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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이 한국선의 위기인가

개학을 앞두고 책장을 정리하다가 노란 표지의 자그마한 책 하나를 잡고서 다시 보고 있다. 1973년 봄 ‘신동아’ 논픽션 공모에 당선된 글을 ‘여시아문’에서 2000년에 출판한 책으로 지허(知虛) 스님의 ‘선방일기’이다. 이 책은 서울대 출신의 지허 스님이 오대산 상원사 선방에서 동안거 기간에 경험하고 느낀 점을 일기의 형식으로 기록하고 있다. 36명의 선객들이 음력 10월15일에서 1월15일까지 3개월 동안 어떻게 참선하고, 어떻게 생활하고, 또 무슨 생각을 하였는지 솔직 담백하게 잘 그려져 있다.

10월25일 ‘선객의 운명’이란 부제가 붙은 일기에서는 선객이 일 년에 소비하는 물적인 소모량을 계산해 놓았는데, ‘주식비 1만6425원에 부식 및 잡곡은 자급자족 그리고 피복비 3740원 하여 합계가 2만원이면 족하다’라고 기록하고 있다. 선객은 모름지기 의·식·주 3가지가 부족한 것을 운명처럼 받아들여야 한다고 말한다. 인상적인 글은 결제에 앞서 김장할 때 조실스님이 시래기를 다시 골라 엮으면서 조용히 지허 스님에게 말씀하신 다음과 같은 내용이다.

“옛날 어느 도인이 주석하고 계시는 토굴을 찾아 두 납자가 발길을 재촉했었다오. 그런데 그 토굴에서 십 리쯤 떨어진 개울을 건너려고 할 때 이런 시래기 잎이 하나 떠내려오더래요. 그러자 두 납자는 발길을 멈추고 이렇게 중얼거렸더래요. ‘흥, 도인은 무슨 도인, 시래기도 간수 못하는 주제에 도는 어떻게 간수하겠어. 공연히 미투리만 닳게 했구료.’ 하면서 두 납자가 발길을 되돌려 걷자 ‘스님들, 스님들, 저 시래기 좀 붙잡아 주고 가오. 늙은이가 시래기를 놓쳐 십 리를 쫓아오는 길이라오.’ 두 납자가 돌아다보니 노장 스님이 시래기를 쫓아 내려오고 있더래요. 시래기를 붙잡은 두 납자의 토굴을 향한 발걸음은 무척 가벼웠겠지요.”

선승들의 삶이 ‘가난과 고독’으로 점철되어 있음을 충분히 알게 해주는 대목이다. 120년을 살았던 조주(趙州) 스님은 회창법난 당시 나무 열매를 먹고 풀로 만든 옷을 입으면서도 승려로서의 위의를 지켰고, 80세 이후 조주성 동쪽에 있는 관음원에 머물면서도 겨우 목숨을 연명할 정도의 가난 속에서 살았다.

‘조주록’에는 “아침에 밥하는 연기가 사방에 일지만, 나는 헛되이 바라볼 뿐 만두도 찐 떡도 작년에 헤어졌다. 시주가 백집이나 되지만 절을 찾는 자는 그저 차를 마시겠다고 말할 뿐 차를 마시지 못하면 떠날 때 화를 부린다”는 내용도 보인다.

언제부터인가 한국불교계에 ‘선(禪)의 대중화와 세계화’에 대한 목소리가 높아지고, 다양한 실험들이 이루어져 왔다. 특히 위빠사나를 비롯한 다양한 명상법들이 들어와 유행하는 가운데, 간화선을 통해 한국의 선을 대중화·세계화시키고자 하는 일련의 노력들은 주목할만 하다. 또한 간화선 지침서를 만들고 ‘화두제시와 의단형성 그리고 점검 및 인가’에 관한 수행체계를 구체적으로 제시하기도 하여 대중화에 성공한 선원들도 등장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선은 미래가 불투명하다.

비트코인을 통해 자본금을 모아, 주식에 투자하여 자본금을 불리고, 이어 부동산 투자를 통해 집을 마련한 후, 좋은 차를 사는 것이 꿈이라고 젊은이들은 말한다. 

현대인에게 맞는 선수행의 새로운 기법을 제시하고, 수행과 포교에 대한 과학적 시스템을 체계화한 후, 유튜브와 메타버스 등을 잘 활용하면 한국선의 대중화·세계화가 실현될 수 있다고 말한다. 분명 ‘가난과 고독이 선승의 운명이다.’라고 말하는 지허 스님과는 그 지향하는 바가 다름을 알 수 있다. ‘무엇이 진정 한국선의 위기인가’를 성찰해야 할 때인 것 같다.

김방룡 충남대 철학과 교수 brkim108@hanmail.net

[1599호 / 2021년 9월1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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