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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닷가 몽돌의 찬란함

기자명 금해 스님

함께하는 안거 기간 동안
서로를 통해 수행도 깊어져
‘절차탁마’ 두려워하지 말고
‘지독한 도반’ 스승 삼아야

바다를 마주하면 많은 것을 배웁니다. 푸르른 바다는 수평선을 따라 끝없이 넓고 아득히 깊어 무량한 붓다의 지혜를 보게 하고, 바위에 부서지는 파도는 무상(無常)을 설파합니다. 경전에 나오는 법해(法海), 해조음(海潮音), 물거품의 비유가 얼마나 적절한지 매번 감탄합니다. 

그 가운데 몽돌이 반짝이는 바닷가를 볼 때면, 마치 수행자를 보는 것 같습니다. 크고 작은 몽돌은 각각의 색깔과 모양을 갖고, 파도가 스쳐 지나갈 때마다 서로 어울려 부딪히며 물빛에 반짝입니다. 동글동글 몽돌 사이로 바닷물이 흘러내리는 소리는 음악처럼 아름답습니다. 때로는 자장가처럼 편안하고, 때로는 깊은 명상에 들게 합니다. 이토록 부드러운 소리를 만들어내기까지 몽돌은 그 자리에서 천 년의 시간을 지냈을 것입니다.

동안거가 다가오는 이 시절이면, 스님들은 대중을 이루며 한 곳에서 수행 정진합니다. 마치 큰 파도에 쓸려 다니며, 부딪치며, 서로의 모서리를 쪼개며 둥글어지고 매끄러워지는 몽돌과 같습니다. 대중과 함께 살며 만들어가는 시간은 아프고 매섭습니다. 절차탁마(切磋琢磨)는 개인적 수행도 더욱 깊게 해 줍니다. ‘지독한 도반이야말로 참 스승이고, 진짜 공부구나’하고 절실하게 느끼기도 합니다. 이 순간을 공부로 만드는 과정은 고통스럽습니다. 때로 화두조차 잊을 정도로 혼란스럽고 절박한 순간도 있습니다.

수행뿐 아니라 학문이나 예술 창작, 기술, 사업이나 인연 사이에서도 절차탁마의 시간을 거쳐야 성공을 이룹니다. 여러 비판과 자문, 경쟁 속에서 갈고 쪼개며 숫돌에 다듬고 수련해야 가장 빛나는 나를 만날 수 있습니다.

경제학계에서 맬서스와 리카도의 유명한 논쟁에 관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토머스 맬서스와 데이비드 리카도는 영국 고전경제학의 이론체계를 완성하여 19세기 경제학 발전에 기여한 인물들입니다. 같은 세대의 같은 분야에서 두 사람은 최대의 경쟁자였습니다. 

맬서스와 리카도는 태생과 성장 과정도 달랐습니다. 맬서스는 유서 깊은 가문에 태어나 쾌활한 성격으로 엘리트 교육을 받았으며, ‘경제학 교수’라는 직함을 최초로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저서 ‘인구론’을 통해 인구 증가로 인한 부정적인 미래를 주장했지요.

반면 리카도는 유대인 이민자의 아들로 태어나 정식 교육을 받지 못했으며, 열 네 살에 아버지의 주식 중개인 사업에 뛰어들었습니다. 타고난 사업 천재성으로 20대 초반에 이미 큰 돈을 벌어들였습니다. 그는 우연히 애덤 스미스의 ‘국부론’을 읽고, 27세 때부터 10년 동안 경제학을 독학했습니다. 

정규 과정을 거친 맬서스와 홀로 실전을 통해 배운 리카도는 상반되는 논쟁으로 여러 문제에서 대립하고 서로를 정면 비판했습니다. 어느 날 맬서스는 리카도에게 만나서 이야기나 나눠 보자고 편지를 썼습니다. 그렇게 만난 두 사람의 치열한 토론은 서로를 성장케 하며, 새로운 학문이 열리는 만남으로 이어갔습니다. 

피 말리는 원수인 동시에 가장 친한 벗이 된 것입니다. 부유했던 리카도는 죽을 때 세 사람에게 유산을 남겼는데, 그중 한 사람이 평생의 경쟁자이자 벗이었던 맬서스였습니다. 맬서스 또한 눈을 감을 때 “가족을 빼고 내 일생에서 그토록 사랑했던 사람은 없었다”며 리카도를 그리워했습니다.

두 사람이 평생을 함께한 논쟁과 우정은 지금도 전설처럼 알려져 있지요.

금해 스님
금해 스님

스님들뿐 아니라 우리 모두가 어울려 사는 ‘대중’입니다. 그러니, 상처받지 않고 성장할 수는 없습니다. 마음 아픈 절차탁마를 두려워하지 않는다면, 아내든 이웃이든, 직장 상사든, 모든 곳에서 나를 더욱 빛나게 할 최고의 도반을 만날 것입니다. 망망대해의 거친 파도를 두려워하지 않고 함께 어울려 빛나는 찬란한 몽돌처럼.

금해 스님 서울 관음선원 주지
okbuddha@daum.net

 

[1608호 / 2021년 11월10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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