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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 이근세의 조계사 사천왕상 

기자명 주수완

철로 재탄생한 새로운 불교 히어로의 등장

얇은 철판 중첩해 평면적이지만 입체적으로 보이는 독특함
전통적 사천왕 형태지만 역동적이면서 현대적인 느낌 줘
종교 근본은 관습에서 벗어나는 것 불교미술도 변화 필요

천왕상을 봉안할 여건이 안 될 경우 모셨던 사천왕 불화. 해남 대흥사 침계루. 조선후기.
천왕상을 봉안할 여건이 안 될 경우 모셨던 사천왕 불화. 해남 대흥사 침계루. 조선후기.

조계사 앞으로는 수많은 사람들이 지난다. 그 목적은 달라도 조계사가 교통의 요지에 위치한 만큼 조계사 앞은 누구에게나 친숙한 공간이다. 조계사도 그것을 알기 때문에 계절에 따라 다양하게 일주문 앞을 정성스레 꾸며놓는다. 그래서 이 앞을 지날 때면 도심 속임에도 계절을 읽을 수 있어 좋다.

일주문을 통해 조계사 경내로 들어가다 보면 독특한 철붙이 조각들을 만나게 되는데, 바로 사천왕상이다. 그런데 그 사천왕상들은 평소 절에서 보던 사천왕과는 모습이 사뭇 다르다. 원래 사찰 경내로 들어서기 위해서는 일주문, 금강문, 천왕문이라는 세 개의 문을 지나야하는 것이 법식이다. 그러나 조계사에는 일주문만 있다. 아마 현재 상태에서는 그럴만한 공간이 나오지 않기 때문에 사천왕을 천왕문이 아닌 일주문에 모심으로써 타협점을 찾은 것 같다. 

하지만 일주문에 사천왕을 세우는 데에도 문제가 있었을 것이다. 사천왕은 보통 그 크기가 사람 키를 넘는 거대한 상인데 그것도 네 분이나 세우려면 일주문이 좁아질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러면 신도들이 드나드는데 불편할 수 밖에 없다. 전통적으로는 천왕문이 좁아 조각상으로 봉안하기 어려운 경우 사천왕을 그림으로 그려 벽에 걸거나 혹은 문짝에 그려넣는 것으로 대체하기도 했다. 그러나 조계사 일주문은 개방된 형태의 문이기 때문에 사천왕을 그릴만한 문짝도 없고, 만약 종이나 비단에 그려 건다면 금방 비에 젖을 것이다.

이런 경우 가장 간단하고 초보적인 해결로써 비에 젖지 않는 가벽을 만들어 대충 그려넣는 방법이 하나의 대안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조계사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2012년 당시 조계사 주지였던 도문 스님은 이 일을 철 작업을 해온 이근세 작가에게 의뢰했고, 작가는 그 주문에 부응하여 매우 실험적인 작품을 탄생시켰다. 사천왕을 세울 수 있는 공간이 부족하기 때문에 평면적인 사천왕을 세워야 한다는 것은 기본 전제였다. 그것은 석판일 수도 있고, 목판일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미 이근세 작가에게 의뢰되었을 때에는 철을 염두에 두고 있었다는 뜻이다. 철은 크지 않더라도 기본적으로 무게가 나갈 수 밖에 없다. 돌도 만만치 않은 무게였겠지만, 같은 크기라도 돌로 되어 있을 때보다 쇠로 되어 있을 때 사람들은 더 크게 느낄 것이다. 
 

 서울 조계사 철조사천왕 중 서방광목천(오른쪽)과 남방증장천(왼쪽). 이근세 작. 2013년. 갑옷 테두리를 톱니바퀴처럼 처리하여 마치 기계장치처럼 보인다.
서울 조계사 철조사천왕 중 서방광목천(오른쪽)과 남방증장천(왼쪽). 이근세 작. 2013년. 갑옷 테두리를 톱니바퀴처럼 처리하여 마치 기계장치처럼 보인다.

더하여 이근세 작가는 평면적이면서도 얇은 철판을 겹겹이 세워 언뜻 보기에는 입체처럼 보이는 독특한 사천왕을 제작했다. 언뜻 불교의 존상이 아니라 갤러리에 전시되어야 할 현대미술작품을 보는 것 같은 느낌이 들 정도로 전위적이다. 평소 조계사를 드나들거나 지나면서 이 사천왕을 뵐 때마다 그 기발한 발상에 놀라고 감탄하게 된다. 이런 현대적 감각의 사천왕을 만든 분도, 그리고 조계종의 센터인 조계사 정문에 이런 전위적 사천왕을 세우도록 계획하고 허락하신 분도 모두 칭송받아 마땅하다.

