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수좌의 표상’ 인각 대종사, 금정산 지수화풍으로 돌아가다

  • 교계
  • 입력 2021.11.16 23:31
  • 수정 2021.11.19 22:00
  • 호수 1610
  • 댓글 0

금우당 인각 대종사 전국선원수좌회장
11월15일, 범어사서 영결식 및 다비식

40여 년 동안 선찰대본산 범어사에서 한결같이 운수 납자들을 제접하며 한국불교 선풍 진작에 힘쓴 금정총림 범어사 수좌 금우당 인각 대종사가 평생 정진해 온 금정산의 지수화풍으로 돌아갔다.

금정총림 범어사 수좌 금우당 인각 대종사의 영결식이 11월15일 범어사 대웅전 앞마당에서 전국선원수좌회장으로 엄수됐다. 완연한 가을 햇살은 도량을 청명하게 장엄했고 오색으로 물든 금정산 단풍도 스님의 마지막 길을 배웅했다.

명종5타로 시작된 영결식은 정만 스님이 사회, 원공, 창선 스님이 집전을 맡은 가운데 개식, 삼귀의, 영결법요, 행장소개, 추도입정, 추모영상, 법어, 영결사, 추도사, 조사, 조가, 헌화, 인사말, 사홍서원의 순서로 봉행됐다.

금정총림 방장 지유 대종사는 법어에서 “인각 스님이 입적했다는 갑작스러운 부고를 듣고 신라 때 원효 대사께 전생의 도반이었던 사복이라는 분이 찾아와 어머니의 장례식에 법문을 청했다는 이야기를 다시금 새기게 된다”며 “대사께서 ‘났다고 하는 것은 괴로움이다. 나지 말아라. 죽음이라고 하는 것도 괴로움이다. 죽지 말아라.’ 이렇게 법문하자 사복이라는 분은 ‘왜 그렇게 말이 많으냐. 생사고(生死苦)면 그만이지.’ 이렇게 말씀하셨다”고 전했다.

이어 스님은 “빠르고 늦음의 차이만 있을 뿐 누구나 결국 이 몸을 버릴 때가 온다는 가르침”이라며 “이 몸 받았을 때 스스로 제악막작 중선봉행하며 모든 망상 분별을 일체 쉬어버린 본래 모습을 찾아서 무거무래역무주(無去無來亦無住)의 주인공이 되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축서사 조실 무여 스님은 영결사에서 “선찰대본산의 승풍(僧風)을 환연일신(煥然一新)하시어 금어선풍(金魚禪風)을 진작하였으니 과연 총림 제일좌(第一座)로 면모를 유감없이 발휘하셨다”며 “대선사의 면목이 비록 비로정상(毘盧頂上)을 노닐지언정 사바중생을 위해 속히 차안(此岸)으로 발걸음 돌리시어 화광접물(和光接物)하시기 바란다”고 추모했다.

범어사 주지 경선 스님도 추도사에서 “대종사께서는 일찍이 우리 산문에 귀의하여 인내와 정진으로 삼학의 진수를 체득하고 오랫동안 금정산을 찾아오는 수좌들을 제접하셨다”며 “푸른 선기가 빛나던 법체는 또렷하게 우리 기억에 남아 그 빛은 저물지 않고 심인(心印)의 설법이 될 것”이라고 기렸다.

전국선원수좌회 대표 영진 스님 역시 조사에서 “‘생명을 내놓을지언정 화두를 잃지 말라’는 스님의 사자후가 아직도 귓가에 쟁쟁하다”며 “올곧은 모습의 스님을 따르던 후납(後衲)들은 고준한 활구참선(活句參禪)의 가풍을 거울삼아 미래제가 다하도록 견성성불(見性成佛)하고 요익중생(饒益衆生)할 것”이라고 염원했다.

재가불자를 대표해 박수관 범어사 신도회장은 “대종사님의 설법 중 자신이 음식을 먹어야 배가 부르고 다른 사람이 대신해서 먹어줄 수 없듯이 스스로 참된 자아를 찾아 정진하라고 당부하신 말씀을 가슴 깊이 새기고 있다”며 생전 가르침을 떠올렸다. 백종헌 국회의원도 “금정산의 선승으로 수행자의 길을 오롯하게 걸어오시며 남겨 주신 많은 가르침을 항상 새기고 실천하는 참불자가 될 것”이라고 발원했다.

