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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두환씨, 백담사서 참회했어야 했다

기자명 법보
  • 사설
  • 입력 2021.11.29 11:30
  • 호수 1611
  • 댓글 0

5.18 학살·10·27 법난 자행한 전두환
눈과 몸의 털구멍에서 피 터져 나오는
참회했다면 진심어린 사과 했을 것

전두환씨가 11월23일 사망했다. 5·18민주화운동 유혈진압과 10·27법난에 대한 사과는 끝내 없었다. 같은 날, 5·18 당시 입은 총상으로 극심한 후유증에 시달려왔던 이광영씨가 생을 마감했다. 고인은 유서를 통해 “어머니께 죄송하고, 가족에게 미안하고, 친구와 사회에 미안하다”고 했다. 

스님이었던 고인은 1980년 5월18일 부처님오신날 행사 준비 차 광주 증심사에 왔다고 한다. 다음 날인 19일 계엄군의 만행을 목도하고는 적십자 봉사단에 입단했다. 부상자 후송 등을 맡았는데 21일 차를 타고 이동하다 계엄군이 쏜 총에 허리를 맞았다. 하반신 마비의 삶을 살다가 1988년 파편 제거 수술을 받았지만 진통제 없이는 견딜 수 없는 통증에 시달려야만 했다.

극심한 고통을 안고도 1988년 국회 광주특위 청문회, 1995년 검찰조사, 2019년 ‘5·18헬기 사격’을 증언했다. 최근 들어 통증이 더 심해졌다고 한다. 익산 자택에 유서를 남기고 고향인 강진의 한 저수지에서 스스로 생의 마침표를 찍었다. 전두환씨 사망 직전에 극단적 선택을 한 것으로 전해졌다.

33년 전, 이광영씨가 파편 제거 수술을 받은 해인 1988년, 5·18 유혈진압 책임론이 거세게 일고 있는 가운데 ‘5공 정치 비자금 조성’ 사건이 터졌다. 전씨는 연희동 자택에서 대국민 사과문을 발표했다. 재임 중의 실책과 비리에 대한 사과였고, 남아 있다는 정치자금 139억원과 개인 재산 23억원을 국가에 헌납 하겠다고 밝혔다. 전씨 부부는 그  길로 설악산 백담사로 떠났다. 그 날은 전두환·이광영 씨의 사망일과 같은 11월23일이다. 

추운 겨울 산사에서 법복을 입고 새벽 기도하는 모습이 보도됐다. 일부 시민들은 반신반의하면서도 한편으로는 5·18 피해자에게 직접 사과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그 누구도 편히 안을 수 없는 정치인물을 품은 산사와 10·27법난에 대한 사과를 받아야 하는 불교계는 그가 참회하기를 바라고 또 바랐다. 

참(懺)은 뉘우침이고 회(悔)는 다시는 죄를 짓지 않겠다는 결심이다. 따라서 참회란 ‘잘못의 뉘우침’에 그치지 않고, ‘잘못의 뉘우침’을 되풀이 하지 않겠다는, 죄를 다시는 짓지 않겠다는 맹세인 것이다. 불보살 앞에서 예배하고 독송·염불·기도하며 용서를 비는 참회 의식의 강도는 자신이 지은 죄에 따라 달라질 것이다. 수많은 사람들의 피눈물을 흘리게 한 전두환씨가 치러야 할 의식은 중국 당나라의 선도 스님이 전한 상품(上品)참회였다.

‘상품참회는 눈에서 피가 흐르고 몸의 털구멍에서 피가 터져 나오는 참회다. 중품(中品)참회는 눈에서 피가 나오고 털구멍에서 뜨거운 진물이 내리는 참회다. 하품(下品)참회는 눈과 코에서 피가 나오는 참회다.’

백담사 칩거는 예상보다 길었다. 1988월 11월23일부터 1990년 12월말까지 13개월 이어졌다. 그 사이 ‘5·18 유혈진압과 10·27법난’에 대한 사과는 없었다. 오히려 칩거 1년만인 1989년 12월31일 광주청문회에서 광주학살의 원인을 “일부 시민들의 과격 시위”라고 답해 온 국민의 공분을 샀다. 1995년 12월2일 전씨는 ‘12·12 및 5·18 진상’ 수사 중인 검찰 특별수사본부의 구속을 거부하는 것은 물론 연희동 골목에서 ‘정치적 종결’을 주장하며 5·18 문제가 매듭지어졌다고 했다. 5·18 유혈진압과 10·27법난에 대해 그는 단 한 번도 피해자들에게 사과를 하거나 용서를 구하지 않았다. 그리고 추징금 956억원도 납부하지 않았다. 

고인 이광영씨의 유서는 이어진다. ‘5·18에 원한도 없으려니와 작은 서운함들은 다 묻고 가니 마음이 홀가분하다. 나의 이 각오는 오래 전부터 생각해온 바, 오로지 통증에 시달리다 결국 내가 지고 떠나감이다.’ 

전두환씨 사망 직후, 측근인 민정기 전 청와대 공보비서관이 대변인 역할을 자처하며 기자들과 만났다. 5·18 광주민주화운동 피해자에게 사과의 말을 남겼는지 묻자, 민 전 비서관은 언성을 높였다. 그는 “질문 자체가 잘못된 것”이라며 “발포 명령을 내린 적이 없어 책임질 일도 없다”고 했다.

전두환씨가 백담사 불보살 앞에서 참회하고 진심어린 대국민 사과를 전했다면 생전의 이광영씨 통증은 체감상 조금은 덜 했을 수도 있었다. 전두환씨는 1000겁 동안 참회해도 녹이지 못할 두터운 업장만 짊어지고 떠났다. 

[1611호 / 2021년 12월1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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