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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 생사 ②

기자명 박희택

무상함 고(苦)로 보았기에 생도 또한 고

공자, 스크라테스, 예수에게는
생사문제 해결의 간절함 약해
불사 얻기 위한 출가의 결연함
속박 벗어난 최상의 열반 성취

물론 암베드카르가 설파하였듯이, 싯다르타의 출가가 생로병사의 문제에 기인한 것으로만 단선적으로 해석한다면 그 거룩함을 제대로 보지 못할 수도 있을 것이다. 불가촉천민 출신으로서 독립 인도의 헌법을 기초하고 초대 법무부장관을 지내는 한편, 인간 불평등의 힌두교와 절연하고 신불교운동을 전개한 불멸의 이름 암베드카르는, 그 불멸성을 더한 그의 저작 ‘붓다와 그 가르침’(1957)에서 다른 관점을 제시한 바 있다.

싯다르타의 출가는 샤카국과 콜리야국 간의 로히니강 수리권(水利權)을 둘러싼 분쟁을 해결하기 위한 선택이었다는 것이다. 콜리야국에 대해 전쟁을 감행하려는 샤카국 다수의 주전파들에 대한 분명한 반대와 평화적 해결을 제안한 싯다르타의 평화안은 공동체 내에서 부결되었고, 싯다르타는 주전파들의 위협에 역시 평화적으로 대응하기 위하여 출가를 감행하였다는 것이다.

이러한 관점은 팔리어 경전에 근거하여 개진되었고, 특히 29세라는 출가의 나이가 노병사에 대한 사문유관의 번뇌의 나이라 하기에는 설득력이 떨어지고 합리적이지 않다는 주장을 하고 있다. 이렇게 볼 때 싯다르타의 출가는 생후 7일 만에 어머니 마야 부인이 열반에 든 삶의 무상 내지 생로병사에 대한 본원적 질문과, 공동체의 책임 있는 일원으로서의 행동이 상승적(相乘的)으로 불러온 것이라 하겠다.

공자는 봉토(封土, 토지를 봉함)와 건후(建侯, 제후를 세움)의 주나라 봉건제도가 무너져 가고 있던 춘추시대에, 사회질서를 회복할 이상적 주체로 군자를 상정하고, 천하철환을 통해 덕의 군자정치를 모색한 사상가이자 행동가였다. 그의 사상과 행동은 생사대사와는 뚜렷한 친연성은 없다.

소크라테스는 사론(邪論)을 정론(正論)으로 만든다며 첫 번째 고발을 당하고, 나라에서 섬기는 신들이 아닌 다른 신들을 섬기면서 청년들을 타락시킨다며 두 번째 고발을 당한 것에서 볼 수 있듯이, 그가 아테네에서 추구한 바는 지혜와 진실의 문제였다.

예수 또한 예루살렘성전 전복운동이 보여주는 바와 같이, 당대 지배체제와 가치체제를 해체하고자 한 종교정치적 항쟁이 그의 정체성이며, 새로운 천국을 선포하기 위하여 “나라가 임하시오며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마태복음 6:10)” 하고 기도하면서 구약을 말소하고자 한 것이었다.

공자와 소크라테스와 예수에게서는 붓다와 같은 생사의 본원사를 해명하기 위한 간절함과 구도상이 보이지 않거나 약하게 보이는 것이 사실이다. “지금 내 마음이 너무도 간절하니 말에 안장을 얹어 빨리 끌고 오라. 불사(不死)의 경지를 얻기 위해 성을 나가겠다(불교성전 1-3-4)”고 마부 찬나에게 한 싯다르타의 말은, 유성(踰城, 성을 넘음)도 마다하지 않는 출가의 결연함이었다. 싯다르타는 우루웰라 근처 세나니마을에 이렇게 명상하였다.

“나는 생로병사, 슬픔, 번뇌에 묶여 있지만 그 재난을 알기 때문에 그 묶임에서 벗어나고자 생로병사, 슬픔, 번뇌가 없는 최상의 안온인 열반을 구하였다. 나는 속박에서 벗어나 번뇌 없는 최상의 안온인 열반을 성취하였다. 그때 나에게 ‘나의 해탈은 움직일 수 없이 견고하다. 이것이 나의 마지막 탄생이다. 다시 태어나는 일은 없다’라는 지혜와 통찰력이 생겼다(맛지마니까야26).”

여기서 ‘이것이 나의 마지막 탄생이다. 다시 태어나는 일은 없다’는 말씀은 열반과 해탈을 통해 윤회를 벗어남을 뜻하는데, 이는 필시 태어남[生]도 무상하기에 고(苦)라는 붓다의 관점이 내재해 있다. 붓다의 고관(苦觀)은 모든 무상함을 고라 보는 것이다. 그래서 노병사만이 고가 아니라 생도 고가 된다.

만물은 덧없어 오래 보전하기가 어렵듯이, 사람의 목숨도 그와 같아서 강물이 밤낮으로 쉬지 않고 흐르는 것처럼 기약할 수가 없는 것이다. ‘대반열반경’ 수명품(불교성전 2-1-1)은 이렇게 설하고 있다.

“모든 세상에 태어난 것은 다 죽고 마니, 목숨이 길다 해도 반드시 끝이 있네. 성한 것은 반드시 쇠하고, 모인 것은 마침내 헤어지네. (…) 모든 고통의 바퀴 끝날 새 없고, 나고 죽고 헤매는 일 쉬지 않으니, 삼계 덧없는 세상 모든 것이 하나도 즐겁지 않네.”

박희택 열린행복아카데미 원장 yebak26@naver.com

[1607호 / 2021년 11월3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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