문도대표 인사말에서 안국선원장 수불 스님은 “스님의 뜻을 받들어서 정진 또 정진할 것”, 장안사 주지 무관 스님도 “은사 스님의 뜻을 잘 받들어 신심과 원력으로 수행에 매진할 것”이라고 밝히며 영결식에 참석한 사부대중에 감사의 뜻을 전했다.

사홍서원으로 영결식이 끝난 후 인각 스님의 법구는 인로왕번과 명정, 오방번, 만장 행렬이 앞서는 가운데 평생의 수행처였던 금어선원을 출발해 율원과 설법전을 거쳐 일주문 앞에서 노제를 지낸 데 이어 범어사 경내 다비장으로 이운됐다. 소나무로 조성된 범어사 전통방식의 연화대에 안치된 스님의 법구는 “불 들어갑니다.”라는 외침과 함께 불기둥 속에서 금정산 지수화풍으로 홀연히 자취를 감췄다.

인각 스님은 1941년 충남 공주에서 태어났다. 범어사에서 능가 스님을 은사로 출가한 스님은 1970년 7월15일 범어사에서 광덕 스님을 계사로 사미계, 1972년 4월24일 범어사에서 석암 스님을 계사로 구족계를 수지했다. 스님은 범어사 강원 대교과를 졸업한 이후 태안사에서 범룡 스님을 모시고 ‘화엄경’을 공부했으며 이후 당대 선지식 구산, 전강, 경봉 스님 문하에서 정진했다. 성철, 향곡 스님 회상에서 용맹정진으로 선지를 참구했다. 스님은 1974년 송광사에서 첫 하안거를 지낸 이후 용화사, 해인사, 도성암, 칠불선원, 해운정사, 동화사, 봉암사, 통도사 등 제방 선원에서 안거를 이어갔다. 특히 1978년에는 부산 묘관음사에서는 향곡 스님을 조석으로 입실문신하며 지도를 받았다.

1982년 하안거부터 범어사 금어선원에서 입승을 맡은 스님은 이 때부터 금어선원에 방부를 들이고 정진 분위기를 독려했다. 이후 선원장, 유나, 수좌 소임을 맡아 범어사 승풍진작과 수행가풍을 일신하며 총림의 기틀을 다지는 데 매진했다. 이와 더불어 조계종 기본선원 교선사와 운영위원장, 전국선원수좌회 공동대표를 역임하며 제방 선원을 대표하는 수좌 스님들과 뜻을 모아 조계종의 수행가풍 확산에도 힘썼다. 

평생 올곧은 수좌의 표상으로 50여 년 동안 100안 거 가까운 세월을 용맹정진으로 일관해 온 스님은 11월11일 새벽 5시, 언제나 머물던 범어사 금어선원 청풍당에서 가을빛이 완연하게 물든 금정산을 뒤로 한 채 세수 81세, 법랍 52세로 고요히 원적에 들었다.

한편 스님의 49재는 11월17일 초재를 시작으로 24일 2재, 12월1일 3재, 8일 4재, 15일 5재, 22일 6재 그리고 12월29일 막재까지 모두 범어사에서 봉행된다.

 

부산=주영미 기자 ez001@beopbo.com

 
[1610호 / 2021년 11월24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 이 기사를 응원해주세요 : 후원 ARS 060-707-1080, 한 통에 5000원

저작권자 © 불교언론 법보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광고문의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하단영역

매체정보

  •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 19 르메이에르 종로타운 A동 1501호
  • 대표전화 : 02-725-7010
  • 팩스 : 02-725-7017
  • 법인명 : ㈜법보신문사
  • 제호 : 불교언론 법보신문
  • 등록번호 : 서울 다 07229
  • 등록일 : 2005-11-29
  • 발행일 : 2005-11-29
  • 발행인 : 이재형
  • 편집인 : 남수연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재형
불교언론 법보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