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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에 맞게 산다는 것

기자명 희유 스님
  • 세심청심
  • 입력 2021.11.01 17:07
  • 수정 2021.11.01 17:13
  • 호수 1607
  • 댓글 0

바라는 일·사람 있어도
시절인연 도래해야 가능
참으로 지혜로운 이라며
할 수 있는 일에 힘써야

며칠 전 지인 스님들과 함께 바닷가에서 낙조를 바라보는데 그렇게 아름답더군요. 그 아름다운 풍경을 보며 ‘우리 인생의 황혼도 저렇게 아름답게 빛나야 할텐데’라는 생각을 하면서 ‘나는 지금 어디쯤 와 있을까? 저 하늘에 빛나는 태양이 아마도 석양을 향해 가고 있는 온전한 석양은 아닐테고 곧 석양이 들려고 노을이 조금은 붉게 물들고 있는 지점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해보게 되더군요. 우리가 살아감에 있어서는 ‘때’라는 것이 있지요. ‘때’ 즉 시절 인연이 있는 것 같습니다. 무엇인가를 하고자 하여도 그 때가 도래하지 않으면 성사되지 않기도 하고 사람과의 인연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인 듯합니다. 

어제 점심시간엔 일이 있어 잠깐 조계사를 들렀는데 마침 스님들 품서식이 있는 날이라 많은 스님들이 나와 있더군요. 평소 복지관에서 근무를 하다 보니 스님들보다는 재가자들을 더 많이 접하는 일상인데 모처럼 많은 스님들을 뵈니 반갑기도 하고 잊고 있던 옛 시절 생각이 나기도 하고 신심이 더해지는 것 같았습니다. 우리 땐 저런 품서식이라는 것이 없고 사미니계와 비구니계를 받는 것으로 스님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요즘은 여법하게 법랍에 맞추어서 품서식을 하니 그때마다 초발심을 다잡는 계기가 되어서 좋을 것 같습니다. 오곡백과가 익어가는 이 가을에 국화향 가득한 조계사 도량에 수행이 익어가는 향기가 가득한 것 같았습니다. 

요즘 저희 복지관은 위드코로나에 맞춰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어르신들의 요청도 많아서 가을이 익어가는 이 계절에 소규모로 야외 활동을 해보려는 계획입니다. 복지관 인근엔 궁(宮)이 많아서 궁궐나들이부터 시작해 경기도 인근의 수목원들을 탐방해보면 어떨까 싶습니다. 이 또한 ‘때’가 무르익어야 가능한 일이지만 그때 그 시절 소풍 가던 추억을 아로 새겨보려고 합니다. 소풍 이야기를 하니 강원 있을 때가 생각납니다. 황금 들판에 나아가 가을 걷이 운력을 하면서 힘이 들면 울긋불긋한 단풍과 황금 들판을 보며 도반들과 이야기 꽃을 피우던 그 시절이 떠오릅니다. 그땐 힘들다고만 생각되었던 것이 세월이 지나고 보니 그 또한 멋진 추억의 한 페이지가 되었네요. 그런 세월들이 모여서 지금의 내가 된 것이니 그 시절 인연들이 모여서 인생의 후반전을 고민하는 오늘의 인연이 되는 것임을 생각해봅니다. 

우리 복지관엔 붉은 석양과 같은 황혼을 지내시는 분들이 많습니다. 지금도 멋지게 차려 입으시고 고마운 사람들에게 영상편지와 함께 노래를 한 곡 부르시는데, 사랑하는 남편을 위하여 선곡하고 영상편지를 하라고 하니 목이 메어 잘 못하십니다. 다시 마음을 다잡고 사랑하는 남편에게 고마움을 전하시는 어르신을 보니 괜시리 나도 울컥해집니다. 인생이라는 무대에 올라 수많은 사연을 만들어내시고도 아직도 수많은 작품을 만들어가고 있는 것이 우리네 삶인 것 같습니다. 그 삶이 무르익어감에 ‘때’가 딱 맞아야 함을 알아차려 어리석지 않은 삶을 살아가기를 기도하면서 경전의 한 구절을 떠올려봅니다. 

“어리석은 사람은 제가 할 수 있는 일을 하지 않고, 반대로 할 수 없는 일을 하려고 애쓴다. 그러나 지혜로운 사람은 할 수 없는 일을 하려 하지 않고, 할 수 있는 일을 열심히 한다.” 

희유 스님

‘증일아함경’에 나오는 글입니다. 부디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할 줄 아는 지혜로움의 시절 인연이기를 발원해보면서 오늘을 마무리해 봅니다. 

희유 스님 서울노인복지센터 시설장
mudra99@hanmail.net

 

 

[1607호 / 2021년 11월3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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