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20. 의성 고운사 42수관음보살도

기자명 이숙희

무수한 중생 구제할 천수관음보살마저 훔쳐가

681년 창건, 최치원이 자신의 자 고운 따서 사찰명 의미 바꿔
보기드문 독존 형식의 불화 ‘42수관음보살도’는 2016년 회수
유사한 시기 도난된 지장보살도 등 불화 5점은 아직 행방 묘연

1) 고운사 42수천수관음보살도, 1828년, 240X 210cm. 문화재청 제공. 2) 정병. 3) 42관음도 초본, 1828년, 219X 208cm. ‘한국의 사찰문화재’ 경상남도Ⅲ 1권(문화재청·불교문화재연구소, 2011).
사진1) 고운사 42수천수관음보살도, 1828년, 240X 210cm. 문화재청 제공.

경북 의성군 단촌면 고운사길 415 고운사에 봉안되어 있던 ‘42수 관음보살도’(1점)와 ‘아미타불회도’(2점), ‘지장보살도’(1점), ‘신중도’(2점) 등 불화 6점이 도난되었다. 1989년 1월부터 1997년 9월 사이에 집중적으로 일어났던 일이다. 이중 ‘42수 관음보살도’ 1점만 2016년 10월 서울 한 개인 사립박물관장의 수장고에서 발견되어 회수하였다.

의성 고운사(孤雲寺)의 연혁에 대해서는 이른 시기의 자료가 없고 조선 후기의 문헌에서 찾아볼 수 있다. 1879년에 간행된 ‘대산집’ 제12권을 보면 주에 고운사는 경상북도 의성 등 운산에 있는 사찰로, 681년에 의상이 창건하였다. 원래는 고운사(高雲寺)라 했는데 통일신라 때 최치원이 여지, 여사의 두 승려와 함께 가허루(駕虛樓)와 우화루(羽化樓)를 건립하고 자신의 자를 따서 고운사(孤雲寺)로 절이름을 바꾸었다고 한다. 권2에도 조선 영조 때 1759년 10월 고운사에서 문신 김매순이 대학, 논어를 가르쳤다는 내용이 여러번 나온다. 

당시 고운사는 조선 영조의 원당 사찰로 1744년 영조가 기로소(耆老所)에 입소한 것을 기념하기 위해 봉안각이 세워졌으나 불타 없어졌고 1902년에 고종의 기로소 입소를 축하하면서 지은 연수전이 전해진다. 19세기 중반의 ‘가산고’ 제2권에도 칠언율시 속에 고운사의 산내암자인 운수암(雲水庵)이 언급되어 있다. 그러나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고운사와 관련된 기록이 남아 있지 않은 점을 고려한다면, 아마도 임진왜란 때 폐사되고 그후 몇 차례 중건과정을 거치면서 18세기 중엽에는 사격을 갖추고 있었던 것으로 짐작된다.

고운사는 1910년대까지만 해도 경상북도 내의 46개의 사찰을 말사로 관장했던 큰 절이었던 만큼 명성도 높고 많은 문화재를 소장하고 있었다. 일제강점기 때 작성된 조선총독부의 ‘관보’ 제1789호를 보면 불상 40구와 아미타불탱을 비롯하여 석가여래탱, 다보여래탱, 보승여래탱, 묘색신여래탱, 광박신여래탱, 이포외여래탱, 감로왕여래탱, 치성광불탱, 관세음보살탱, 지장보살탱, 사보살탱, 팔금강탱, 신장탱, 사천왕탱, 시왕탱, 독성탱, 조사영탱 등 81점의 불화가 있었다는 것이다(‘일제강점기 경북사찰재산대장 집성’ 상, 경상북도 한국국외문화재연구원, 동북아불교미술연구소, 2018). 특히 불화의 경우, 이름이 생소하고 도상을 전혀 알수 없는 다양한 형식의 불화가 있었던 것같고 ‘42수관음보살도’는 관음보살탱에 해당하는 것으로 보인다.

회수된 ‘42수관음보살도’는 고운사 대법당에 봉안되어 있었던 것으로 도난 후에 장황과 화기가 일부 잘려나간 상태이다(사진 1). 천수관음보살을 중앙에 크게 그려 화면을 꽉 채우고 양 어깨 아래 좌우에는 작은 크기의 촉지인상과 설법인상을 배치하였다. 대부분의 조선시대 불화는 상하 2단 구도로 많은 권속들이 표현되지만 아주 예외적으로 독존 형식의 천수관음보살이 여래상 2구만 거느린 간략한 구도를 하고 있다. 커다란 키형의 광배를 갖추고 있는 천수관음보살은 얼굴이 몸에 비해 작은 편이고 두 다리의 폭도 넓어서 앉아 있는 자세가 상당히 안정감 있다. 특히 두 발은 모두 아래로 내리고 오른손은 오른쪽 다리 뒤로 바닥을 짚고 있고 왼손은 무릎 위에 걸치고 있는 모습은 윤왕좌(輪王坐)의 변형으로 보인다. 가슴 앞의 8개의 손을 제외하고 나머지 손은 17개씩 좌우대칭으로 배열하여 각각 지물을 들고 원형을 이루고 있는 42수의 천수관음보살이다.

