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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가의 정치와 불교 역할

중국 최초의 통일국가 진(秦)나라는 고작 14년밖에 가지 못했다. 단명한 이유는 무엇보다도 통치 방식일 것이다. 잘 알고 있듯이 핵심세력은 법가였다. 법은 이전 주(周)나라의 통치철학인 예와 악에 부수적인 것이었다. 군웅이 할거하는 시대가 되자 강대국에 병합되지 않기 위해 군주들은 부국강병을 추진하며, 법으로 그들의 권한을 강화했다. 결국 법은 통치자의 이익을 위해 백성을 도구로 쓰기 위한 전략이었다. 오늘날 법이 약자를 보살피지 못하고 가진 자의 편에 서 있는 관습은 그때 형성된 것인지도 모른다. 공맹이나 묵자가 설했던 인과 의가 그래도 통용되었지만, 전국시대로 넘어오면서 법가들 앞에서는 그 효용성이 떨어졌다. 

이 나라도 법가들의 정치가 대세다. 힘센 여야 정당의 대선후보 두 명이 법률가 출신이다. 불법선거 재판으로 변화는 다소 있지만, 현 21대 국회의원 중 검사, 판사, 변호사 출신은 45명으로 15.3%를 차지한다. 20대 때 또한 비슷하다. 전 국민 중 법률가의 비중 0.07%에 비하면 무척 기형이라는 생각이 들 것이다. 전문가들은 민의를 대변하는 국회 내 출신 직업의 불균형에 이의를 제기하고 있다. 이들을 선택한 유권자들의 잘못일 수 있지만, 공천하는 정당도 문제가 있다. 긍정적으로 생각한다면, 계몽기를 제대로 거치지 못한 이 나라에 법률 공급이 더 필요하다는 인식이 높기 때문이라고도 할 수 있다. 

그런데 복잡다단한 사회 문제를 법만으로 풀 수 있는가. 진나라를 움직인 한비자의 사상은 인간의 본성은 악하다는 성악설에 근거해 있다. 인간은 이익을 좇는 존재라고 규정한다. 먹는 것 자체가 자신의 보존을 위한 것처럼 자기중심으로 살 수밖에 없다고 한다. 따라서 도덕으로 무장한 덕치는 법치보다 못하며, 군주는 민중을 상벌이 분명한 법으로 다스려야 한다고 주장한다. 순자 또한 생리적 욕구가 인간 본성이라고 보았지만, 인간의 성정을 예로써 교화할 수 있다는 예치주의를 주장했다. 그가 “옛날 학자들은 자신을 위해 배웠는데, 지금의 학자들은 남을 위해 배운다”는 유명한 말을 한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러나 예치의 한계도 역사를 통해 알게 되었다. 심즉리(心卽理)에 의거한 왕양명의 지행합일 사상이 나온 것도 이러한 한계를 돌파하기 위한 것이다. 이는 중국사상사에서 불교가 실질적으로 인간과 세상의 근본문제 해결에 부합한다는 결론이기도 하다. 그 사상의 핵심은 양지(良知)다. 그는 육원정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선도 악도 헤아리지 않는 때 본래면목을 안다고 함은 부처님의 본래면목을 아직 알지 못한 자를 위해 시설한 방편이다. 본래면목은 곧 나의 성문(聖門)에서 이른바 양지다”라고 한다. 불성, 법성, 법신 등 인간과 세계의 궁극적 자리를 본체화한 대승불교가 중국에 이르러 꽃을 피운 것은 중국인들의 현실적인 사유 덕분이다. 천태의 실상론은 대표적이라고 할 수 있다. 

불교에서는 연기의 법칙에 의해 우리의 자성은 공하며, 따라서 선도 악도 개입할 수 없다. 이에 비추어 보면 법치의 한계가 드러난다. 인간은 법으로 통제가 가능하며, 법으로 이해관계를 조절하면 사회는 평화로울 것이라고 본다. 과연 그럴까. 현 시점에서 세계는 욕망을 통제하는 데에는 실패했다. 스스로 내관(內觀)하며 성찰하지 않는 한, 인간의 욕망은 경전의 말씀처럼 바람의 반대방향으로 횃불을 들고 가며 자신을 태우는 것과 다름이 없다. 사회를 통치하는 데 법이 도움은 될지언정, 문제의 본질에 접근할 수는 없다. 

법관에 대한 신뢰도 점점 무너지고 있다. 법률에 근거한 판결의 최종 책임자인 그들의 양심을 대중은 신뢰할 수 없다고 한다. 법의 강제는 인간의 자율개선 능력을 퇴화시키고, 무의미한 관계만을 양산할 뿐이다. 도치(道治), 덕치(德治)를 부활시켜야 한다. 법의 중핵인 공정성이 힘을 얻기 위해서라도 지도자들에게 구도자적 삶이 요구된다.

불교는 정치가들에게 자심을 향한 회광반조의 힘과 인간에 대한 통찰력, 그리고 사회적 통합 능력을 얼마나 갖췄는가라고 물어야 한다. 이는 불교의 정치 참여를 향한 자신만의 방법이기도 하다.

원영상 원광대 원불교학과 교수 wonyosa@naver.com

[1609호 / 2021년 11월17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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