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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 알아야 대응도 가능하다

기자명 이병두

대학원 시절부터 이제까지 수십 년 동안 ‘논어(論語)’ ‘맹자(孟子)’와 ‘시경(詩經)’ ‘서경(書經)’ 등 중국 고전을 읽을 적에 늘 옆에 두고 참고로 하는 책이 있다. 제임스 레게(James Legge, 1815~1897)라는 스코틀랜드 출신의 선교사가 이미 백 수십 년 전에 자세한 주석을 달아 내놓은 ‘4서 3경’의 완벽한 영어 번역인데, 2천 수백 년 전에 세상에 나온 중국 고전의 맛을 제대로 느낄 수 있어서 편하다.

제임스 레게는 1839년 선교사로 현재의 말레이시아 말라카(Malacca)에 갔다가 홍콩(香港)을 거쳐 상하이(上海)·톈진(天津)·베이징(北京)에 오래 머무르며, 중국인들의 도움을 받아 이 방대한 작업을 마무리하였다. 훗날 그는 영국 옥스퍼드대학 중국학과 설립에 참여하여 교수로 후학을 양성하는 한편, 막스 뮐러(Max Müller)와 함께 인도와 중국의 고전을 번역하여 ‘동방성서(Sacred Books of the East)’ 50권을 세상에 내놓기도 하였다. 고전 번역뿐 아니라 ‘공자의 생애(The Life and Teaching of Confucius)’(1867)·‘맹자의 생애(The Life and Teaching of Mencius)’(1875) ‘중국의 종교(The Religions of China)’(1880) 등 중국 문화 관련 저서 여러 권을 출간하고, 영국의 아편 정책을 신랄하게 비판하며 아편무역 반대 단체 창립회원으로도 활동하였다. 간략하게 살펴본 그의 이력으로 볼 때 처음에는 기독교 선교를 목적으로 중국에 와서, 그 선교에 필요한 중국문화를 연구하다 자연스럽게 중국을 이해하고 좋아하는 학자가 된 인물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왜 이 사람 이야기를 할까.

올해 1월5일자 법보신문 칼럼 ‘예수회와 마테오 리치의 이중성’에서 가톨릭 예수회 선교사 마테오 리치가 ‘교활’이라는 표현이 어울릴 정도의 수법을 쓰면서까지 중국에 안착해 선교에 나서 가톨릭을 뿌리내리려 애썼던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이처럼 신·구교를 막론하고 기독교가 다른 지역 선교에 나설 때에는 서양 제국주의자들의 막강한 지원이 함께했을 뿐 아니라 선교사들이 현지 사정과 문화를 파악하여 전문가 수준에 이르러 현지 고위급 인사나 지식인들과 편안한 관계를 만드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리고 이런 그들의 전통은 오늘날까지 이어져서, 한국불교를 전공하는 내외국인 신학자들이 매우 많다. 그런데 스님들은 말할 것도 없고, 재가불자들 중에 기독교 신학이나 기독교 역사를 전공하여 학계에서 인정받고 신학계와 역사학계에서 활동하는 학자들도 별로 없다.

몇 년 전부터 개인적으로 기독교 신학자들과 자주 만나 이야기를 나누는데, 그들 중에는 불교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은 사람도 있다. “불교인들이 기독교를 너무 모릅니다. 기독교 성서를 읽어본 사람도 드물지만, 기본적인 기독교 역사서조차 읽지 않고 겉으로 드러나는 좋지 않은 현상들만 보고 기독교를 비하·폄하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스님과 재가불자들 중에 기독교를 연구·전공하는 분들이 많아져서 상호 이해에 바탕 한 종교 대화가 이루어지면 좋겠습니다.” 그들이 이구동성으로 하는 말인데, 이 말을 들을 적마다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난감하다.

문제는 이런 상황이 내 개인을 어렵게 하는 데에 그치지 않는다는 것이다. 마테오 리치처럼 교활하게 할 필요는 없지만, 최소한 교양으로서라도 기독교의 본질과 역사를 공부하고 이해해야 다종교 사회인 한국에서 우리의 역할을 제대로 할 수 있을 것이다.

흔히 ‘남을 알고 나를 알아야 한다’는 말을 많이 하지만, 불교인들처럼 남을 알려는 노력을 기울이지 않는 사람들도 없을 것이다. 기독교 역사와 움직임을 잘 읽고 우리가 배워야 할 것이 있으면 과감하게 받아들이고 비판이나 대응이 필요할 경우에는 그에 맞추어 갈 수 있어야 한다. “상대를 모르면 계속 수모를 당할 수밖에 없다.” 어느 종교간 대화 모임 실무자 입에서 “불교 쪽은 회비 잘 내고, 밥 잘 삽니다”는 말을 듣는 순간 불편해서 혼났다.

이병두 종교평화연구원장 beneditto@hanmail.net

[1608호 / 2021년 11월10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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