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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신도의 도리와 역할

신도로 잘 사는 게 수행자보다 더 어려울 수도

재가불자로서 보시·지계 등 육바라밀 생활 속에서 실천해야
조계종 신도, 소속 사찰에 매년 1만원 교무금 납부는 의무
신도들 해야 할 도리는 무주상보시…역할은 각종법회 참여

불교에서는 승려가 되었든 그 누군가가 되었든 자신의 선택대로 태어나는 세상마다 보살의 길을 갈 뿐이다. 사진은 조계사 신도들이 자원봉사하는 모습.
불교에서는 승려가 되었든 그 누군가가 되었든 자신의 선택대로 태어나는 세상마다 보살의 길을 갈 뿐이다. 사진은 조계사 신도들이 자원봉사하는 모습.

종교학에서는 종교의 3대 요소로, 교조와 교리와 교단을 들고 있다. 불교를 그런 종교학의 이론에 기대어 설명하면, 부처님과 부처님의 가르침과 부처님을 따라 그 분의 가르침을 실천하는 제자들, 이렇게 3대 요소가 있다. 한편, 제자들은 그 종류를 크게 둘로 나눌 수 있는데, 하나는 출가 제자이고, 또 하나는 재가 제자이다.

학문적 엄밀한 용어는 아니지만, 현재 한국의 불교 종단에서는 출가 제자를 ‘승려’라 하고, 재가 제자를 ‘신도’라 한다. 각 불교종단의 종헌이나 종법에서도 ‘승려법’이니 ‘신도법’이니 하는 등등의 용례를 사용하고 있다.

이번 호에서는 불교의 ‘승려’와 ‘신도’ 중에서, ‘신도’의 도리와 역할을 종학(宗學) 측면에서 어떻게 규정할 지를 모색해 보기로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아무래도 ‘승려’에 대해서 간단하게나마 먼저 언급해야겠다. ‘신도’와 ‘승려’는 밀접한 관계다. 인도불교의 전통에 따르면, ‘신도’는 ‘승려’가 수행에 전념할 수 있도록 음식과 약품을 비롯해 일체 생활용품을 제공할 의무가 있기 때문이다.

‘승려’의 도리와 역할을 알아보기 위해서는 역시 역사적인 맥락에서 시작해야 할 것이다. 한국불교는 긴 역사 전통 속에서 현재를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중국을 비롯한 우리나라 등의 전제 왕권 시대에는 출가자라 하더라도, ‘나라의 법’에 따라 생활해야 했다. 이 점은 브라만교도나 불교도 및 자이나교도와 같이, 세속을 떠나 집단 생활하는 ‘출가수행자’를 특별법으로 대접하던 고대 인도와는 상당히 다르다.

봉건 왕권시대의 중국과 한국에서는 불교나 도교의 출가자라 하더라도 ‘나라 법’에 그들을 다스리는 율령격식(律令格式)이 순차적으로 문서화되어 있다. 지금도 읽어볼 수 있는 대표적 법규로 ‘당률소의(唐律疏議)’와 ‘승도격(僧道格)’ 등이 있다.

위의 법령에는 승려들의 세금 및 병역 문제, 나라에서 지급하는 토지 문제, 속인 복장을 입는 문제, 성 행위에 관한 문제, 스승 제자 사이의 지도와 예우 문제, 절에 소속한 노비 다루는 문제, 사원의 주지 및 책임자의 임무 및 역할에 관한 문제, 사원 내의 절도에 관한 문제, 관청에 보고 없이 출가자를 허가하는 문제, 불상이나 노자상을 파괴하는 문제, 승려들의 일상 복장 및 법복의 색깔에 관한 문제 승려의 재산 소유와 상속에 관한 문제 등등이 상세하게 기록되어 있다.

이런 국법을 지킴은 말할 것도 없고, 추가로 불교의 출가자들은 한층 더 엄한 윤리적 규정까지 지켜야 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사분률’이다. 이렇게 세속의 법률도 잘 지키고, 게다가 고도의 종교 율법까지 지키기 때문에, 출가자에 대한 세상 사람들의 존경심은 이루 말할 수 없이 깊었다.

이런 전통은 현대사회가 된 한국의 불교계에도 계속되고 있다. 승려라 하더라도 누구나 ‘나라 법’을 지켜야 한다. 그리고 그것에 더하여 ‘승려법’을 지켜야 한다. 현대사회에서도 종교지도자(승려, 교무, 목사, 신부)가 사람들의 존중을 받는 것도 그들이 ‘나라 법’은 물론, 종교의 엄한 율법을 부가적으로 더 지키기 때문이다.

