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20. 수행 공동체의 복원

일 없이 수행에 전념할 수 있는 공동체가 사찰

수행이란 출가공동체 구성원들이 정해진 일과 보내는 삶
주지스님 비롯한 일체 보직·행정은 수행공동체 위한 외호
선원은 많이 향상됐지만 염불당·강당은 아직 그렇지 못해

신규탁 교수는 “출가자들이 수행에 전념하도록 모든 행정이 뒷받침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신규탁 교수는 “출가자들이 수행에 전념하도록 모든 행정이 뒷받침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일’ 없이 ‘수행’에만 전념하고 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막상 이렇게 말을 해놓고 나니, 그러면 과연 ‘수행’이 무엇인가를 설명해야 한다는 생각이 스쳐간다. 짧은 신문 지면에 ‘수행’에 대해 설명하기는 쉽지 않기 때문에, 또 위의 첫 문장에서 전하려는 의도는 ‘일 없이 사는 삶’이기 때문에, 밖으로 드러나는 형태적인 측면에서 ‘수행’을 간단히 말해두기로 한다. 위에서 필자가 말하는 ‘수행’이란, ‘출가 공동체의 구성원으로 대중들과 함께 정해진 일과(日課)를 보내는 삶’ 정도로 말해두고자 한다.

대중들과 함께 조석으로 예불하고 사시(巳時)에 예참하며, 그리고 세끼 식사하며, 공동체 생활에 필요한 소임을 분담하여 살아간다. 그러면서 하루 중 대부분의 시간을, 화두를 들어 참선을 하거나, 아미타불의 명호를 불러 삼매를 닦거나, 경상에 앉아 책을 펴고 간경을 하는 등 일과(日課)를 보낸다. 이렇게 지내는 것을 필자는 ‘일 없이 사는 삶’이라고 표현한 것이다.

많은 종교학자들이 말하고 있다. 불교의 특징은 ‘수행’이라고 말이다. 가족 공동체를 떠나는 소위 출가(出家)해서 수행 공동체의 한 구성원으로 살아간다. 그런데 비록 출가해서 수행하는 것이 불교의 오랜 전통이기는 하지만, 현실은 꼭 그렇지만은 않다.

위에서 ‘현실’이라 말했는데, 어떤 현실인가? 문화체육관광부에서 발간한 ‘2018년 한국의 종교현황’에 따르면 우리나라 불교종단은 모두 486개라고 한다. 대표적인 종단으로 조계종이 있지만, 우리나라 전체 스님 중에서 조계종에 속한 스님은 채 반도 안 된다. 조계종 스님들은 가족 공동체를 떠나 소위 출가(出家) 독신(獨身)을 원칙으로 한다. 그런데 우리나라 스님의 과반수를 차지하는 대부분의 군소 종단 스님들은 삭발하고 승복은 입었지만 가정을 꾸린 경우가 많다. 그들은 대부분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기 때문에, 그에 따르는 ‘일’을 해야 한다. 결과적으로 ‘일 없이 사는 삶’과는 멀어진다.

그들이 하는 ‘일’의 형태로는 대부분 ‘자기 절 주지’ 직책을 맡거나, 또는 ‘남의 절 부전’을 맡거나, 또는 전통 범패나 작법으로 남을 위해 재(齋) 지내러 다니는 일을 하는 소위 ‘중생교화’ 활동을 한다. 자신의 성불을 뒤로 미루며 중생을 구제하겠다고 서원을 세운 ‘대승보살의 길’을 실천한다고 말할 수도 있다. 또 보기에 따라서는 ‘직업화’되었다고 말할 수도 있다.

그러나 대승보살의 길을 가던, 또는 직업화의 길을 가던, 불교의 핵심에 수행이 있음은 부인할 수 없다. 또 가정을 꾸리면 생계를 위한 ‘일’을 해야 하는 만큼 수행에 전념할 시간이 줄어든다는 것도 부인할 수 없다. 그러니 수행을 위해서는 출가독신이 유리하다. 기왕에 출가독신을 선택했으면 신도들과 관계하는 일을 좀 미루고 자기 수행에 전념하도록 해야 할 것이다. 그렇게 마음먹은 스님들이 그렇게 살 수 있도록 종단의 환경을 만들어 드려야 할 것이다.

출가독신을 원칙으로 하는 조계종의 경우는 그 어느 종단보다 수행 환경이 좋다. 가족을 떠났으니 가족의 생계를 위한 ‘일’을 할 필요가 없다. 그러니 출가하여 종단의 스님이 된 것만으로도 이미 큰일을 한 셈이다. 이렇게 큰 결단을 한 출가자들을 위해, 그들이 수행에 전념할 수 있도록 모든 제도와 행정이 뒷받침되어야 할 것이다. 이런 뒷받침이 종학(宗學)의 차원에서 정립되어야 할 것이다.

