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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법사의 저력

기자명 안직수

세계 역사에서 한반도 크기의 작은 나라가 반만년 넘게 독립국가를 유지하고 있는 예도 없다. 어떤 사람은 그 원인을 역동적인 한국인의 DNA나 강한 민족적 기질에서 찾지만 나는 그 원인을 정(情)에서 찾는다. 부모에게 학대받아 2살 나이로 세상을 떠난 정인이의 기일을 맞아 넋을 위로하려고 찾아온 사람들, 생전 일면식도 없는 청년의 죽음에 눈물을 흘리는 사람들의 마음 말이다. 나의 불편함과 피해를 감수하면서도 내 이웃이 부당한 피해를 보는 것에 분노할 줄 아는 마음, 어려운 사람이나 학대받는 동물을 보면 같이 슬퍼하는 자비심이 우리 민족의 진정한 DNA가 아닌가 한다.

나는 종종 평택의 작은 절 명법사 활동에서 불교의 자비정신이 어떻게 우리 사회에 전달되는지를 되돌아보고는 한다. 아프가니스탄에서 특별 기여자들이 입국하자 명법사에서 적십자사를 통해 그들의 정착 지원금 1000만원을 전달했다. 이달 13일에는 계룡대 홍제사 불사를 위해 1억원을 보시했다. 앞서 용성조사대원 명법사실천회 창립법회를 갖고 용성 스님의 자비정신을 실천하겠다는 서원을 세우기도 했다.

정착 지원금 1000만원은 한 노보살님이 작은 집으로 이사하면서 남은 돈의 일부를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 써달라고 보시한 돈이라고 한다. 주지스님은 시주자의 뜻에 맞게 어떻게 사용할까를 고민하면서 처음에는 북한 주민들을 위해 보내려고 백방으로 알아봤다. 하지만 현 남북관계로 인해 지원할 수 있는 길이 딱히 없었다. 마침 아프가니스탄에서 탈출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바로 전달한 것이다.

100억원 예산으로 추진하는 홍제사 불사는 호국불교를 상징하는 도량이면서 청년포교에 있어 중요한 사찰이다. 명법사 주지 화정 스님은 “그래서 당연히 동참해야 할 불사”라고 말한다. 스님은 앞서 부처님오신날에는 쌍용자동차 노동자들이 몇 달째 급여를 못 받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고등학교 2~3학년 자녀 50명을 선발해 장학금을 전하기도 했다. “집안 가장이 급여를 제대로 못 받으면 얼마나 힘들까. 특히 대학 진학을 앞둔 자녀들은 얼마나 마음의 갈등이 생길까”하는 마음에서였다.

그렇다고 명법사가 큰절도 아니고, 큰 시주자가 있는 사찰도 아니다. 평택시 외곽의 작은 공원에 위치한 사찰이다. 대웅전과 스님들의 요사채를 겸한 3층 건물의 불교회관, 그리고 설법전 한 채가 전부다. 20년 전 모습과 지금의 전각이 그대로다.

주지스님은 그동안 사찰 건물 불사보다 ‘요익중생’ 실천에 중점을 두고 명법사를 가꿔왔다. 영·유아 어린이집, 연꽃동산어린이집, 장애인과 노숙자를 위한 활동, 어르신을 위한 보리살타 재가노인복지시설 등이 그것이다. 신도의 자녀가 어린이집을 다니고, 노년이 된 어르신들을 위한 쉼터를 시내 곳곳에 만들었다. 신도들의 보시금은 가장 어려운 사람들, 가장 필요한 곳에 전달됐다. 때로 신도 가운데 사업이 어려워지면 스님이 앞장 서 물건도 팔아줬다. 지난 추석에는 포도농가를 하는 한 신도가 판로가 막혀 고민하자 스님과 신도들이 100여 상자를 구입하기도 했다.

이런 활동의 근저에서 자비정신을 보게 된다. 모든 생명의 아픔을 보고 같이 슬퍼하는 마음, 내가 가진 것을 기꺼이 나누려는 마음이 바로 자비심이고, 사회에서 말하는 한국인의 정이 아닐까.

우리나라가 세계 경제대국으로 발돋움하고, 먹거리가 넘쳐나는 세상이 됐지만 어찌된 일인지 사람들의 마음에서 점점 자비심보다 이기심이 더 크게 자라고 있는 것 같다. 첨예한 진영 논리로 인한 다툼도 잦다. 수십억원의 성과급을 30대 나이에 취하고도 부끄러운 줄 모르는 세태다. 우리 사회가 지금 찾아야 할 것은 어느 아파트 값이 오를지 쫒아 다닐 정보가 아니라, 명법사처럼 자비심을 회복하려는 ‘실천’이 아닐까.

안직수 복지법인 i길벗 상임이사 jsahn21@hanmail.net

[1605호 / 2021년 10월20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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