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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별없이 내리는 비

기자명 성원 스님
  • 세심청심
  • 입력 2021.10.12 15:49
  • 수정 2021.10.12 15:55
  • 호수 1604
  • 댓글 2

차별없는 평등 세상은
불교의 이상적 세계관
선민주의적 종교사상이
우리 사회 차별 부채질

오랫만에 가을비가 내린다. 비보다는 청명하게 높은 하늘이 더 어울리는 계절이지만 무겁지 않게 내리는 가을의 안개비가 운치를 더해 주는 것 같다. 비에 관해 좋아하는 ‘법성게’ 구절이 있다.

우보익생만허공(雨寶益生滿虛空)
중생수기득이익(衆生隨器得利益)
허공 가득 내리는 비가 모든 생명체에 보배로운 이익을 선사하지만
중생들은 오직 자신들의 근기에 따라 그 이익을 차지할 수 있다.

중생들에게 근기를 키워야 한다고 가르치는 게송이지만 앞 구절에는 온 허공에 차별없이 내리는 비에 견주어 부처님의 크신 자비를 찬탄하고 있어 더 좋다.

불교는 차별을 엄격히 경계하고 있다. 오랜 역사를 봐도 어느 지역에서나 불교는 근본적으로 평등을 지향해 왔다. 차별없는 세상은 불교의 이상적 세계관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강원시절 배운 ‘금강경’의 한 구절은 젊은 출가자를 여러 날 밤잠 이루지 못하게 했다. 바로 ‘금강경’ 23장 ‘정행품’의 구절이다.

시법 평등 무유고하 (是法 平等 無有高下)
시명 아뇩다라삼먁삼보리제(是名 阿耨多羅三藐三菩提)
이 법은 높고 낮음이 없는 평등을 가르치니 다시 말하면 이보다 더 높은 가르침이 없고 이것과 비교할만한 것도 없는 가장 바른 가르침이다.

우리는 ‘금강경’에 대해 깊은 공 사상을 어렵게 가르치는 형이상학적 내용이라고 막연히 생각하기 쉽지만 사실 ‘금강경’은 우리 일상에서 결코 벗어날 수 없는 실천적 가르침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부처님은 모두가 고귀한 가치를 지니고 있는 완전히 평등한 존재임을 사람들이 알아차리게 하려 하셨던 것이다.

언제부턴가 우리사회는 차별로 인해 크게 몸살을 앓고 있다. 어느 한 지역 어느 한 분야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다. 우리사회 전반에 차별이 만연해 있는게 사실이다. 그 원인으로 급속한 경제발전과 1차 산업에서 2·3차를 넘어 4차 산업으로 급속하게 이동하는 사회환경의 변화를 지적하며 이에 맞춰 해결법을 찾으려 하고 있다.

하지만 조금만 더 생각해보면 발전이 곧 차별을 의미하거나 심화시키는 근본 원인은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불교가 우리나라에 전해진 후 2500년 동안 ‘차별’이라는 문제가 우리 사회에서 주요 아젠다가 되지는 않았다. 그보다는 자신과 다른 타인의 가치를 함부로 무시하고 자신의 것만이 최고라는 일부 선민주의적 종교사상이 우리사회에 차별을 더욱 만연시키고 있는 중요한 원인 중 하나라는 생각을 자주한다. 물론 반론도 있겠지만 현재 차별금지법 제정에 몸부림치는 사람들과 불교의 움직임에 대비돼 법 제정을 반대하는 측의 면면을 보면 바로 알 수 있을 것이다.

‘차별을 절대 용납할 수 없다’는 것은 석가세존으로부터 오랜 역사 속에서 불교가 지켜온 절체절명의 숭고한 가치다. 이것은 불교의 가치이기도 하지만 성숙한 선진문화 사회의 숭고한 도덕적 가치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한편으로 불교는 이러한 숭고한 가치체계를 우리 사회에 주체적 사상으로 뿌리 박지 못하고 이제와서 차별을 무차별적으로 요구하는 세력에게 밀려 수세적 입장이 되었다는 점이 마음 아프다. 차별금지를 위해 출가사문들까지 뜨거운 태양 아래, 저잣거리에 나서서 차별금지법 입법을 호소하며 외쳐야하는 현실은 볼수록 가슴을 저미게 한다.

우리가 ‘금강경’을 읽고 이해하는데 멈추지 말고 그 아름답고 고귀한 사상을 좀 더 열심히 세상에 전파했었다면 우리 사회는 불교가 추구하는 ‘무유고하(無有高下)’ 즉 ‘높고 낮은 차별이 없는’ 부처님 세상이 되었지 않을까. 아쉬움 가득하다.
 

성원 스님
성원 스님

차별 없이 허공을 내리며 모든 중생을 유익하게 하는 가을비 아래에서 차별 없는 부처님의 진리 가득한 세상을 자꾸 꿈꾸어 본다.

성원 스님 약천사 신제주불교대학 보리왓 학장
sw0808@yahoo.com

 

 

 

[1604호 / 2021년 10월13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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