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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절이 주는 가르침

기자명 성원 스님

정토신앙·수행 강조하시던
노년의 은사스님 돌아보니
참선 힘겨워할 제자들 향한
따뜻한 배려의 당부였을 것

대설주의보가 내려졌다. 가을 단풍 이야기가 회자 되지도 않은 것 같은데 갑자기 대설주의보 뉴스를 듣고 한라산을 바라보니 산정에 눈이 가득하다. 저녁에 차가워진 기온이 예사롭지 않다. 이렇게 또 한해의 가을이 가고 해를 걸쳐 겨울이 펼쳐지는가 보다.

나이가 들어 계절의 흐름에 애잔함이 느껴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사춘기 젊은 시절엔 변화 그 자체가 가슴 설렘이었다. 하지만 나이가 들면서 계절의 변화에 대한 느낌은 점점 무디어지고 그저 세월의 흐름이 자꾸 애잔하게 느껴져서 아쉬움이 더하는 것 같다. 시간은 젊은이나 장년이나 늙은 사람 모두에게 평등하게 흘러가지만, 그 흐름에 앞에서 전해 받는 감성과 느낌은 참 다른 것 같다.

지금까지 살아온 시간을 되돌아보니 출가 전후의 시간이 똑같다. 내년이면 이번 생에 출가자로 사는 시간이 더 많아진다. 세속에서의 삶 중에서 태어나 유년 시절과 철없었던 시절을 빼고 나면 사실 생애의 대부분을 출가자로 살았다. 그러다 보니 계절의 흐름에서 느껴지는 아쉬움은 항상 초발심 출가 때를 기준으로 지난 1년을 돌아보게 되는 것 같다.

은사스님께서는 노후에 정토신앙에 깊은 방점을 두고 삶을 여미어가셨다. 수시로 상좌에게도 아미타불에 지극히 귀의하는 삶을 일구어 가기를 당부하셨다. 하지만 혈기 왕성한 기운에 스스로 당장에라도 도업을 성취할 듯 허우적대는 것을 보실 때면 그저 미소만 지으시면서 “부디 60이 넘으면 모든 걸 내려놓고 오직 ‘아미타불’을 염하라”고 간곡히 당부하셨다. 당시에는 스님의 당부라 거부하지 못하고 건성건성 “그러겠습니다” 답을 했다. 벌써 스님 가신지도 5년이 더 지나고 아득하게만 보이던 인생 이순(耳順)의 나이가 되어 나뭇잎 하염없이 져가는 가을을 앞에 두고 보니 스님 생각이 간절하다. 이제서야 스승의 간절한 당부 말씀이 가슴져미게 느껴져 온다. 스님의 당부를 되새김하고 있을 즈음 어느 날 갑자기 조소영 불자님이 미국에 주석하시는 대만 출신 영화 스님의 ‘정토수행 지침서’를 번역 출간했다며 보내왔다. 책을 받고 오랜만에 통화하면서 재가불자로서 나름 열심히 수행하면서 정토신앙을 접하는 기회가 되었다면서 정토신앙에 큰 관심을 보였다.

은사스님께서는 말년에 큰 바위에 영명연수선사의 ‘참선염불사료간(參禪念佛四料簡)’을 새기시어 도량에 세워두기까지 하시면서 우리들에게 정토염불의 중요함을 간곡히 가르치셨다. 어찌 보면 참선수행보다 염불수행을 더 중요시 가르치는 것 같았다. 간화선 풍토가 만연한 우리 불교계에서는 간과되기도 하지만 연수선사께서는 참선으로 대도를 성취하기가 쉽지 않음을 간곡히 가르치시며 대중들을 보다 안전한 신앙 수행의 길로 안내하시려고 게송을 지어 전하신 것이다.

은사스님께서는 혹여나 제자들이 힘겨운 참선수행에서 미끄러져 나락으로 떨어질까 염려해 보다 안전하다고 생각하는 염불선을 당부하셨던 것이었다. 때 이른 폭설에 마지막 잎새가 떨 구워질 때가 되어서야 다시 한번 스님의 가르침이 더욱 따스히 가슴을 저며오는 것을 느끼게 되는 것 같다.

성원 스님
성원 스님

유선유정토(有禪有淨土). 참선 수행도 하고 염불 공덕도 쌓는다면, 장래에 부처나 조사가 될 것이니, 마치 뿔 달린 호랑이 같아서, 현세에서는 뭇사람들의 스승이 되리라. 차가워지는 날씨 앞에 서니 자꾸 우리 스님들의 따스한 가르침이 더욱 그리워진다.

성원 스님 약천사 신제주불교대학 보리왓 학장
sw0808@yahoo.com 

 

 

[1609호 / 2021년 11월17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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