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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의 정치참여

헌법 제20조 제1항은 “모든 국민은 종교의 자유를 가진다”, 제2항은 “국교는 인정되지 아니하며 종교와 정치는 분리된다”이다. 종교의 자유와 정교분리에 대한 간결한 조항임에도 인류의 전 역사를 관통하는 경험이 녹아 있다. 과거 종교의 국가 지배나 종교간의 갈등을 피하기 위한 것이다. 그런데 정교분리 조항으로 종교의 정치활동은 제약받는가. 아니 종교는 정치에 이미 깊숙이 관여하고 있다. 불교, 개신교, 가톨릭의 인구가 국민 전체의 반에 해당하는 상황 자체가 이미 정치와 종교는 불가분의 관계임을 보여준다.

불교는 한반도에 들어올 때부터 국가불교로 시작되었다. 해방 후 제헌의회에서 기도를 한 이승만 전 대통령은 한국을 예수교 국가로 만들겠다고 공언했으며, 그의 ‘꿈’대로 개신교는 현재 제1의 종교인구를 차지한다. 가톨릭 또한 로마 교황청이 국가적 기능을 한다고 보아야 한다. 또한 진보적이고 정의로운 종교인들은 독재체제에 대한 비판과 저항으로 이 나라의 민주화에 헌신하기도 했다. 지금도 많은 종교인들이 국가권력의 전횡에 대항, 약자들의 편에 서서 온힘을 쏟고 있다. 부정적이든 긍정적이든 정교분리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함을 의미한다.

종교는 애초에 인간의 나약함을 메우고 약육강식의 질서를 잡는 쪽으로 진화했다고 할 수 있다. 자연종교로부터 고등종교에 이르기까지 종교의 역할은 인간의 평온과 평화를 위한 것이다. 따라서 정교분리는 종교의 과잉방지 장치일 뿐 정치사회적 역할을 도외시한 것은 아니다. 전문가들이 제시하고 있듯이 문명의 절망에 마지막으로 대응가능한 길은 인류 보편의 가치를 세워온 종교 외에는 없다.  

정교분리는 유럽에서 종교전쟁, 미국의 독립, 프랑스혁명 등을 통해 구체화되었지만 여전히 헤브라이즘은 유럽 일상 문화의 일부다. 나아가 서양 종교의 초월적 권위는 비록 해체일로를 걷고 있지만, 울리히 벡(Ulrich Beck)이 말하듯 ‘자기만의 신’인 인간, 무소불위의 권위를 쟁취한 국가 및 자본이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이들은 신의 유사 대리자로서 신의 권능을 흉내내고 있다. 그런데 동양의 종교는 이와는 다르다. Religion을 종교(宗敎)라는 용어로 오역한 것은 신의 한수라고 할 수 있다. 

서양 발 정교분리는 동양에서는 무의미한 언어다. 주지하다시피, ‘장자(莊子)’에서 유교를 정리하기 위해 쓴 내성외왕(內聖外王)의 도는 유교만이 아니라 동양 종교의 기본 맥락이라고 할 수 있다. 체와 용, 도와 덕, 지와 행의 관계로 볼 수 있는 이것은 넓게는 종교와 정치의 관계로도 볼 수 있다. 애초에 삶은 이 양자의 분리를 허용하지 않는다. 절에서 설법을 듣고 나와 투표장으로 가서는 안 되는가.

종교지도자가 정치인이 된다든가 종교 그 자체가 정당이 되는 것은 실정법만이 아니라 아직까지는 사회적 규범에도 맞지 않는다. 기독교나 불교에서 정당이 여럿 나왔지만 신도들의 지지마저 받지 못하는 것은 이를 보여준다. 종교의 정치화는 다른 종교를 촉발시켜 갈등을 불러일으킨다. 종교의 정치적 역할은 정치로 하여금 도덕적 주체성을 강화하도록 하는 것에 있다. 정치의 합리적인 권위의 목표는 사회적 통합이 우선이기 때문이다. 새의 양 날개 또는 수레의 양 바퀴로 표현했지만, 실제로는 이해관계나 종교의 정치적 예속을 의미한 과거 불법과 왕법의 관계를 이제는 적극적으로 해석해야 한다.  

불교야말로 중국에서 유교의 공격에 대해 대효(大孝)를 주장했듯이 대정(大政)을 주장해야 한다. 대승이라는 말이 회자되듯이 인류가 처한 고난에 대응하기 위해 불법의 가르침이 사회화되어야 한다. 따라서 인류의 선(善)을 향한 불교인들의 정치참여를 적극적으로 도와주어야 한다. 그리고 정치의 정도(正道)를 위해 이웃종교와도 연대해야 한다. 정치의 계절에 접어들었다. 대선을 앞두고 불교계는 무아와 대아에 기반, 중도와 정의에 맞는 정치 참여를 통해 이 나라의 앞길에 희망을 주어야 한다.

원영상 원광대 원불교학과 교수 wonyosa@naver.com

[1599호 / 2021년 9월1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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