[붓다] 와셋타요, 그대들을 위해 모든 생물에 대한 출생의 차이를 차례로, 있는 그대로 설명해 주겠습니다. 그들에게 출생은 서로 다르기 때문입니다. 풀이나 나무는 출생에 따른 특징을 갖고 있습니다. 그들에게 출생은 서로 다르기 때문입니다. 벌레나 나비, 개미, 배로 기어 다니는 길이가 긴 것들, 물고기들, 새들은 출생에 따른 특징을 갖고 있습니다. 그들에게 출생은 서로 다르기 때문입니다. 이와 같이 출생에 기인한 특징은 다양하지만 인간들에게는 출생에 기인한 이와 같은 특징의 다양성이 없습니다. 각기 인간의 몸 자체에는 특징에 따른 구별이 없습니다. 인간 가운데 있는 명칭은 단지 관습적 표현일 뿐입니다. 

부처님은 물고기와 새, 고양이 등은 그 출생에 따른 특징이 명확하지만, 인간들 사이에는 단지 언어적 명칭만 있을 뿐, 출생에 따른 특징이 없다고 가르친다. 

[붓다] 인간 가운데 소를 치며 살아가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농부이고, 기술로 살아가는 사람이 있다면 기술자이며, 주지 않는 것을 빼앗아 살아가는 사람이 있다면 도둑이지 바라문이 아닙니다. 나는 출생과 가계 때문에 그를 바라문이라고 하지 않습니다. 아무것에도 집착하지 않는 자를 나는 바라문이라고 부릅니다. 모든 장애를 극복하고 두려워하지 않으며, 집착에 묶여 있지 않은 사람, 그를 나는 바라문이라고 부릅니다.

부처님은 사람들을 구분하는 것은 그 사람의 구체적인 행위에 기인한다고 가르치신다. 즉 태생에 따른 차별은 없으며, 오로지 그 사람이 어떤 행위를 하느냐에 따라 바라문도 되고, 도둑놈도 되고, 정치가도 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가르침에 두 젊은 바라문은 올바른 지견을 얻고, 부처님께 귀의하여 재가자가 되었다.

이필원 동국대 경주캠퍼스 교수 nikaya@naver.com

[1598호 / 2021년 8월25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 이 기사를 응원해주세요 : 후원 ARS 060-707-1080, 한 통에 5000원

저작권자 © 불교언론 법보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광고문의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하단영역

매체정보

  •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 19 르메이에르 종로타운 A동 1501호
  • 대표전화 : 02-725-7010
  • 팩스 : 02-725-7017
  • 법인명 : ㈜법보신문사
  • 제호 : 불교언론 법보신문
  • 등록번호 : 서울 다 07229
  • 등록일 : 2005-11-29
  • 발행일 : 2005-11-29
  • 발행인 : 이재형
  • 편집인 : 남수연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재형
불교언론 법보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