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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례한 가톨릭

기자명 진원 스님

몇 년 전 성당 앞을 지나다 우연히 현수막을 보게 되었다. 거기에는 해미성지순례 관련 안내 문구가 써져 있었다. 당시 별스럽지 않게 ‘가톨릭에서도 성지순례로 신자들을 결집하고 전도에 대한 역사적 의미를 찾는구나’하고 긍정적인 생각을 했었다.

이 같은 생각이 바뀐 것은 경기도 광주에 있는 천진암에 대한 가톨릭계의 태도를 보면서부터다. 천진암은 오랜 세월 스님들이 머물렀던 수행 공간이다. 그런데 가톨릭에서 자기들 성지라고 주장하며 안하무인으로 깃대를 꼽고 성역화 하는 것을 보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불교를 비롯해 종교 역사에서 초전시기 고난 없던 경우는 드물다. 종교교리를 펼 때 먼저 토착화 된 대중신앙의 저항을 받게 되고, 국가의 통치 이념 및 정책과도 맞닥뜨릴 수밖에 없다.

서양문화에서 비롯된 가톨릭은 애초 조선에서 쉽게 받아들여지기 어려운 요소들이 많았다. 지금은 가톨릭이 제사에 대해 많이 관용적이지만 당시는 이를 전면 부정했다. 그런데 유교를 통치이념으로 내건 조선에서 이는 나라의 근간을 흔드는 일로 어떤 경우라도 용인되기 어려웠다. 이로부터 비롯된 것이 가톨릭 박해의 시작이다.

그 당시 불교는 온갖 탄압에 내몰린 그들을 자비심으로 품었다. 마치 ‘사냥꾼에 쫓기는 사슴을 보호하듯’ 말이다. 이는 스님들까지도 목숨을 건 위험천만한 일이었고, 실제 이 때문에 많은 스님들이 곤욕을 치루고 목숨을 빼앗기기도 했다. 지금 이러한 역사적 사실을 새삼 언급하는 건 가톨릭이 불교에 부채의식을 가지라는 것이 아니다. 적어도 기꺼이 희생을 각오했던 종교에 대한 무례함은 없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번 정부 대통령의 종교는 가톨릭이다. 불교계에선 그동안 개신교 신앙의 대통령보다 훨씬 우호적이었던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이번 대통령 역시 개인종교를 지나치게 드러내는 등 불편한 부분이 많았다. 급기야는 경기도 광주시장의 가톨릭에 경도된 역사인식과 과욕이 어떤 정책 결과를 가져오는지 목도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특히나 남한산성이 어떤 곳인가. 스님들이 나라를 지키기 위해 직접 돌을 날라 축조한 호국불교의 성지가 아니었던가. 광주시가 말하는 관광발전은 다른 종교와 전통문화를 가톨릭에 편입시켜야 가능한 것인가. 언제부터 가톨릭 박해의 역사가 우리 모두의 역사길이 되고 순례길이 되었단 말인가.

가톨릭은 오랫동안 성지라는 이름 아래 다른 종교들의 공유역사 독점에 노력을 기울여 왔다. 서소문성지 역시 마찬가지이다. 서소문은 동학교도들과 독립운동가 등의 피눈물이 서려있고, 박해 받던 여러 종교들의 공유역사가 있는 곳이다. 그럼에도 가톨릭의 욕심이 국가 소유의 서소문공원에 대한 법을 바꾸고, 막대한 국가보조금을 투입해서 그들만의 단독성지로 만들어가고 있다. 오죽하면 그들 내부에서조차 비판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몇몇 신문에서 드러나듯 가톨릭은 이웃종교와의 갈등도 분명 인지하고 있다. 그럼에도 복음을 목적으로 한 성지화는 지속되고 있다.

가톨릭은 자신들의 복음과 박해정신이 아무리 중요하더라도 이웃종교의 정신적인 기도터까지 빼앗아서는 안 된다. 이는 그 시대 기저에 깔려 있던 백성들의 염원을 자기들 신앙에 둔갑을 시키는 것이자 양심을 저버리는 일이다. 광주시와 가톨릭 수원교구는 다종교 사회에서 정확한 역사인식만이 그동안 형제종교처럼 서로 친절했던 우정을 함께 할 수 있고, 역사를 왜곡시키지 않을 수 있다. 그런데도 수원교구를 비롯한 가톨릭계가 ‘천진암(天眞庵)’의 ‘암자 암(庵)’ 대신 ‘풀이름 암(菴)’으로 한자까지 ‘천진암(天眞菴)’으로 바꿔 부르는 것을 보면 허탈함과 통탄을 금할 수 없다.

광주시가 산티아고가 아니듯 광주의 역사와 문화유산이 가톨릭의 전유물이 아니다. 다행히 종단과 법보신문 등 불교계 노력으로 광주시는 이번 사업을 전면 재검토하겠다고 발표했다. 종교갈등 요소를 미연에 방지했다는 점에서도 다행스러운 일이다. 이제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방관과 묵인이 평화를 가져오지 않는다. 왜곡을 막고 공정함을 견지하려는 적극적인 노력으로부터 평화는 시작된다는 것을.

진원 스님 계룡시종합사회복지관장 suok320@daum.net

[1605호 / 2021년 10월20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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