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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없는 자리에는 꽃이 피지 않는다

  • 불서
  • 입력 2021.11.08 13:41
  • 호수 1608
  • 댓글 1

장애인불자모임 보리수아래 대표
시로 전하는 ‘일체유심조’ 가르침

심검당 살구꽃
최명숙 지음/ 도서출판 도반
148페이지 / 1만2000원

심검당 살구꽃
심검당 살구꽃

시(詩)를 소개하기란 참 난망하다. 시란 마음을 글로 표현한 것이라 사람에 따라 달리 읽히기도 하고 같은 구절에서 시인과 다른 감흥을 느끼기도 한다. 그래서 시는 쓰는 사람의 몫이기도 하지만 읽는 사람이 주인이기도 하다. 학교는 한참 배움의 시절에 시를 읽는 법을 가르치지 않았다. 시를 쪼개고 분석해서 정답을 강요했다. 시인은 이미 가고 없는, 주인 없는 시에서 학교가 정해 준 답이 참인지 물어볼 길이 없었고. 그렇게 시는 어렵고 이해하기 어려운 난해한 암호가 돼 버렸다.

시인은 넘치지만 시를 읽고 이해하는 사람이 적은 것은 아마도 이런 이유에서 일 것이다. 손가락이 달을 가리키면 달을 봐야 하지만 우리가 손가락의 굵기와 크기와 색깔을 논하며 진땀을 흘리다 보면 달은 이미 달아난 지 오래다.

그러나 시를 읽을 때 시인의 시심을 정답처럼 찾아내겠다는 강박증을 버린다면 시는 우리에게 많은 것을 선물한다. 시인이 보던 풍경과 감성, 마음을 넘어 내 추억 속 박제화 된 옛 기억들이 당시의 감흥과 함께 되살아난다.

최명숙 시인의 시집 ‘심검당 살구꽃’은 가볍고 날렵하다. 쉽게 읽히고 또한 이해하지 못할 구석도 없다. 읽고 나면 명상이나 참선을 한 마냥 청량하고, 누각에 올라 바람을 맞는 것처럼 시원하다.

떨어지는 꽃잎도/ 지는 달빛도/ 모두가 텅 비고 비어/ 쉼 없이 지나가는 계절에/ 밤과 낮을 돌고 돌아온 자리/ 마음 없는 자리에는 꽃이 피지 않았고/ 밖에 있는 마음에는 달이 뜨지 않았다. -‘부석사의 봄’ 중에서.

그러나 시는 단순히 풍경을 보고 느낀 감상을 전하는 것만은 아니다. 풍경 없는 세월에서 가버린 풍경을 읽고, 시간을 읽고, 공간을 읽고, 결국 마음을 읽는다. 시를 통해 모든 것은 마음이 지을 뿐 마음 밖에는 아무것도 없다는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의 가르침을 읽게 되면 시는 시가 아닌 부처님의 음성임을 알게 되는 것도 최명숙 시의 특징이다.

최명숙 시인은 장애인 불자들의 모임인 보리수아래 대표를 맡고 있다. 그 또한 장애인이다. 어쩌면 최 시인이 겪는 생활 속 작은 불편들이 세상을 더욱 낮고 깊게 들여다보고, 사람들을 향한 자비와 연민의 마음을 더욱 크게 내게 하는 동력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최 시인의 시는 내가 아닌 남을, 사람이 아닌 풍경을, 사물이 아닌 마음을, 그리고 한없는 자비를 불러일으키는 묘한 울림을 선사한다.

김형규 대표 kimh@beopbo.com

[1608호 / 2021년 11월10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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