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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 말이나 막 하는 세상

막말이 뉴스가 되고 있다. 자주 듣다 보니 일일이 열거하기도 어렵지만 단연 눈에 띄는 것은 ‘GSGG’라는 국적을 알 수 없는 영어단어다. 누가 봐도 ‘ㄱㅅㄲ’라는 소리로 들리지만 정작 당사자는 ‘국민의 일반의지…’를 운운하면서 말도 안 되는 변명을 늘어놓았다. 같은 정당 출신의 국회의장을 향해 차마 ‘ㄱㅅㄲ’라는, 육두문자는 사용할 수 없으니까 ‘GSGG’라는 아무 말이나 불쑥 내뱉은 것이 아닐까 싶다. 악구(惡口)라는 불교 용어가 떠올랐다. 더럽거나 나쁜 입이라는 뜻이다. 이 이상 적확한 표현을 찾을 수 없다.

거짓말은 더욱 심각한 문제다. 막말보다 폐해가 크다. 불교에서 거짓말은 그냥 망어(妄語)다. 삿된 말을 해서는 안 된다는 함의를 품는다. 막말은 불쾌하고 말지만, 거짓말은 삶을 왜곡시킨다. 기분이 나쁘다는 정도와 신뢰가 무너지는 결과는 차원이 다르다. 어쩌면 거짓말은 누구도 완전히 피해갈 수 없는 일상의 한 부분일지도 모르겠다. 우리는 크고 작은 거짓말로부터 대부분 자유롭지 않다. 목적을 숨기고 하는 거짓말은 얼마 지나지 않아 정체가 드러나지만 무심코 습관처럼 하는 거짓말은 정말 듣고 싶지 않다. 손절(損絶)의 대상이다. 그런 사람은 죄책감도 없다. 늘 그렇게 살아왔으니까. 결국 믿은 사람만 낭패를 겪는다. 여전히 기름기 넘치는 말로 얼굴색 하나 변하지 않고 화려한 연기력을 과시하는 사람들을 목격한다. 

그런 쓸데없는 말들이 매일 난지도만큼 쌓인다. 말의 불감증이 중증으로 치닫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말의 가치와 믿음을 파괴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세상에서 가장 바람직한 말은, 들으면 누구나 무슨 말인지 금방 알 수 있는, 맑은 바람과 밝은 달 같은 말이다. 그것이 다른 뜻을 가진 말이었다는 것을 나중에 깨달아야 하는 말은 처음부터 말의 순수기능을 말살하고 던진 독화살이나 마찬가지다. 막말과 거짓말이 난무하는 시대에 감히 ‘그렇게 말하고 살지 말자’는 제안을 드린다. 당신이 보고 느낀 그대로 진지하지만 지혜롭게 상대방을 일깨워주는 따뜻한 말이 그립다. 우리의 불신은 나의 말에서 비롯된다. 말의 인플레이션은 공동체의 디폴트를 초래한다. 말의 무게가 그만큼 중요하다. 아무 말의 홍수를 이대로 방치하면 인류의 멸망을 가져올지도 모를 이상기후만큼이나 위험하다. 막말과 거짓말이 세상을 집어삼키도록 계속 내버려 둘 수는 없는 일이다.

너나 할 것 없이 당연히 삼가야 할 이간질(兩舌)과 꾸밈말(奇語)도 일종의 망어다. 악구와 망어만 남발하지 않아도 공동체는 저절로 화합중(和合衆)이 된다. 어려운 이야기를 할 필요도 없다. 사는 동안 자기가 만들 수 있는 세상을 꿈꾸고 실천하는 것만으로도 인간의 몸을 받고 태어난 자릿값은 충분히 치른다. 누구에게 건네는 영혼 없는 말들이 듣는 사람의 앞날을 가로막을 수도 있음을 알 나이가 되었다. 거짓말을 하면 나쁜 놈이고, 거짓말을 믿으면 어리석은 사람이다. 말 한마디 하기가 점점 더 조심스럽다. 

말 같지 않은 말은 세상을 혼탁하게 만든다. 나도 단단히 한몫했다. 애써 기어와 양설은 피하려고 했지만, 악구와 망어는 수도 없이 반복했다. 막말과 폄하와 비아냥이 춤을 춘다. 그놈의 디지털 낙서장이 화근이다. 예전엔 그냥 혼잣말이거나 사석에서 주고받았던 말들이 요즘엔 실시간으로 공유된다. 아차 싶다가도 호응하는 댓글들을 보면 짜릿한 희열을 느끼는 모양이다. 자극적인 말로 관심을 끌고 싶은 유혹에 빠질 수밖에 없다. 디지털중독의 후유증이다. 허상이 실상을 지배하는 세상이 되었다. 과학은 허상을 만들고 인간은 실상을 외면한다. 이제 우리는 허상과 실상이 서로 배타하지 않고 함께 공존할 수 있는 불교적 지혜를 찾아 나서야 한다. 어느새 하늘이 저만큼 높아졌다. 가을이다. 불망어계(不妄語戒)라도 지키면서 소박하게 사는 세상 속의 불보살들을 더 많이 만났으면 좋겠다. 평범한 재가자들이 상식과 교양을 회복할 때라는 다짐을 거듭 다져본다.

허남결 동국대 불교학부 교수 hnk@dongguk.edu

[1601호 / 2021년 9월15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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