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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행자 유언장 효력 높일 민법개정 환영

기자명 법보
  • 사설
  • 입력 2021.11.15 13:32
  • 호수 1609
  • 댓글 0

상속인 많은 유류분 제도
유언의 자유 억제한 구조
‘형제자매 유류분’ 삭제되면
독신 스님 정재 대폭 종단귀속  

법무부가 최근 “유언의 자유를 확대하고, 상속문화도 새로운 가족제도 환경에 맞춰 발전시켜 나가겠다”는 개정취지를 밝히며 현행 민법에서 규정하고 있는 ‘형제자매의 유류분’을 삭제하기로 하고 이를 입법예고했다. 이 법은 삼보정재를 좀 더 단단히 지켜낼 수 있기에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상속법에 대한 비판적 검토를 논의하는 과정에서 나오는 질문이 있다. ‘개인이 평생 축적한 재산을 생전·사후에 자유롭게 처분할 수 있는가?’ 법에 구애받지 않고 자신의 재산을 자신이 원하는 사람에게 마음껏 증여할 수 있느냐는 물음이다. 생전에는 증여 폭이 넓지만 사후에는 대폭 줄어든다. 상속인들의 권리를 못 박은 유류분제도가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현행법에서는 배우자와 직계비속(자녀·손자녀)에 대해서는 법정 상속분의 2분의 1을, 직계존속(부모·조부모)과 형제자매의 유류분은 3분의 1을 보장하고 있다. 1977년 민법에 처음 도입됐다. 입법취지는 유족들의 생존권을 보호하고, 상속재산형성에 대한 기여, 상속재산에 대한 기대를 보장한다는 것이었다. 장자상속 문화가 만연하던 시대에서 여성을 비롯한 다른 자녀에게도 최소한의 상속분을 보장할 수 있는 법이었기에 환영받았다.

여기서 눈여겨보아야 할 건 피상속인 사망 시 재산을 물려받을 상속인이 많다는 건 그만큼 망자의 자유의사가 억제된다는 사실이다. 유언을 통한 증여 즉 유증도 이 법으로 제한받기 때문이다. 대법원도 ‘상속인들의 상속분을 일정부분 보장한다는 명분 아래 피상속인의 자유의사에 기한 자기 재산의 처분을 그의 의사에 반하여 제한하는 것’이라고 설명한 바 있다. 미국의 상속법에서는 생존배우자에게도 유류분권을 제한적으로 인정하고 있다. 법정분할이 아닌 혼인기간과 생존배우자의 재산까지도 감안해 상속 규모를 정한다. 유언의 자유를 최대한 보장하는 구조다.

우리 사회도 유류분제도의 개선에 대한 논의를 오랫동안 해왔다. 산업사회로 접어든 이후 지난 40년 동안 정치, 경제, 사회가 급변하며 가족·친척에 대한 유대 관계도 급속도로 약해졌기 때문이다. 독립적 생계유지가 이러한 변화를 불러일으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공동의 상호부양·재산형성에 균열이 난 것이다. 이에 따라 상속분에 대한 기대를 보장할 필요성이 낮아졌다. 반면 망인의 재산처분 의사를 보다 자유롭게 보장해야 한다는 주장에 힘이 실렸다. 특히 ‘형제자매 유류분’이 도마 위에 올랐다.

조계종으로 눈을 돌려 보자. ‘비구·비구니는 법에 구애받지 않고 평생 축적해온 사유재산을 원하는 사람에게 원하는 만큼 줄 수 있는가?’ 가족 간의 인연을 정리하고 홀로 정진하는 수행자이기에 최소한 유증은 보장 받을 수 있을 것 같지만 아니다. 민법에서 보장하는 유류분제도에 막힌다. 

분한신고 때마다 ‘입적 시 사유재산을 종단에 모두 출연하겠다’는 유언장의 실효성이 낮았던 것도 민법에서 보장하고 있는 유류분 때문이었다. 유언장을 집행하려는 순간 입적한 스님의 속가 가족이 갑자기 나타나 우선 상속권을 요구해 소송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종종 벌어졌다. 실제로 고령의 스님이 직접 작성할 수 없어 주변인이 대필한 유언장이 문제 된 적이 있다. 유언집행자 자격을 인정받지 못한 조계종은 사후재산의 종단귀속을 포기했다. 또한 조계종이 소송에 승소했지만 유류분만큼을 제외하면 금액이 크지 않아 유언장 집행을 포기한 적도 있다. 

출가한 스님들이 독신이고, 대부분 부모님이 돌아가신 상태이기 때문에 속가로 빠져나간 유류분의 상당수는 입적한 스님들의 형제자매에게 돌아갔다. 따라서 민법에서 ‘형제자매 유류분’이 삭제되면 입적한 조계종 비구·비구니의 사유재산 종단 귀속은 사실상 100%에 가깝다. ‘입적 시 사유재산을 종단에 모두 출연하겠다’는 유언장의 법적 효력이 강력하게 발생하기 때문이다. 오랫동안 짓눌러왔던 난제 하나가 풀려 나가는 느낌이다.

2010년 4월, 조계종 종정 법전 스님은 “사후에 일체 사유재산을 조계종 유지재단에 유증한다”는 내용의 유언장을 종단에 전달했다. 해인사 퇴설당에서 유언장을 작성하며 전한 일언이 생생하다. “우리 몸뚱이까지도 시주물이므로 종단을 위해 사용해야 한다. 하물며 재산은 말할 것도 없다.” 조계종 외의 종단의 스님들도 유증에 깊은 관심을 가져주기 바란다.

[1609호 / 2021년 11월17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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