사진2) 정병.
사진2) 정병.

얼굴은 갸름하고 이목구비도 작게 표현되었으며, 머리에는 높고 화려한 보관을 썼다. 팔은 비교적 가는 편이지만 지물을 잡고 있는 손가락은 섬세하고 우아하게 표현되었다. 8개의 손은 선정인 또는 설법인, 합장인을 하고 있거나 왼팔을 길게 내려 정병을 쥐고 있다(사진 2). 42수의 지물로는 오른손에 석장, 금강저, 견삭(羂索: 새끼줄), 경권, 일정마니, 보라(寶螺) 등이 있고 왼손에는 칼, 삼지창, 월광마니, 정병, 금강령, 염주 등을 쥐고 있다. 이러한 천수관음의 형상과 지물은 대체로 ‘천수경’과 ‘대비심다라니경’의 의궤를 따르고 있으나 지물의 내용에서 약간의 차이가 있다. 특히 어깨 아래로 여래상 2구가 놓여 있는 점이나 선정인 등의 수인, 정병을 크게 그려 강조한 점 등은 조선 후기의 ‘천수관음도’에서는 볼 수 없는 새로운 요소이다. 보통 ‘천수관음보살도’는 42수가 가장 많고 선재동자, 대나무, 파도와 같은 배경과 함께 등장하는 것이 공통된 특징이다.

천수관음보살은 주요 변화관음의 하나로 모든 병과 악업, 중죄를 없애주고 안락과 수명, 부(富)를 주는 대비관음으로 불리면서 널리 신앙되었던 보살이다. 원래 ‘천(千)’이란 매우 많다는 의미로 경전상에서는 그 형상에 관해 규정하지는 않았지만 대개 42개의 손으로 표현되며 각 손마다 한 개의 눈이 있는 것이 특징이다. 무수한 중생을 구제하기 위해서는 두 눈과 두 손으로는 부족하기 때문에 각 손마다 하나의 눈을 갖고 있고 중생의 고통을 보면 곧바로 도움을 준다는 매우 능률적인 신체를 갖추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팔의 수를 최대한 형상화하여 관음보살 중에서 가장 위력을 가진 자를 상징적으로 나타내며 천수천안관음보살(千手千眼觀音菩薩)이라 부르는 것이다.

1) 고운사 42수천수관음보살도, 1828년, 240X 210cm. 문화재청 제공. 2) 정병. 3) 42관음도 초본, 1828년, 219X 208cm. ‘한국의 사찰문화재’ 경상남도Ⅲ 1권(문화재청·불교문화재연구소, 2011).
사진3) 42관음도 초본, 1828년, 219X 208cm. ‘한국의 사찰문화재’ 경상남도Ⅲ 1권(문화재청·불교문화재연구소, 2011).

화면 아래 양쪽에 있는 화기는 많이 훼손되었지만 ‘도광(道光) 8년’이란 연호에 의해 1828년 5월 27일에 제작되었던 것으로 확인된다. 원 봉안처와 불화승의 이름에 대해서는 이 그림의 바탕이 되는 초본에서 찾아볼 수 있는데 현재 통도사성보박물관에 보관 중이다(사진 3). 초본은 밑그림이란 뜻이며 오른쪽 아래부분에 묵서로 고운사 대법당에 봉안된 것으로 도광 8년 5월에 퇴운당 신겸(信謙)이 42수관음탱을 출초했다고 적혀 있다. 이러한 기록이나 도상적 특징으로 본다면, 고운사 ‘42수관음도’는 1828년에 제작된 ‘천수천안관음보살도’로 봐야 할 것이다. 신겸은 경상북도 문경 대승사를 중심으로 형성된 사불산화파(四佛山畵派)를 대표하는 화승으로 18세기 후반에서 19세기 전반에 걸쳐 경상북도와 강원도, 충청북도 등에서 주로 활동하였다. 사불산화파는 조선 후기 불화에 새로운 양식을 도입하여 기존의 불화와는 다른 독특한 화풍을 이루었으며 19세기 말 이후의 불화에도 영향을 주었던 주요 불화 유파 중 하나이다.

도난된 의성 고운사 불화 6점 중 겨우 1점만 되돌아왔다. 도난문화재 중 일부는 제보나 수사를 통해 되찾게 되거나 간혹 절도범이 양심의 가책을 느껴 스스로 돌려주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은 원래의 자리로 돌아오지 못한다.

이숙희 문화재청 문화재감정위원 shlee1423@naver.com

[1610호 / 2021년 11월24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 이 기사를 응원해주세요 : 후원 ARS 060-707-1080, 한 통에 5000원

저작권자 © 불교언론 법보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광고문의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하단영역

매체정보

  •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 19 르메이에르 종로타운 A동 1501호
  • 대표전화 : 02-725-7010
  • 팩스 : 02-725-7017
  • 법인명 : ㈜법보신문사
  • 제호 : 불교언론 법보신문
  • 등록번호 : 서울 다 07229
  • 등록일 : 2005-11-29
  • 발행일 : 2005-11-29
  • 발행인 : 이재형
  • 편집인 : 남수연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재형
불교언론 법보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