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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 근기와 언어

스승 한마디 말에 깨달음을 얻다

선종 지도법은 불교사 혁명
상대 근기 맞춰 깨달음 견인
근기 둔하면 많은 언어 필요
근기 넘어서는 것은 ‘보리심’

중국 초기 선종의 특징 가운데 하나는 경전에 의지 않고 스승이 일러주는 말 한마디에 문득 깨달음을 얻는다는데 있다. 이를 ‘불립문자(不立文字) 직지인심(直指人心) 견성성불(見性成佛)’이라 한다. 선종의 스승들은 경을 강의하거나 깨달음에 이르는 특별한 방법을 제시하지 않는다. 즉시에 상대방의 근기를 파악하고 이에 맞는 언어를 구사하여 깨달음을 이루게 한다. 그러다 보니 선종은 부처님보다 조사나 스승을 더욱 추앙한다. 선종에서는 스승이나 조사가 곧 부처님인 것이다. 일반적으로 불교의 깨달음은 석가모니 부처님이 설하신 경전에 의지해 오래도록 수행을 해야만 성취할 수 있는 것으로 전해져왔다.

그러나 초기 선종은 이러한 기존의 불교전통을 단박에 깨뜨리고 획기적인 방편으로 수행자들을 지도했다. 무수한 세월에 걸쳐 온갖 바라밀을 닦아야만 성불할 수 있다는 경전의 가르침을 뛰어 넘어 ‘일초직입여래지(一超直入如來地)’ 즉 ‘단박에 부처의 지위에 도달한다’는 선종의 지도법은 가히 불교사의 혁명이라 할 수 있다. 스승의 단 한마디 말소리로 모든 인생의 문제가 해결된다는 것은 장광하고 난해한 부처님의 말씀보다 분명 파격적인 일이다.

이와 관련한 수많은 선종의 일화 가운데 널리 알려진 삼조 승찬 스님의 이야기를 회상해 보자. 승찬 선사의 속명과 출생 연대는 불분명하다.

수나라 때에 달마 조사의 뒤를 이은 혜가 선사에게 사십대 나이의 한 문둥병 환자가 불쑥 찾아왔다. 문둥병은 알다시피 천형괴질로 피부는 물론 뼈까지 곪아 다 녹아버리는 무서운 병이다. 그는 혜가 선사에게 “저는 죄가 많습니다. 부디 저를 참회시켜 주십시오” 하였다. 자신은 전생의 죄로 말미암아 이런 병에 걸렸다고 생각해서 부처님을 찾아 죄를 씻겠다고 찾아온 것이다. 그러자 혜가 선사는 “그대는 그 죄를 가져오너라. 내가 참회시켜 주겠다”고 말했다.

혜가 선사의 말을 들은 그는 흠칫하였다. 그리고는 자신의 죄를 찾기 위해 이곳저곳을 살펴보았다. 하지만 죄는 동쪽에서도 서쪽에서도 몸에서도 마음에서도 찾을 수가 없었다. 죄가 머물러 있는 곳은 아무 데도 없었다. 그가 묻고 혜가 선사가 답했다.

“죄를 아무리 찾아보아도 찾을 수가 없습니다.”
“그렇다면 그대의 죄는 이제 모두 참회되었느니라. 그대는 지금부터 불법승 삼보에 안주하여라.”

다시 문답이 오고 갔다.

“제가 화상을 뵈옵고 승보가 무엇인지는 알았으나 불보와 법보는 모르겠사오니 가르쳐 주십시오.”
“마음이 부처이며 마음이 법이니라. 불과 법이 둘이 아니니 승 또한 그러하니라. 그대는 알겠는가?”
“지금에야 비로소 죄의 성품이 안에도 중간에도 밖에도 없는 줄 알았으며 마음과 더불어 불법승 삼보도 둘이 아님을 알겠습니다.”

이 문답은 그가 스승인 혜가 선사의 짧은 한마디의 가르침에 불법을 깨달았음을 알려준다. 스승의 언어가 곧 체화된 것이다. 이에 혜가 선사는 그가 뛰어난 근기의 소유자임을 알고 바로 머리를 깎아 주며 출가를 시키고 “너는 나의 보배로다. 이름에 구슬 찬(璨)자를 써서 승찬이라 부르라”라고 했다. 그 뒤 승찬 스님은 복광사라는 절에서 구족계를 받고 병이 차츰 나아져서 2년 동안 스승인 혜가선사를 모시고 살았다. 병이 나은 후에도 머리가 하나도 나지 않고 붉은 색을 띠고 있었기 때문에 사람들은 그를 ‘적두 찬’이라 불렀다. 도신이라는 제자에게 법을 전하고 나무 밑에서 합장을 한 채 입적을 했다고 전해진다. 그 유명한 ‘신심명(信心銘)’의 저자이기도 하다.

위에서도 언급한 불교 용어에 근기(根機)라는 말이 있다. 이는 불도를 깨달을 수 있는 근성과 기질을 의미하는 것으로 근기가 뛰어난 사람일수록 많은 언어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많은 언어를 필요로 하는 사람은 그만큼 근기가 둔하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금구옥언(金口玉言)의 장대한 부처님 말씀은 상근기 사람들이 아닌 하근기 사람들 때문에 나온 것이라고 봐야한다. 그렇다고 자신의 근기만을 탓해서는 안 될 일이다. 근기를 넘어서는 것은 부단한 정진과 보리심이다.

이제열 법림선원 지도법사 yoomalee@hanmail.net

[1610호 / 2021년 11월24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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