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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 모이고 흩어지는 인연으로

인연이 다했다는 것은 곧 ‘조건’이 다했다는 의미

앞집 할머니가 건넨 서양난에 수많은 조건·인연이 모여 있어
무수한 조건들 나열할 수 없어 속제로서 ‘꽃’이라 이름할 뿐
윤회는 모였던 조건 흩어지고 다른 조건으로 다시 모이는 것

그림=허재경
그림=허재경

수천 년 동안 고유한 문화를 간직해 온 우리 불가(佛家)에는 멋들어진 말들이 많다. 도량, 시방, 할방처럼 같은 한자어도 달리 발음하여 흥취를 더하지만, 표현 자체가 처음부터 색다른 것도 있다. 그 가운데는 아름다울 뿐 아니라 깊은 철학적 지혜를 담고 있는 것들도 많다. ‘인연이 모여 이 일이 성사되었습니다’나 ‘인연이 다했습니다’와 같은 표현에는 현대서양 분석철학의 논의를 이미 담아두고 있는 듯한 지혜가 묻어난다. 이번 글에서는 우리 절집의 일상 표현 가운데 하나가 철학적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는지 살펴보려 한다.

우리 일상의 말인 ‘인연(因緣)’은 원래 절집 용어다. 남전불교의 영향을 많이 받은 영어권 불교학자들은 보통 ‘원인(cause)’과 ‘조건(conditions)’으로 번역하는데, 북전불교에서는 원인과 조건을 달리 구분하기보다는 하나로 ‘조건(들)’이라고 분류하는 편이다. 원인이란 여러 조건 가운데 갖추어지지 못한 어느 하나가 마지막 순간에 갖추어지면서 비로소 결과가 생겨날 때 그 특정 조건을 따로 특별히 불러주는 말이다. 예를 들어 불이 붙지 않던 라이터에 기름을 새로 갈아 넣어주어 불이 켜진다면, 이 새 기름이 라이터불의 원인이다. 그밖에 라이터 돌, 손아귀 힘, 공기, 바람 없는 장소 등은 모두 배경 조건에 해당된다.

그렇지만 기름이 이미 새것인 상황에서 바람이 심해 불이 안 붙고 있었다면 바람을 막아주는 행위가 라이터불의 원인이 되겠고, 산소가 부족했다면 산소의 공급이 원인이 된다. 경우에 따라서는 비를 막는 것도 원인이 될 수 있겠다. 이처럼 원인과 조건의 구분은 상황에 따라 달라진다. 그러나 존재세계 자체의 관점에서 본다면, 이 모든 조건이 갖추어져야 라이터불이 켜지게 된다. 조건 하나하나가 모두 동등하게 중요하다. 그래서 원인은 근본적으로 조건의 하나일 뿐이다. 이와 같은 이유로 나는 ‘인연’이라는 말보다 ‘조건’이라는 말을 선호한다.

이제 우리 불가에서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표현으로 붓다의 연기(緣起)를 해석해 볼까 한다. ‘만물은 조건에 의해 생성·지속·소멸한다’를 ‘만물은 모이고 흩어지는 조건이다(조건 그 자체다)’로 이해하자고 제안한다. ‘만물은 조건에 의해 생겨난다’고 하면 마치 만물이 조건과는 별도로도 존재할 수 있는 무엇인 것처럼 받아들여질 수 있다. 그러나 ‘만물은 모인 조건 그 자체’라고 보면 조건 위에 따로 존재하는 것을 인정할 필요가 없게 되어 더 좋다. 철학은 사유와 존재의 경제성 원리를 받아들이는데, 존재하는 것의 숫자가 적을수록 좋은 이론이라는 합의가 있다.

우리 집에는 돌아가신 앞집 백인 할머니께서 내게 남기신 서양난이 하나 있다. 꽃이 크고 화려하고 튼실하다. 꽃이라는 이 물체(object)가 이런 예쁜 자태로 내게 모습을 보이기까지 참으로 많은 조건이 모였다. 이 난에 햇빛과 물 그리고 토양속의 자양분이 여러 달에 걸쳐 모이고 모여 이런 잘 생긴 꽃모양을 이루었다. 여기서 꽃은 모인 조건 밖에 따로 존재하지 않는다. 이 모든 조건의 모임이 결국 꽃 그 자체다. 꽃을 이루는 모든 분자의 모임이 꽃 그 자체라는 말과 그다지 다르지 않다. 이 점은 만약 그런 조건이 흩어진다면 이 난과 그 꽃도 동시에 흩어져 없어진다는 사실을 고려하면 쉽게 받아들일 수 있겠다. 꽃 따로 조건 따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조건의 모임이 바로 꽃이다.