철판의 중첩으로 만들어진 사천왕은 단지 평면이 입체처럼 보인다는 것에서만 그 특징이 드러나는 것은 아니다. 천왕 갑옷의 테두리 부분을 톱니바퀴처럼 처리하여 마치 오토매틱 기계식 시계의 무브먼트가 다 들여다보이는 스캘레톤 시계처럼 다가온다. 즉 정지된 철판작업이 아니라 움직일 것 같은 기계장치처럼 보이는 것이다. 때문에 그 형태는 매우 전통적인 사천왕의 형태를 하고 있음에도 마치 로봇처럼 움직일 것 같은 현대적인 느낌을 주니 더욱 역동적이다. 원래 사찰에 봉안된 존상들 중에서 금강문의 금강역사상과 천왕문의 사천왕상은 정적인 불·보살의 모습과 달리 가장 역동적인 상들이다. 이근세 작가도 그런 점을 놓치지 않고 그야말로 철커덩 소리를 내며 칼을 뽑아들 것 같은 사천왕의 분위기를 끌어낸 것이다.   

여기서 한걸음 더 나아가 철로 된 조계사 일주문 사천왕을 보면 왠지 아이언맨이 생각난다. 만약 사천왕을 어벤져스의 아이언맨, 캡틴 아메리카, 토르, 헐크로 구성한다면 어떻게 될까. 실상 사천왕의 바이슈라바나(북방 다문천), 드리트라슈트라(동방 지국천), 비루다카(남방 증장천), 비루팍샤(서방 광목천)는 모두 고대 인도의 어벤져스들이었을 것이다. 그런 수퍼 히어로들을 부처님의 호위신중으로 받아들인 것이다. 현대의 수퍼 히어로들이라고 부처님의 호위신중이 되지 말라는 법은 없다. 그렇게 구성한다면 또한 재미있지 않을까? 물론 저작권 등의 복잡한 문제가 있긴 하지만, 대신 조계사 사천왕은 새로운 불교 히어로의 가능성을 보여준다. 
 

계절에 따라 다양하게 꾸며놓는 조계사 일주문.
계절에 따라 다양하게 꾸며놓는 조계사 일주문.

사천왕은 흔히 부처를 호위하고 있다고 간주되지만, 경전에 보이는 가장 중요했던 역할은 부처님의 발우를 사천왕이 만들어 바쳤을 때였다. 여기서 발우란 더 나아가 그 안에 담길 공양물을 상징하는 것이다. 즉 크샤트리아 계급의 신인 사천왕이 꾸준히 부처님께, 그리고 이후에는 승단에 보시하겠다는 약속의 징표나 마찬가지였다. 불교교단은 이를 보시에 대한 권장의 광고로 주로 사용해 왔다. 기부를 권하는 광고의 주인공은 대부분 누구나 선망하는 배우들인 경우가 대부분인데, 그래야 홍보효과가 더 큰 것이다. 사천왕 역시 멋질수록 사람들은 사천왕을 모범으로 삼아 적극적으로 보시할 것이기 때문에 그 시대의 히어로를 등장시키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종교는 전통을 고수하고 계승하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기 때문에 보수적이라고 흔히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부처님은 전혀 보수적인 분이 아니었다. 오히려 기존의 전통을 깨뜨리고 새로운 세상을 여신 분이셨다. 물론 부처님이 그러셨다는 것과 그분의 가르침을 함부로 바꾸지 않고 잘 지킨다는 것은 별개의 문제일 수도 있다. 그러나 종교의 근본은 관습에 젖는 것이 아니라 그 관습에서 벗어나는 것임을 생각할 때 불교미술 역시 이와 같은 변화의 모색이 필요하다.

근래 불교 뿐만 아니라 모든 종교가 자주 비판의 대상이 되고 있으며, 세계적으로 종교신자는 감소하는 추세라고 한다. 그와 같은 때에 종교가 원래의 성인들의 가르침으로 돌아가, 마치 조계사 사천왕상이 관습을 대신해 새롭고 혁신적인 모습으로 재탄생한 것처럼 변화를 모색한다면 다시금 많은 사람들이 종교에서 위안과 멋, 그리고 무엇보다 즐거움을 찾게 되지 않을까. 

주수완 우석대 조교수 indijoo@hanmail.net

[1601호 / 2021년 9월15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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