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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에서 넘어진 자, 땅을 짚고 일어나라

기자명 금해 스님

사업 힘들어지자 기도에 나서 
절박함이 오히려 번뇌가 되고
발원이 집착으로 변질돼 절망
실천이 갖춰질 때 기도성취돼

울산에 살고 있는 어느 거사님이 최근 사업에서 큰 손해를 입고, 공장을 폐쇄할 정도로 어려운 상황이라고 합니다. 모든 어려움이 자신의 업이 두터워 일어난 것이라 생각하고, 한달 전부터 자비도량참법 100회 독송기도를 시작했다고 합니다. 절박한 마음으로 기도를 시작했지만, 혼자서 기도를 제대로 하고 있는지 알 수 없었습니다. 여러 유튜브 영상을 보면서 ‘신통하다’는 기도 종류를 계속 추가하다 보니, 여러 가지가 뒤섞인 기도는 점점 혼란스러워지고, 무속적으로 변해갔습니다. 그의 절박함은 오히려 번뇌가 되었고, 생활은 허공에 뜬 것처럼 산란해졌습니다. 큰 돈 벌기를 바라면서도, 기적을 갈망하느라 실제 사업에서는 더욱 멀어졌습니다. 하지만 본인은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알아차릴 수 없었지요. 기도 발원이 집착으로 변하는 것은 순식간입니다. 번뇌와 집착이 일어나면 지혜는 사라지고, 더욱 깊은 늪으로 빠져듭니다. 

기적을 성취케 하는 큰 힘이 기도에 있는 것은 분명합니다. 기도는 마음의 에너지를 청정하고 안정되게 하며 지혜를 밝혀주기 때문에 발원을 속히 성취케 합니다. 하지만 중생심의 잘못된 기도 발원은 쉽게 집착으로 변하고, 결과에 따라 절망과 분노로 변합니다. 삶은 더 힘들어지게 됩니다.

보조국사 지눌(知訥) 스님은 정혜결사문에서 “땅에서 넘어진 자, 땅을 짚고 일어나라. 이 이치를 벗어나서 일어서기를 바라는 것은 옳지 않다(人因地而倒者 因地而起 離地求起는 無有是處也)”고 하셨습니다.

부처는 중생 가운데서 나고, 중생은 현상계에 있습니다. 현실에서 발을 딛고 현실에서 움직입니다. 인과의 법칙 또한 현상계의 법칙입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은 현상계를 떠나있지 않습니다.

부처님이 사밧티의 기원정사에 계실 때였습니다. 코살라국 파세나디왕은 먹는 것을 너무도 좋아해서 항상 많은 양의 식사를 했습니다. 파세나디왕은 점점 뚱뚱해져 숨을 쉬기 힘들 정도가 되었지요. 부처님을 친견하러 왔을 때, 왕은 마차를 타고 왔음에도 얼굴이 붉고 숨을 거칠게 몰아쉬었습니다. 고통스러워하던 왕은 부처님께 여쭈었습니다.

“부처님, 저는 음식을 보면 탐욕이 생겨 숨이 가빠질 때까지 먹는 버릇이 있습니다. 지금은 걷기도 제대로 할 수 없으니, 백성들 보기에도 부끄럽습니다. 무슨 좋은 방법이 없겠습니까?”

부처님께서는 “마음을 제어하여 식사의 분량을 절제할 줄 아는 사람은 괴로움이 적어지고, 건강하며 오래 살 수 있으리라”는 가르침을 주셨습니다.

부처님이 신통력으로 순식간에 바로 살을 빼 주리라는 기적을 바랐다면 왕은 크게 실망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파세나디왕은 시종에게 “너는 이 게송을 식사 때마다 내 귀에 소리쳐라”고 명했습니다. 시종은 파세나디왕이 식사할 때마다 부처님의 게송을 소리쳤고, 왕은 그때마다 탐욕을 제어하며 음식을 줄였습니다. 차츰 ‘한 접시 분량’의 음식에 만족하게 됐습니다. 날씬해진 파세나디왕은 손으로 몸을 어루만지며, 부처님을 찬탄하며 기뻐했습니다.

부처님 가르침은 매우 현실적입니다. 살을 빼고 싶으면 운동하며 적게 먹어야 합니다. 너무도 당연한 이야기입니다. 부처님 가르침은 그의 노력이 더욱 빛나도록 지표가 되어 주고, 멈추지 않는 정진의 힘을 발휘하게 함으로써 원을 성취케 해 줍니다.

기도하는 사람은 기도 발원과 목적을 위해, 자신의 실천행이 잘 갖추어져 있는지를 먼저 보아야 합니다. 세속적인 복(福) 뿐만 아니라, 수행의 과(果)인 무상정등정각(無上正等正覺)까지도 현실 속에 심어진 씨앗으로부터 성장하기 때문입니다. 현실을 떠나서 정토를 말할 수 없고, 중생을 떠나 부처를 말할 수 없습니다.

울산 거사님께 산란한 기도를 줄여 집중하도록 하고, 기도와 회사 일을 철저하게 나눌 수 있도록 현실적인 실천 청규를 만들어 주었습니다. 그리고 마음 굳건히 정진하기를 부탁했습니다. 

하안거 회향을 맞아, 발원 성취를 위해 어떤 실천을 했는지, 앞으로 어떤 선업을 행해야 할지 돌아볼 시간입니다. 두 발을 땅에 단단히 딛고서.

금해 스님 서울 관음선원 주지 okbuddha@daum.net

 

[1599호 / 2021년 9월1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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