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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님의 보시

기자명 성원 스님

스님 재산 묻는 청년불자 보며
보시 대한 부정적 시각 느껴
출가자들이 금전 문제 벗어나
고고한 사유속 존재되길 염원

가을이 왔다. 가을이 왔다고 한다. 창 너머로 가을 풀벌레 울음소리가 요란하다. 정말 가을이 온 것일까? 바닷가에 살면서 바닷물에 발 한번 담가보지 못하고 보내야만 했던 여름의 야속함이 못내 아쉬움을 더 한다. 

여름의 무더위와 새로운 질병으로 인해 갇힌 생활을 하면서 지쳐가는 사회에 스님들의 훈훈한 미담이 들려온다. 종단에서 추진 중인 여러 사회적활동에 스님들이 많은 관심을 가질 뿐만 아니라 적지 않은 금액을 그야말로 쾌척한다는 소식이다.

얼마 전 청년불자와 대화를 나누는데 대뜸 ‘스님은 돈이 얼마 있어요?’라고 물었다. 좀 의아해하자 청년불자는 스님들이 큰 금액을 보시하는 뉴스를 본 기억이 나서 물어봤다고 했다. 이어서 그 불자는 스님들이 원래 보시하기 위해서 돈을 모으는 건지, 아니면 수입이 많아서 큰돈을 기부하는지 궁금하다고 했다. 하지만 분명, 매우 부정적인 시각으로 접근하고 있었다. 

‘출가자가 재화를 소유할 수 있는가’라는 문제로 부파불교가 시작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부처님 입멸 후 지역마다 기후와 풍토가 다른 넓은 인도 땅 곳곳으로 퍼져나간 수행자들은 서로 다른 처지에 직면하게 됐다. 출가자와 재화의 문제 역시 그러한 지역의 여건과 문화의 차이에서부터 발생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에 대해 새삼 원론적인 문제를 부각할 필요는 없겠다. 수행자가 하지만 ‘어느 정도의 금액이 수행자들에게 적합할까’의 문제는 사회 통념적 가치척도와 개인에 따라 완전히 다르게 느껴질 것이다. 대부분 사찰 운영을 스님들이 주도하다 보니 항상 일정 금액의 자금을 보유하기도 해야 할 뿐만 아니라 때로는 심하게 채무가 발생 되기도 한다. 

새로 주지 임명을 받은 사제 스님께서 신도들이 사찰 재정을 공개하라고 하는데 어떻게 하면 좋을지 모르겠다고 물어왔다. 무척 난감한 모양이었다. 그래서 재정을 공개하면 흑자재정과 적자재정을 함께 걱정해야 한다고 분명히 해두는 것이 좋다고 했다. 사찰 재정이 흑자일 때는 적극적으로 간섭하려 하면서 적자일 때는 잠적해버리는 사람들과 재정을 공유해야 할 것인가? 적자재정에 무책임한 자세를 가지면서 전체재정에 관여해서는 안 될 것 같다는 생각을 전했다. 함께 상의하고 고민한다면 재정공개가 무엇보다 좋을 것이다.

출가 초기 때 사찰의 불사가 워낙 큰 규모로 진행 중이다 보니 늘 재정이 궁핍했다. 어느 날 밤 잠도 주무시지 않고 도량을 거닐며 고민하시는 은사스님에게 무슨 일이시냐고 물었더니 날이 밝으면 결재 지출해야 할 금액이 많은데 자금이 부족해서 잠을 이룰 수 없다고 하셨다. 그날 밤 출가하고도 돈 걱정으로 번뇌하시는 스님의 모습이 참으로 참담하게 느껴졌다. 은사스님께서는 상좌와 함께 그날 밤 끝내 잠을 잘 이루지 못하셨을 것이다.

이날 이후 고민과 바람이 생겼다. 출가자들이 언제부터 이 복잡하고 모순적인 사찰 재정을 관리하게 되었을까? 사찰 재정을 청신사 청신녀들께 전적으로 맡겨버리고, 출가자들이 재정을 관리하지 않고 지극히 개인적인 개인 활용 금전 이외는 관여하지 않는다면 얼마나 좋을까. 이렇게만 한다면 직접 스님 개인 명의로 기부나 보시하는 일도 없어질 것이고 기부하고도 좋은 이야기를 듣지 못하는 일도 없게 될 것이다.

승가복지라는 말이 보편적으로 사용되고 있다. 종단에서 다양한 방법으로 출가자들의 복지 문제를 염려하고 있다. 이제부터라도 출가자들은 간소한 생활 속에서 고고한 사유를 하며 세상에 자비의 미소를 전하는 존재로 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이번 가을에는 스스로 가난해져서 세상 사람들에게 상대적 풍만감이라도 전할 수 있으면 좋겠다.

성원 스님 약천사 신제주불교대학 보리왓 학장
sw0808@yahoo.com  

[1600호 / 2021년 9월8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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