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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학자 시각에 머물고 있는 한국불교

지난 10월5일 조계사 역사문화기념관에서 ‘금산사와 호국불교’라는 주제의 학술대회가 있었다. 그 취지는 뇌묵 처영의 의승활동에 대한 조명을 통하여 호국도량으로서 금산사의 정체성을 확보하고자 하는 것이었다. 필자 또한 ‘금산사의 미륵신앙과 호국애민정신’이란 주제로 발표하였다. 청허와 사명 그리고 처영이 표충(表忠)의 대표적 승장으로 받들어지는 반면, 금산사에서 의승군을 이끈 처영이 정당하게 평가받지 못하고 있는 현실을 감안한다면 의미가 큰 학술대회였다.

기차를 타고 집에 돌아오면서 ‘유학자들이 바라보는 불교에 대한 시각으로부터 불교계는 언제 쯤 자유로울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떠올렸다. 억불숭유 정책으로 일관한 조선조 500년 동안 한국불교는 유학자들에 의해 그들의 시각으로 비판의 대상이 되었고, 일부 찬양된 것들은 그들의 관점에서 허용된 범위 안에서만 선택적으로 이루어졌다. 정도전이 ‘주자어류’의 ‘석씨편’에 나오는 주자의 불교 비판 이론을 배경으로 한 ‘불씨잡변’을 통해 불교가 ‘무부무군지도’이자 ‘허학(虛學)’이라고 정의한 이후, 조선 성리학자들의 시각은 이를 크게 벗어나지 못했다.

설잠 김시습의 비문을 최초로 쓴 율곡은 ‘겉은 승려지만 속은 유자였다’고 설잠을 그렸고, 우암 송시열은 조선중화주의(소중화주의)를 주창하면서 오직 충(忠)의 관점에서 고승들의 업적을 선별적으로 찬양했다. 노수신이 부휴와 사명 등과 깊게 교류했지만 공식적으로 불교를 찬양하지는 못했다. 다산 정약용 또한 아함 혜장과 깊은 정신적 교감을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불법을 깊이 믿으면서도 ‘주역’의 원리를 들을 때부터 몸을 그르쳤음을 스스로 후회하여 실의에 차서 죽었다”는 기록을 남겼다. 다른 유학자들의 관점은 언급하지 않아도 알 수 있다.

남겨진 불교 관련 사료들의 많은 부분이 유학자들에 의해 지어졌거나 그들의 시각이 반영된 것이다. 고승의 비문은 당대 최고의 유학자들에 의해 지어졌고, 조선왕조실록은 물론 고려왕조실록 또한 조선 초 유학자들에 의해 지어진 것이다. 고려왕조실록에서는 불교의 중요한 사건들이 의도적으로 제외되었고, 심지어 출가한 왕자들의 이름조차 없애버렸다. 조선왕조실록에 가장 많이 등장하는 불교 관련 내용은 허응당 보우를 탄핵하라는 상소이고, 그 다음이 환성 지안에 대한 탄핵 상소이다. 이러한 사실을 직시하면 남겨진 불교 관련 사료를 해석할 때 세심한 주의가 필요하다.

임진·정유 왜란을 계기로 불교에 대한 유학자들의 인식이 바뀌게 되는데, 그 결정적인 원인이 바로 의승군이다. 그것은 바로 성리학자들이 그토록 주창한 ‘충(忠)’을 국난 속에서 불교계가 앞장서 실천했기 때문이다. 허응당을 제주도에 유배하여 무참히 살해하고, 정여립의 모반사건에 청허와 사명을 연류시켜 옥사를 치르게 했음에도 불구하고, 청허와 사명은 호법과 애민정신에 입각하여 의승군을 조직했다. 효종과 현종 당시 ‘충’을 통해 불교를 재평가하려는 움직임이 우암 송시열에 의하여 일어났다. 그리고 일제강점기 불교학자들에 의해 한국불교의 특징 중의 하나로 호국불교가 거론되었고, 박정희 정권 당시 박종홍 등으로 이어지면서 한국불교의 대표적인 특징 가운데 하나로서 ‘호국불교’의 이념이 정착하게 되었다.

고려 말 선사들의 어록이 조선에 오면 문집으로 변하게 된다. 함허의 ‘현정론’, 무명씨의 ‘유석질의론’, 청허의 ‘삼가귀감’, 운봉 대지의 ‘심성론’ 등 유불조화론을 주장한 글 또한 유학자의 시각을 의식한 것이다. 태고-보우 법통설 또한 명청 교체기 한국 유교의 도통설을 의식한 것이다. 500년 동안 우리를 지배했던 유학과 유학자들의 시각으로부터 아직도 한국불교가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되돌아 보아야 한다.

김방룡 충남대 철학과 교수 brkim108@hanmail.net

[1604호 / 2021년 10월13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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