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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와 추억 속 오징어게임

기자명 성진 스님

“오징어~” “달구지~” 어릴 적 이 외침과 함께 오징어 외계인 같은 모양을 한 그림 위에서 한 치도 물러설 수 없는 동네 마당의 전투는 시작된다. 그러다 저녁밥 먹으라는 어머니들의 불호령이 서너 번 반복 되고 최소 두 명 이상이 끌려가는 사태를 맞이하고서야 이 전투는 내일을 기약하고 휴전을 한다. 당시에 필자가 살았던 부산 동네에서는 ‘오징어게임’이 아니라 ‘오징어달구지’라고 불렀다. 지역적으로 조금씩 부르는 표현은 달랐지만 대부분 지역에서 이 놀이가 있었고 지금 마흔을 넘은 사람들은 남녀를 불문하고 이 놀이에 참전한 경험이 있을 것이다. 

그 시대의 놀이가 대부분 그랬듯이 ‘오징어게임’ 또한 동네의 아이들 모두가 함께하는 데 어려움이 없었다. 심지어 어린 동생을 데리고 온 경우에도 일명 ‘깍두기’라는 제도로 상호 합의하여 어느 쪽에든 들어가게 하고 공격 시에도 두 발로 놀이에 동참하게 하여 어린 동생 자신도 해볼 만한 놀이가 되게 했다. 그래서인지 그 시절 놀이에서 ‘왕따’라는 말도 없었고 소외되는 아이도 거의 없었다. 

사실 ‘오징어 게임’은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와 같은 놀이에 비교해 타고난 신체조건에 따른 승패가 분명한 놀이이다. 그래서 편을 선정할 때부터 어느 한쪽이 불리하지 않도록 그동안의 전적과 경험으로 비슷한 급수끼리 붙어 가위바위보를 하는 일명 ‘잡기’의 방식으로 전체적인 힘의 균형을 맞추려고 했다. 만일 힘센 아이들끼리 팀을 이루어 놀이를 했다면 쉽게 승리했을 건데 그러지 않았다. 아예 그런 생각을 하지도 않았던 것 같다. 힘센 아이와 힘 약한 아이가 한 팀이 되는 것을 불평등하게 생각하지도 않았고, 두 발로 다닐 수 있는 특혜를 받은 ‘깍두기’ 동생이 혼자 살아남아 ‘만세’를 외쳤을 때도 승리의 주역으로 인정하며 다 함께 기뻐했다. 만일 이러한 차이를 극복하고 모두 함께 놀려는 문화가 없었다면 ‘오징어게임’은 동네 모두의 놀이로 자리하지 못했을 것이다. 

반면 지금의 우리 사회에서는 안타깝게도 이러한 놀이 문화조차 찾아보기 어려워졌다. 비단 놀이가 사라진 것뿐만 아니라 사회 전반에서 조건의 차이를 극복하기보단 대립과 극단적 편가르기로 충돌은 잦아지고 있는 양상이다. 정치권에서 여러 가지 대안을 제시하고 사회적 공론화를 시도하고 있지만, 아직 가야 할 길은 멀다. ‘차별금지법’ 그리고 ‘기회의 균등’을 긍정적 차별로 받아들일지 아니면 ‘역차별’의 문제로 만들어 갈지, 그리고 다른 대안으로 ‘결과의 균등’을 통해 이 문제를 극복할 것인지 말이다. 아마 쉽게 어느 하나의 답을 찾기는 어려울 것이다. 단지 공론화 과정에서 반드시 명심해야 할 것은 우리가 왜 이런 대안을 찾으려고 하는 것인가이다. 그것은 바로 차이가 있는 모두가 상대적 상실감을 최소한으로 하기 위한 조건을 찾아 서로를 당당한 사회구성원으로 인정하며 함께 만들어가는 세상이 가장 아름다운 세상이라는 것이다.

석가모니 부처님의 제자에는 바라문 집안의 학문이 가장 뛰어난 사리불과 최하층민인 이발사 출신인 우팔리 그리고 4개월이 지나도 한 구절의 게송조차 외우지 못하는 우둔한 주리판타카가 함께 있었다. 이들의 출신과 능력의 차이는 확연했지만 궁극에는 모두가 아라한과를 이룰 수 있었다. 그것은 각자의 능력과 상황에 따른 부처님의 대기설법 가르침과 승가 구성원이 각자의 출신과 다름의 관계없이 서로를 존중하고 함께 정진하는 진정한 ‘깐부’ 도반으로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전 세계가 ‘오징어게임’에 놀라워한다. 우리는 기뻐하고 문화적 창의력에 자축해야 할 것이다. 더불어 우리 사회가 드라마 ‘오징어게임’ 속의 모습으로 가는 게 아니라 어릴 적 동네 마당에서 놀았던 ‘오징어게임’ 속의 모습으로 가도록 만들어야 함을 자각해야 할 것이다.

성진 스님 조계종 백년대계본부 미래세대위원 sjkr07@gmail.com

[1607호 / 2021년 11월3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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