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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가락 잘리던 끔찍한 기억에 매일이 고통

  • 상생
  • 입력 2021.10.29 21:10
  • 수정 2021.11.01 14:56
  • 호수 1607
  • 댓글 3

베트남 출신 이주노동자 리우띠안씨 기계에 손가락 4개 잘려
해고 당하고 기숙사서도 쫓겨나…수면제 없이는 잠도 못 이뤄

“손가락이 잘리던 끔찍했던 기억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습니다. 도려내는 느낌도 계속 나요. 하루하루가 고통스럽습니다.”

베트남 출신 이주노동자 리우띠안(37)씨는 9월14일을 잊을 수 없다. 자신의 행복을 송두리째 앗아간 바로 그 사고가 일어난 날이다. 플라스틱 공장으로 직장을 옮긴지 한 달이 조금 넘었을 때 벌어진 일이었다. 불의의 사고는 삶을 고통의 구렁텅이로 밀어 넣었다. 밤낮없이 찾아오는 지독한 통증에 진통제 없이는 버틸 수 없고, 수면제를 먹지 않으면 잠도 이룰 수 없다. 그는 매일 아무도 없는 방에 누워 숱한 밤을 자책과 후회를 반복하며 보낸다.

교육을 받던 신입 리우띠안씨는 녹은 플라스틱을 옮기는 작업라인에 배치됐다. 특별한 기술이 필요없는 단조로운 일이었지만, 기계 입구에 날카로운 팬이 돌아가고 있어 조심스럽게 작업을 해야만 했다. 그날따라 일손이 부족한 상황이었다. 퇴근시간은 얼마 남지 않았고 마무리해야 될 작업이 밀려있었다. 정해진 시간 안에 끝내야 했기에 마음이 급해졌다. 리우띠안씨는 기계 속으로 손을 넣어 남은 플라스틱을 긁어냈다.

사고는 한순간이었다. 날카롭게 돌아가는 팬에 손이 걸렸다. 비명과 함께 오른 손가락 4개가 갈려나갔다. 잘린 부위에서 피가 분수처럼 뿜어져 나왔다. 삽시간에 기계와 바닥은 피로 뒤덮였다. 손가락은 형체를 알아 볼 수 없을 정도였다. 갈린 손가락을 보는 순간 의식을 잃었다.

동료들의 도움으로 병원으로 이송됐다. 그러나 뼈가 완전히 으스러졌고, 적절한 대처를 하지 못한 채 시간이 지체돼 접합 수술이 불가능했다. 할 수 있는 거라곤 남아있는 피부를 끌어 모아 봉합하고 소독하는 것뿐이었다.

리우띠안씨는 건축가가 되고 싶었다. 자신의 손으로 지은 집에 온 가족이 모여 사는 게 꿈이었다. 그러나 아버지가 심장마비로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나면서 그는 품어왔던 꿈을 접을 수밖에 없었다. 가난한 살림에 학업을 이어간다는 것은 사치였다. 대신 생계에 보탬이 되고자 어머니의 노상국수 장사를 돕기로 했다. 하지만 찾는 사람은 많지 않았고 매출은 갈수록 줄어들었다. 결국 문을 닫았다. 리우띠안씨는 학교를 졸업하자마자 건설현장 잡부로 나섰다. 어린 나이에 할 수 있는 거라곤 몸을 쓰는 일 뿐이었다.

“한창 개발되고 있는 도시가 많아서 일을 할 수 있는 곳이 많았습니다. 십수 년을 건설현장에서 일했습니다. 그곳에서 지금의 아내도 만났습니다.”

몸은 녹초가 됐지만 생활에 여유가 생겼다. 시간이 지나 건물이 하나둘 완성돼가면서 수입이 없는 달이 더 많아지기 시작했다. 뱃속엔 새로운 생명이 자라고 있었다. 어떻게든 돈을 더 벌어야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동료로부터 한국에서 일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는 말을 들었다. 월급도 베트남에서 버는 것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많았다. 그렇게 2014년 봄, 한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첫 직장은 통영에 있는 가두리 양식장이었다. 한국 생활은 생각만큼 쉽지 않았다. 땡볕에서 매일 12시간을 쉬지 않고 일했다. 노동의 고단함보다 외로움이 더 견디기 힘들었다. 일이 손에 익어가고 한국어도 늘면서 생활은 조금씩 수월해졌다.

사장은 기숙사비, 식비 등을 핑계로 임금을 제대로 주지 않았다. 4년이 넘는 시간동안 월급은 처음 받았던 120만원 그대로였다. 아들이 커가면서 돈 들어갈 일이 많아졌다. 지인이 이런 사정을 알고 자신이 일하는 주물공장으로 옮길 것을 제안했다. 한 달에 230만원 정도를 벌 수 있는 새로운 일자리였다. 베트남으로 보내는 돈은 2배 가까이 늘어났다. 그러나 코로나19로 공장이 문을 닫으면서 갑작스레 직장을 잃게됐다. 다행스럽게도 베트남공동체에서 알게 된 친구로부터 플라스틱 공장을 소개받아 다시 일을 시작할 수 있었다. 잘 될 수 있다는 희망을 가졌다.

희망을 키워왔던 시간은 여기까지였다. 사고가 나면서 해고처리가 됐고, 살고 있던 기숙사에서도 쫓겨나듯이 나와야만 했다. 1000만원이 넘는 병원비는 물론 더 이상 생활비를 보낼 수 없게 됐다. 한동안 말을 잃기도 했고, 세상이 원망스러워 극단적인 선택을 시도하기도 했다.

그런 그의 곁을 지킨 건 베트남공동체 친구들이었다. 그들의 도움으로 월세 35만원짜리 방을 구했고, 병원비 일부도 해결할 수 있었다. 그러나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막막한 현실에 또 다시 고개를 떨구고 말았다.

밤이 되면 가족과 고향이 더욱 그립고 간절하다. 그럴 때마다 지갑 속에 넣어둔 가족사진을 매만진다. 언젠가 다시 베트남으로 돌아가 가족과 도란도란 이야기 꽃을 피우는 달콤한 상상을 하면서 말이다. “베트남에 있는 가족을 생각해서라도 하루빨리 몸을 추스르고 어떻게든 다시 일해야죠.” 리우띠안씨가 아픔을 딛고 희망을 이어갈 수 있도록 불자들의 자비손길이 절실하다.

모금계좌 농협 301-0189-0372-01 (사)일일시호일. 070-4707-1080

김민아 기자 kkkma@beopbo.com

[1607호 / 2021년 11월3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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