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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징어게임과 돈

‘오징어게임’ 시즌1을 다 보고 나서 한 동안 게임장 안에 갇혀 있는 느낌을 받았다. 구성이 과격하기도 했지만, 그 프레임이 곧 현실임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마지막에 주인공이 자식을 보러 가는 발길을 다시 게임장으로 돌리는 모습에서 이 게임은 어쩌면 인류가 존속하는 한 종결되지 않을 것 같은 절망을 느꼈다. 세계인들이 열광하는 이유는 제각각이겠지만, 돈이 수족인 자본주의 체제에 자신들이 종속되어 있다는 공감대가 가장 클 것이다.

나는 게임 중에 허공에 매달린 돈바구니에 게임 참가자 1인당 1억씩의 돈이 그 죽음만큼 쌓여간다는 것에 아찔한 현기증이 일었다. 비로소 이마무라 히토시가 ‘화폐인문학’에서 화폐에 “괴이한 죽음의 냄새”가 떠다닌다고 한 말의 의미를 이해하게 되었다. 고통스러운 것은 현실에서 돈이 신이 된 물신(物神)은 드라마처럼 사람의 생사여탈권을 지니고 있다는 점이다. 엄밀히 말하면 돈이 그런 것이 아니라, 사람이 물신을 목표로 목숨을 건 쟁탈전을 하고 있다. 

한국에서 이 드라마가 나왔다는 것은 카지노자본주의가 극대화되었다는 것을 말한다. 한 마디로 ‘돈 놓고 돈 먹기’의 사회다. 주식, 채권, 보험 등 다양한 금융상품들은 이 세계의 다른 이름이다. 금융자본은 산업 및 상업자본과는 다른 노동이 수반되지 않는 자본이다. 또한 돈도 계급이 있다. 조개껍데기 같은 물품화폐에서부터 돈을 금으로 바꾸는 태환지폐, 1944년 브레턴우주 체제에 의한 달러의 기축통화화, 1971년 리처드 닉슨 대통령에 의한 달러의 금본위제 폐지로 돈은, 아니 달러는 무한정 찍어내도 상관없다. 원화는 다른 나라 은행에서는 취급도 않는다. 미국 경제의 상황에 의해 세계 금융시장은 좌우된다. 자유시장 경제의 원산지인 미국은 신의 손이 되었다. 

돈바구니를 둘러싼 개인 간, 국가 간 경쟁이 바로 이 시대의 비극이다. 욕망의 판도라 상자를 연 자본주의, 즉 돈으로 삶은 상대화되고 단순명료해졌다. 연기(緣起)의 세계는 이제 돈의 연결망이 되었다. 돈이 매개된 연기다. 돈은 존재의 결정권자다. 호모사피엔스가 주도한 환상의 승리다. 이제 인류는 돈이라는 단일한 지향성을 갖게 되었다. 화폐의 양은 개인의 양적 질적인 행복을 결정한다. 국가나 기업은 물론 가정, 대학, 종교, 친목단체도 돈이 중심이다. 돈은 세계의 모든 현실과 이상을 하나로 귀결시켰다.

드라마에서 게임을 설계한 노인은 부자와 가난한 자의 공통점으로 “삶에 재미가 없는 것”이라고 한다. 부자의 재미는 삶에 의미가 없다는 말이며, 가난한 자의 재미는 현실이 고달프다는 뜻이다. 결코 극과 극이 통하는 말이 아니다. 그저 부자의 심리를 말한 것뿐이다. 현존의 실제성을 상실한 것이다. 돈 먹는 게임도 결국 환상의 세계다. ‘금강경’의 4구게인 “무릇 형상 있는 바가 다 이 허망한 것이니 만일 모든 상이 상 아님을 보면 곧 여래를 보리라”는 가르침은 돈에도 해당한다. 종이에 투영된 환상 너머의 진실을 보아야 한다. 

그것은 명백하다. 아리스토텔레스가 ‘니코마코스 윤리학’에서 말하는 것처럼 돈은 “최고선”에 도달하는 수단이지 목적이 되어서는 안 된다. 인생이 돈에 지배되어서는 안 된다. 드라마 속 게임은 돈에 지배당한 개인과 사회를 보여준다. 게임을 운영하거나 배팅하는 자들도 결국은 돈을 지배하는 것이 아니라 돈에 지배당한 자다. 게임의 설계 자체가 비인간적이지만, 어린 시절 게임을 재현하고픈 설계자의 심리는 지배 너머에 있다.

삶은 그 자체의 실존적 체험, 즉 어디에도 걸림 없는 무아의 세계다. 그때만 그런 것이 아니다. 성장하면서 잃어버린 나의 존재 형태가 무아인 것이다. 실존적 가치의 정점도 무아다. 자신의 욕망을 돈에  의탁하고 투사하며 실존을 말살하는 행위는 비본질적 행위다. 설사 게임에 이겨 살아남아 그 돈을 거머쥔다고 해도 실존의 불안은 해소되지 않는다. “유위법”이 꿈, 거품, 이슬, 번개와 같다고 한 말씀은 돈을 지상의 최고 목표로 삼는 전도된 현대인들이 반드시 새겨들어야 할 법문이다.

원영상 원광대 원불교학과 교수 wonyosa@naver.com

[1604호 / 2021년 10월13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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