가정을 벗어나 독신 수행을 전제로 하는 불교에서, ‘신도’들의 절대 의무는 수행자들에게 수행에 필요한 일체의 물자를 제공하는 것이다. 수행자들은 ‘신도’들에게 물자를 제공받지만, 수행자로서는 수행자가 지켜야 할 의무만 지키면 된다. 그리고 그 의무의 채근은 승려 공동체 자체에서 하는 것이지, ‘신도’가 요구할 수는 없다. 영 아니다 싶으면, 보시를 안 하면 된다. 이것이 소위 ‘복발(覆鉢)’이다. 어떤 경우도 ‘신도’가 ‘승려’를 비난해서는 안 된다.

그런데 과연, 현재 한국에서 독신 비구로 구성된 종단 소속 사찰 ‘신도’들이, 자신이 속한 사찰의 ‘승려’들이 수행에 전념하게 하려는 목적으로 시주하는가? 인등기도해달라고 한 달에 5000원, 사시마지불공 시간에 축원카드 올려달라고 1만원, 초하루 보름 기도해달라고 3만원, 설이나 추석에 조상 위패 올려 제사지내달라고 3만원, 연등 꼬리표에 식구들 이름 달아서 얼마, 이런 등등은 ‘거래’이지 ‘보시’라고 하기는 어렵다.

종학(宗學)의 차원에서 볼 때에 이상의 잘못된 변질은 수정되어야 할 것이다. ‘신도’들이 해야 할 도리는 ‘무주상보시’이다. 그리고 역할은 각종 법회에 참여하는 일이다. 그리하여 재가불자로서, 대승경전에 무수하게 반복적으로 나오는 보시, 지계, 인욕, 정진, 선정, 지혜의 6바라밀을 생활 속에서 수행하는 것이다. 그리고 조계종 ‘신도’라면 소속 사찰에 1년에 1만원씩 교무금은 반드시 내야 한다.

그런데 태고종 승려나 장로교 목사 등등 소위 결혼하여 가정 꾸리는 것을 허용하는 종교 단체의 경우는 위와는 철학이 다르다. 그곳의 종교 지도자는 ‘급료’를 받아 자신과 가족이 생계를 유지하면서, 해당 직업윤리에 충실하면 된다. 가족이 있다는 것이 전혀 부끄러워할 일이 아니다. 막스베버의 ‘프로테스탄트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이 여기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다.

그들이 봉직하는 사찰이나 교회는 저마다 각각의 ‘단위공동체’로서 재산상 독립권도 보장된다. 조계종이나 천주교의 ‘집단공동체’처럼 교단이 관리하지 않는다. 자체적으로 건축도 하고, 그것을 은행에 담보해서 돈도 빌린다. 그리고 해당 공동체의 재정형편에 알맞게 승려와 목사에게 ‘급료’도 준다.

한국처럼 전임(專任)으로 봉직하고 상당한 급료를 받는 경우도 있고, 미국처럼 평일에는 직업을 가지고 휴일에만 봉직하는 경우도 있다. 이곳 ‘신도’들은 자기가 출석하는 ‘단위 공동체’인 절이면 절, 교회면 교회, 그곳의 재산도 관리해야 하고, 재정 감사도 해야 한다. 조계종이나 천주교 ‘신도’들보다 할 일이 그만큼 더 많다.

이상은 대체적인 경우를 예로 든 것이고, 각 절마다 약간의 차이는 있을 수 있다. 그런데 공통적인 것은 ‘신도의 도리와 역할’에는 재정 지원이 필수조건이다. 충분조건으로는 ‘대승의 육바라밀 수행’ 내지는 ‘보현보살의 10대 행원’이 있다. 이런 필요충분조건을 완수해서 ‘신도’로 살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지만, 그것은 어쩌면 출가 수행자 이상 가는 어려움이 있을 수도 있다.

‘신도’가 되었던, ‘승려’가 되었던, 자신의 선택대로 태어나는 세상마다 보살의 길을 갈 뿐이다. 그러면 끝내는 완전한 지혜를 얻을 수 있다고 한다. 그렇게 하겠다고 ‘세세상행보살도, 구경원성살바야’라고 새벽마다 발원 기도한다. 경우에 따라서는 ‘나라’에서 요구하는 ‘국민의 도리와 역할’과, ‘불교’에서 요구하는 ‘신도의 도리와 역할’과, 이 둘이 상충하여 번민도 하고 고통을 받기도 한다. 그런데 ‘신도’에게는 ‘불법(佛法)’이 우선이다. 그렇기 때문에 종학(宗學)이다.

신규탁 연세대 철학과 교수 ananda@yonsei.ac.kr

[1602호 / 2021년 9월22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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