길게 논의할 지면이 없으니 비유를 들어 간단하게 설명하겠다. 군인 중에 공군이 있는데, 공군의 핵심은 전투기 조종사이다. 한 명의 조종사를 위해 수많은 사람이 종사한다. 그와 마찬가지로 한 명의 수행자 스님을 위해, 주지 스님을 비롯한 수많은 스님들이 종사해야 한다. 출가하여 처음 배우는 책이 ‘치문’인데, 이 책에 주지의 책무에 대해 곳곳에서 그렇게 말하고 있다.

이 글의 위에서 필자는 ‘수행’의 방법으로 참선, 염불, 간경, 이 셋을 사례로 들었다. 전통적으로 출가독신 교단에서는 이런 수행을 할 수 있도록 제도와 행정을 뒷받침해왔다. 이런 염원이 매일 법당에서 부처님 전에 축원하는 형식으로 정착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즉, ‘참선하는 수행자는 의단이 드러나고, 염불하는 수행자는 삼매가 드러나고, 간경하는 수행자는 지혜가 밝아지게 하소서.’ 그리하여 ‘선원’과 ‘염불당’과 ‘강당’을 각각 운영해 왔다. 이곳이 바로 수행의 현장이다.

조계종에서는 매년 음력 10월15일, 금년에는 양력 11월19일(금요일)이 되면 동안거를 시작한다. 전국의 ‘선원’에 수행자들이 3개월간 화두를 들고 수행에 전념한다. ‘일 없이 수행’에만 전념하고 산다. 해방 이후에 소위 ‘독신-취처’의 분규가 일어나게 된 원인 중의 하나가 바로 여기에 있었다. 즉, 일 없이 수행에만 전념할 수 있도록, 산중에 있는 큰절 몇 개만이라도 독신출가자들에게 돌려달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당시 ‘취처측’은 이 요구를 거절했고, 결국에는 법정 분쟁을 비롯한 험한 갈등을 거쳐 전통으로 내려오는 사찰 대부분을 ‘독신측’이 살게 되었다.

불과 엊그제의 일이다. 당시 이런 움직임의 핵심이 ‘수행’이었다. 그러면 지금 과연 그때에 그렇게 절실했던 ‘수행’을 위해서 제도와 행정이 뒷받침 되고 있는가? 깊이 반성해볼 일이다. ‘선원’의 경우는 많이 향상되었다. 그런데 정토 수행을 하는 ‘염불당’이나 경전을 공부하는 ‘강당’은 그렇지 못하다.

지금은 ‘승가대학’이라는 명칭으로 정식 승려인 비구가 되기 위한 승가교육기관이 운영되고 있다. 말 그대로 이곳은 ‘교육기관’이기 때문에, 4년이라는 소정의 수업연한이 지나면 떠나야 한다. 일 없이 수행하면서 즉 경전을 보면서 일생을 살 수 있는 수행공간은 현실적으로 없다. 필자 주변 사람들은 그런 공간을 종종 ‘경원(經院)’이라 부른다. 정식 스님을 만들기 위한 승가대학이나, 스님들을 가르치는 교수를 양성하는 승가대학원이 아닌, 그야말로 부처님의 경율론 3장을 연구하는 수행 공간이 필요하다.

역시 마찬가지이다. 남의 재(齋) 지내러 다니는 데에 필요한 전통 범패나 작법을 교육하는 곳이 아닌, 나 자신의 정토신앙을 하는 ‘염불당’이 필요하다. ‘만일염불회’의 전통이 끊어진지 오래이다. 아침과 저녁 예불을 마치고 나면 만일염불회 대중들은 염불원 대방에 다시 모인다. 북 광쇠를 치면서 대중들이 장단에 맞추어 송주를 외운다. 아침 공양과 사시 예불 사이에도, 점심 공양 이후 저녁 예불 이전에도, 저녁 예불 끝나고도, 이렇게 네 차례 염불 수행을 한다. 이런 수행을 하면서, 틈틈이 어장 스님들께 안채비나 짓소리를 배웠던 것이다. 요즘처럼 자신의 정토수행은 없이 그저 범패나 작법만 배우는 교습소와는 철학이 다르다.

참선이 되었건, 염불이 되었건, 간경이 되었건, 일 없이 수행할 수 있는 공동체가 사찰이다. 주지를 비롯한 일체의 보직과 행정은 그것을 위한 외호이다.

신규탁 연세대 철학과 교수 ananda@yonsei.ac.kr

[1609호 / 2021년 11월17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 이 기사를 응원해주세요 : 후원 ARS 060-707-1080, 한 통에 5000원

저작권자 © 불교언론 법보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광고문의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하단영역

매체정보

  •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 19 르메이에르 종로타운 A동 1501호
  • 대표전화 : 02-725-7010
  • 팩스 : 02-725-7017
  • 법인명 : ㈜법보신문사
  • 제호 : 불교언론 법보신문
  • 등록번호 : 서울 다 07229
  • 등록일 : 2005-11-29
  • 발행일 : 2005-11-29
  • 발행인 : 이재형
  • 편집인 : 남수연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재형
불교언론 법보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