이 난이 앞집 할머니의 유품으로 내게 남겨진 사건(event) 또한 수많은 조건이 모여 이루어졌다. 여러 해 전에 인사를 나누었고, 저녁초대를 받았고, 우리 집에서 아이들 음악연주와 함께 모임을 가졌고, 서로 수십 번 오고가며 정을 쌓아왔다. 이렇게 조건이 모이지 않았더라면 그렇게 난이 전해져 오지 못했을 것이다. 이런 사건도 그것을 이루어 낸 조건으로 모두 분석되고 분해되어 버리기 (analyzed away) 때문에, 그 사건이 이런 조건 밖에 별도로 존재한다고 볼 수는 없다. 엄밀히 말하자면, 물체(object)뿐 아니라 사건(event)도 단지 조건의 모임 그 자체일 뿐이다.

조건이 모이고 흩어짐에 따라 물체와 사건이 생겨나고 소멸한다. 그런데 물체인 꽃이 조건의 모임에 불과하다면 왜 우리는 굳이 ‘꽃’이라는 이름을 만들어 부르며 꽃이 마치 모인 조건과 별도로 존재하는 듯 착각하고 있을까? 다시 말해, 조건의 모임인 꽃이 결국은 허구요 환(幻)에 불과하다는 점을 잘 아는 불가에서조차도 ‘꽃’이라는 말을 계속 사용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모여 있는 무수히 많은 조건을 한 단어로 지칭하는 이유는 그것이 우리 일상생활을 위해 유용하기 때문이겠다. 꽃 한 송이를 이루는 조건은 너무도 많아서 일일이 나열할 수 없기 때문에 그 모두를 뭉뚱그려 ‘꽃’이라 부를 뿐이다. 이것은 아주 복잡한 숫자를 그냥 상수 ‘c’로 표현하고, 또 길고 복잡한 컴퓨터 명령어를 하나의 아이콘으로 만들어 클릭 한번으로 실행시키는 것과 마찬가지다. 물체뿐 아니라 꽃을 선물하는 행위(사건) 같은 것도 무수히 많은 조건의 모임 그 자체다. 그 조건을 모두 나열할 수 없어서 ‘선물주기’와 같이 표현할 뿐이다.

사물의 존재를 이렇게 실용적으로 유용한 방식으로 보면 속제(俗諦)라 하고, 조건의 모임 그 자체처럼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보면 진제(眞諦)가 된다. ‘밀린다왕문경’같은 초기문헌에서는 꽃과 같이 조건이 모여 이루어진 ‘전체’는 따로 실재하지 않는다고 하면서도, ‘꽃’이라는 말은 모여진 조건을 한꺼번에 지칭하는 편리한 지시어라고 인정한다. 대승에서는 ‘꽃의 생멸’이 ‘조건이 모이고 흩어짐 그 자체’이기 때문에 꽃은 실재가 아니라 허구 또는 환(幻)에 불과하다고 본다(非有). 그러나 꽃은 환으로서는 존재하여 우리 일상에서 편리하게 불리고 있으니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것도 아니다(非無). 꽃은 묘하게 있다(妙有).

내게 난을 남기신 분의 장례식에서 그분과 인연이 깊었던 분들을 많이 만났다. 그분의 육신을 이루었던 조건은 이제 모두 흩어져 자연으로 돌아갔고, 그것은 각각 또 다른 조건과 모여 새로운 물체의 일부가 되기도 할 것이다. 그분의 마음은 또 오랫동안 많은 이들에게 전해져 왔기 때문에 이미 그들의 마음을 이루는 조건의 일부가 되어 자리 잡고 있다. 나는 이렇게 모였던 조건이 흩어져 다른 곳에서 다른 조건과 다시 모이고 또 흩어짐을 반복하는 과정이 윤회라고 생각한다.

홍창성 미국 미네소타주립대학교 철학교수 cshongmnstate@hotmail.com

[1602호 / 2021년 9월22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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