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초 하나 없는 황무지에서 10세 사미들은 ‘對論 삼매’
잡초 하나 없는 황무지에서 10세 사미들은 ‘對論 삼매’
  • 남배현
  • 승인 2004.03.22 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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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닥의 곰빠들 <上>

<사진설명>라닥에 있는 작은 농촌마을. 아름다운 풍광과는 달리 농사를 지을 수 있는 기간이 연중 4개월 밖에 되지 않는 열악한 환경이다. 불교는 이들의 삶을 지탱해주는 유일한 지팡이. 그러한만큼 이곳엔 곰빠가 없으면 마을도 없다.

인도 북부의 오지 라닥(Ladakh)은 ‘작은 티베트’로 불린다. 지금은 비록 인도의 영토이기는 하나 거기엔 인간이, 생명체가 살아가는데 필요한 최소한의 것들만을 허락하는 ‘척박한 자연’과 기꺼이 합일한 채 살아가고 있는 티베탄들이 살고 있기 때문이다. 1400여 년의 역사를 이어온 티베트 전통 불교의 모습이, 티베탄 스님들의 교육 방법과 수행법이 완벽하게 남아 있기에 라닥은 ‘작은 티베트’라고 이를 만하다.『법보신문』은 전 송광사 강원 강주 지운 스님이 본지에 보내 온 ‘다라크 탐방기’를 정리해 새해 신설된 ‘해외의 수행도량’란에 보도한다. 지운 스님은 2003년 5·6월 20여 일 간 라닥의 곰빠(절) 40여 곳을 순례했다. 편집자


라닥은 ‘부처님의 땅’이다. 대다수의 사람들이 불교를 따르고 그 불자들이 살아가는 마을엔 어김없이 곰빠(절)가 있다. 라닥에 사는 티베탄인 ‘라다키’는 달라이라마를 정신적 지도자로 받들고 또 존경한다. 달라이라마가 라닥을 방문할 때 라다키들은 성하가 오기 몇 시간 전부터 수 십km에 달하는 길을 청소하고 ‘카타’(큰스님들이 불자들에게 가피를 내리며 걸어주는 흰 천)를 손에 든 채 길 가에 가지런히 늘어선다. 라다키들의 지극한 불심은 라닥이 오늘날까지 ‘Little Tibet’로 불리게 하는 주된 이유 중 하나다.


열악한 환경이 ‘인욕’가르쳐

한 겨울엔 영하 40도까지 곤두박질치는 기온과 농사를 지을 수 있는 기간이라고 해봐야 1년 중 4개월밖에 안 되는 궁핍한 환경을 간직하고 있는 라닥은 인터넷과 텔레비전, 자동차 등에 익숙한 ‘세간의 눈’으로 본다면 수행은커녕 인간이 살아가기조차 힘든 ‘황무지’일 수밖에 없다. 일년 내내 비는 거의 오지 않고 히말라야 설봉이 녹은 물로 보리와 밀을 재배해 겨우 연명할 수 있는 정도의 식량을 구할 수 있기 때문에 ‘라닥=황무지’란 등식은 크게 틀리지 않는다. 적어도 외부에서 온 사람의 눈에 라닥은 환경 자체에 적응하는 일 역시 인욕바라밀을 증득하기 위한 수행의 한 과정쯤으로 다가온다. 그러나 ‘황무지 라닥’엔 티베트 불교의 청정한 계율에서 벗어남이 없이 티베트의 수행법에 따라 염불하고 참선하는 스님들이 있다. 그리고 그 스님들을 위한 정진 도량인 곰빠가 있다. 마을이 있으면 곰빠가 있고 곰빠가 없으면 마을도 없다.

라닥엔 달라이라마를 최고의 승왕으로 받들고 있는 티베트의 4대 종파 중 하나인 겔룩파 소속 곰빠들이 가장 많다. 정확하진 않지만 라닥의 전체 곰빠들 중 절반 이상이 겔룩파 곰빠이다. 한국과 같은 대승 불교권인 라닥의 수행자들은 언뜻 보기엔 대단히 느슨한 일상을 보내는 듯 하다. 한 곰빠 당 적으면 30여명의 대중이, 많을 경우 100여명 이상이 함께 생활하고 있지만 체니 시간이나 경전을 읽는 시간은 정확하게 정해져 있지 않다. 각 곰빠마다 공부하는 방식도, 수행하는 시간도 제각각이다. 어떤 곰빠는 염불을 주로 가르치고 어떤 곰빠는 경전 강독에 주력한다. 또 어느 곰빠는 명상 수행에 매달린다.


