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80. 업에 대한 내용으로 자이나교도 밥빠를 교화하다

불교의 업은 운명 개척하는 방식의 업

무명 사라진 깨달은 사람에게도
과거업 따른 번뇌 생기는지 질문
신구의 잘 단속하면 업 벗어나니
과거의 업에 속박될 필요는 없어

인도에는 다양한 종교전통이 있다. 이들은 공통적으로 업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그러나 종교마다 업을 설명하는 방식이나, 이해하는 내용이 다르다. 한국인들이 갖고 있는 업에 대한 관념은 생각보다 불교의 업이 아닌 힌두교의 업 관념에 가깝다. 문학작품이나 TV 드라마, 영화 등에서 종종 업을 소재로 할 때, 힌두교의 업을 불교의 업인 양 소개되는 경우들을 종종 보게 된다. 

일단 힌두교의 업은 ‘운명론적 업’이다. 즉 업의 관점이 과거 전생에 놓여 있다는 것이다. 자이나교의 업도 별반 다르지 않다. 그러나 불교의 업은 ‘운명을 개척하는 방식으로의 업’이다. 업의 관점이 현재에 놓여 있는 것이다. 업을 바라보는 관점이 과거이냐 현재냐에 따라 우리 삶을 해석하고, 이해하는 내용은 전혀 다르게 된다.

‘앙굿따라 니까야’에 밥빠의 경(Vappasutta)이 있다. 밥빠는 자이나교도인데, 어느 날 목갈라나 존자와 업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목갈라나 존자] 밥빠여, 세상에 어떤 사람은 신체적으로, 언어적으로, 정신적으로 자제하는데, 무명이 사라져 소멸되고 명지가 일어난 뒤에, 그것을 원인으로 그에게 아직 미래에 괴로운 느낌을 초래할 번뇌가 들이닥칠 가능성이 있다고 봅니까?

[밥빠] 존자여, 이전에 지은 악한 업의 과보가 아직 결과를 초래하지 않았을 경우에 그것을 원인으로 그에게 아직 미래에 괴로운 느낌을 초래할 번뇌가 들이닥칠 가능성이 있다고 봅니다.

이 대화의 내용은 시사하는 바가 많다. 일단 신구의(身口意)의 3가지로 자제하면서, 무명이 사라지고 명지가 일어났다는 것은 깨달음에 대한 표현이다. 즉 목갈라나 존자의 질문은 ‘깨달은 자에게 미래에 번뇌가 생겨날 수 있는가?’이다. 이에 밥빠는 과거 악업의 결과를 받지 않았다면 번뇌가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고 답한 것이다. 

이는 우리들이 갖는 의문의 내용이기도 하다. 즉 깨달은 존재들은 과거의 악업이 그냥 사라지는 것인가, 아니면 그 업에서 여전히 자유롭지 않은 것인가에 대한 의문이다. 일단 이 두 분의 대화는 중단되었다가, 부처님을 찾아뵙고 이야기가 이어지게 된다. 

목갈라나 존자가 대화의 내용을 부처님께 아뢰고, 부처님은 밥빠에게 주제에 대한 이야기를 나눌 방식을 먼저 안내하고, 대화를 이어가게 된다.

[붓다] 밥빠여, 그대가 동의할 수 있는 것에는 동의하고, 부인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부인하시오. 그리고 내가 말한 것의 의미를 잘 모르면 그것에 대해 나에게 ‘존자여, 이것은 어떠한 것입니까? 그 의미는 무엇입니까?’라고 되물으면 우리의 대화가 가능할 것입니다.

이에 밥빠가 기꺼이 그러겠다고 말씀을 올리자, 부처님은 밥빠에게 질문을 하신다.

[붓다] 밥빠여, 신체적·언어적·정신적 폭력을 조건으로 곤혹과 고뇌를 초래하는 번뇌가 생겨납니다. 그러나 신체적·언어적·정신적 폭력을 삼가면 곤혹과 고뇌를 초래하는 번뇌가 생겨나지 않습니다. 그는 새로운 업을 짓지 않고, 오래된 업은 겪을 때마다 끝냅니다. 이것은 현세의 삶에서 유익한 것이며, 시간을 초월하는 것이며, 와서 보라고 할 만한 것이며, 최상의 목표로 이끄는 것이며, 슬기로운 자라면 누구나 알 수 있는 것입니다. 밥빠여, 그에게 미래에 괴로운 느낌을 초래할 번뇌가 들이닥칠 가능성이 있다고 봅니까?

이 질문에 밥빠는 ‘그렇지 않습니다’라고 답했다. 부처님은 깨달음까지 갈 필요도 없이, 신구의의 세 방식의 폭력을 삼가는 사람이라면, 그는 새로운 번뇌를 만들지 않고, 나아가 오래된 업은 그때그때 겪을 때마다 끝낸다고 말씀하신 것이다. 

부처님은 악업을 짓지 않도록 신구의를 잘 단속하는 것만으로도 업으로부터 자유롭게 된다는 것을 말씀하신 것이다. 과거의 업은 그때그때 해결하면 되는 것일 뿐, 그것에 속박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과거의 업에 두려워하고, 회피하려고 할 때, 우리는 업에 속박되는 것이리라. 이러한 가르침에 밥빠는 자신의 낡은 믿음을 버리고, 부처님의 제자가 되었다.

이필원 동국대 경주캠퍼스 교수 nikaya@naver.com

[1602호 / 2021년 9월22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 이 기사를 응원해주세요 : 후원 ARS 060-707-1080, 한 통에 5000원

저작권자 © 불교언론 법보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광고문의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하단영역

매체정보

  •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 19 르메이에르 종로타운 A동 1501호
  • 대표전화 : 02-725-7010
  • 팩스 : 02-725-7017
  • 법인명 : ㈜법보신문사
  • 제호 : 불교언론 법보신문
  • 등록번호 : 서울 다 07229
  • 등록일 : 2005-11-29
  • 발행일 : 2005-11-29
  • 발행인 : 이재형
  • 편집인 : 남수연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재형
불교언론 법보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