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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년 한국 생활에 남은 건 암덩이와 빚더미

  • 상생
  • 입력 2021.08.27 21:46
  • 호수 1599
  • 댓글 2

봉제공장서 근무한 구룽시타씨 부부…사기당해 건물서 쫓겨나
직장암 수술 앞둬…검사비만 500만원 병원비는 알 수 없어 암담

네팔 출신 이주노동자 구룽시타(47)씨의 끙끙 앓는 소리가 창문 없는 작은 옥탑방을 가득 채운다. 시도 때도 없이 찾아오는 통증을 참기 위해 이를 악물고 몸을 웅크린다. 진통제를 털어 넣어도 평온함은 잠시 뿐이다. 한 번 올라온 묵직한 고통은 좀처럼 가라앉질 않는다. 몸은 덜덜 떨리고 이마엔 식은땀만 흐른다.

농부의 딸이었던 구룽시타씨는 남편 구룽산도스(48)씨와 물려받은 작은 땅에 농사를 지으며 살았다. 그러나 몇 년째 이어진 가뭄과 홍수로 생활은 갈수록 어려워졌다. 불안정한 수입에 먹을 것도 부족해 주린 배를 물로 채우는 경우가 잦았다. 네 살배기 아들이 배가고파 울음을 터트려도 해줄 수 있는 게 없었다. 어떻게든 돈을 벌어야만 했다. 그렇게 ‘코리안 드림’을 꿈꾼 부부는 아들을 동생에게 맡긴 채 2008년 한국 땅을 밟았다.

네팔이주민들이 모여 있는 서울 창신동에 자리 잡은 부부는 봉제공장에서 일을 시작했다. 희망 가득 안고 한국에 왔건만 아는 이 하나 없는 낯선 곳에서의 생활은 상상했던 것과 달랐다. 한국어가 어눌하다는 이유로 월급을 제대로 받지 못했고, 그마저도 몇 달씩 밀리기 일쑤였다. 돈이 없어 끼니를 거르기도 했다. 네팔에서의 고단한 삶과 별반 다르지 않은 날들이 몇 년간 이어졌다. 어두컴컴한 밤에 출근해 동이 터서야 퇴근하는 생활에 몸은 지쳐갔다.

한국에 적응하면서 언어도 늘었고, 봉제기술도 좋아졌다. 여기저기 이들 부부를 찾는 공장도 생겨났다. 잠을 이루지 못 할 정도로 물량이 넘쳐도 좋았다. 그만큼 받을 수 있는 돈이 많아지기 때문이다. 일부를 네팔로 보내고 남은 돈을 차곡차곡 모았다. 이따금 통장에 찍힌 숫자를 확인할 때면 서러움과 피곤함이 눈 녹듯이 사라졌다. 밤낮 없는 생활을 이어가며 한푼두푼 돈을 모아 한국 온지 8년 만에 집을 얻었다. 창문 없는 작은 옥탑방이었지만 둘만의 공간이 있다는 것에 마냥 행복하기만 했다.

그간 저축한 돈에 주변에서 빌린 돈을 더해 당구장을 차렸다. 고된 한국생활도, 네팔에 있는 아들과의 이별로 더 이상 마음아파하지 않아도 되리라 생각했다. 1년이 지났을까. 건물 주인으로부터 갑작스레 나가라는 통보를 받았다. 오래된 건물이라 철거대상에 들어간다는 게 이유였다. 한국에 오랜 시간 거주했지만 철거에 대해 잘 알지 못했던 부부는 쫓겨나듯 건물 밖으로 밀려났다. 수천만원의 보증금도 돌려받지 못한 채 빚쟁이 신세가 됐다.

정신적 충격이 컸던 탓인지 몸은 갈수록 약해졌다. 올해 초부터 심한 피로감에 시달렸다. 구룽시타씨는 ‘잠을 더 자면 되겠지’라고 단순하게 생각했다. 그러나 몇 주 째 소화가 되지 않고 변을 보는 횟수가 눈에 띄게 줄었다. 복부 아래쪽에 묵직한 통증도 있었지만 사기를 당한 뒤 하루 벌어 하루 먹고살기 바빴기에 병원은 엄두도 못냈다.

“몸이 아프면 바로 병원을 갔어야 했는데 돈이 뭔지….”

지난 7월 여느 때와 다름없이 출근을 위해 몸을 일으킨 순간 배를 부여잡고 쓰러졌다. 구급차를 타고 곧바로 응급실로 이송됐다. 그러나 병원에서는 별다른 검사 없이 변비약과 진통제만 처방해줬다. 약을 먹어도 차도가 보이지 않았다. 고통은 점점 더 심해져갔다. 혈변까지 보기 시작했다. 다시 병원을 찾았다.

정밀검사 결과 직장암이었다. 암세포가 너무 오래돼 빨리 수술을 해야 한다고 했다. 암이라는 사실을 믿을 수 없었다. 다른 암 전문병원을 찾아가 검사를 받았다. 결과는 바뀌지 않았다. TV에서나 봤던 암에 걸리다니, 덜컥 겁이 나면서 온몸에 기운이 쭉 빠졌다. 돈이 없어 바로 수술을 받을 수도 없었다.

고민 끝에 수술을 결정했다. 문제는 수술 후다. 이미 부부 앞에 놓인 검사비만 500여만원. 수술과 치료에 얼마만큼의 돈이 더 필요할지 알 수 없다. 더 이상 도움을 요청할 곳도, 돈을 빌릴 사람도 없다. 청천벽력 같은 결과를 받은 후부터 눈물이 마르지 않은 날이 없었다.

쉴 틈 없었던 이주노동자의 삶. 13년간 일만 하다 얻은 대가는 암덩이와 수천만원의 빚더미뿐이다. 아들을 보지 못한지도, 돈을 보내지 못한 것도 벌써 1년째. 두 사람의 얼굴엔 어둠만이 가득했다.

“아들이 보고 싶어요.”

모금계좌 농협 301-0189-0372-01 (사)일일시호일. 02)725-7010

김민아 기자 kkkma@beopbo.com

[1599호 / 2021년 9월1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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