질문-대답하며 논리력 키워

같은 곰빠 내에서 수행하는 대중들 역시 길에서 경전을 읽기도 하고 홀로 참선을 하기도 하고 여럿이 모여 체니(對論)에 진력하기도 하는 등 각자의 근기에 맞춰 수행에 몰두한다.

‘체니’는 티베트 불교가 세계로 뻗어 나가 세계인의 정신을 사로잡게 된 힘의 원천이다. 라닥의 여느 곰빠에는 어김없이 10세 미만의 어린 사미들이 있었는데 이들 사미들 역시 늘 체니를 통해 불교의 교리를 공부하고 경전에 대한 이해를 높였다.

<사진설명>삼땐링곰빠 사미승들이 체니에 열중하고 있다. 체니는 티베트 불교가 세계로 뻗어나간 힘의 원천이다.

해발 5,600m의 ‘칸둥라 고개’를 넘어 도착한 ‘누부라’ 지역의 ‘삼땐링 곰빠’에 들렀을 때도 60여명의 어린 사미승들이 자유롭게 체니에 열중하고 있었다. 4∼5,000m를 넘나드는 히말라야의 설산 고봉이 곰빠를 에워싸고 사방을 둘러봐야 풀 한 포기조차 찾기 힘든 혹독한 수행 환경임에도 체니는 놀이 겸 수행의 한 방식으로, 지난 수 백여 년 동안 라닥의 곰빠에서 끊임없이 이어져 왔다. 이 체니는 티베트 전통 강원에서 일상처럼 이루어지는 교육 방법이며 불교 교리를 왜곡해 공격하는 팀과 이 공격을 정법으로 받아치는 팀으로 나누어 두 팀이 토론하는 형식으로 진행된다. 체니에 참여하는 팀은 2인 또는 5인, 아니면 그 이상의 학인이 한 조를 이룬다. 스승은 제자들의 토론장 근처에 앉아 체니가 제대로 진행되고 있는가를 꼼꼼하게 점검한다. 체니는 라닥 스님들은 물론 티베트 스님들의 논리력을 증장시키는 영양소가 되고 있다.

라닥의 어린 사미들은 10세 미만에 출가를 하더라도 계는 대개 10∼12세 때 수지한다. 우리나라와 같이 출가 당시 스승이 한 제자를 맡게 되는 데 티베트의 스승들은 제자를 자신의 아들처럼 대한다. 제자는 경전과 염불, 탕카-만다라 조성 공부 이외에도 영어나 하다 못해 빨래하고 밥 짓는 일까지 스승으로부터 전수 받는다. 스승은 제자의 모든 일상을 관(觀)해 ‘일상=수행’이란 가르침을 실천한다.

<사진설명>곰빠 내무 전경.곰빠 내에는 티베트 양식의 탑인 초르덴이 들어서 있다.


‘포살’전통은 우리와 비슷

라닥의 곰빠나 강원의 교육 기간은 20여 년 안팎이며 이 기간 동안 학인들은 아비달마와 반야경, 율장, 중론, 인명 등 5개의 큰 경전을 반복해서 수학한다. 20여 년 간의 교학 공부를 마친 후 스님들은 비로소 선 수행이나 밀교 수행에 입문한다. 곰빠의 일상 중 한국 불교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유사한 수행법으로는 ‘안거 전통’과 ‘포살 법회’를 들 수 있다. 연 중 여름이 4개월, 겨울이 8개월인 다락의 곰빠들은 매년 6월 15일부터 9월 15일까지 3개월 간 절의 경계, 즉 문턱을 넘지 않고 수행에 전념하는 우안거를 시행한다. 또 겔룩파 곰빠들의 경우 매월 보름 대중이 함께 모인 가운데 한 달간 계율을 제대로 지키지 못한 대중이 여러 대중 앞에서 공개 참회하는 포살 법회의 전통을 이어가고 있다.


전 송광사 강원 강주 지운 스님/bhudam@hhanmail.net

정리=남배현 기자 nba7108@beop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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