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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편향하고도 책임회피에만 급급한 정부

기자명 법보
  • 사설
  • 입력 2021.12.06 11:03
  • 호수 1612
  • 댓글 2

문체부, 종교편향 인정 않고 책임회피
방역허점·국민비판 덮으려는 시도인가
기독교, 이웃종교·무신자 안중에도 없나

기독교 선교 음악인 캐럴을 활성화하겠다고 나섰던 문화체육관광부(이하 문체부)가 불교계의 강력한 항의에 사과했다. “불교계의 입장을 충분히 고려하지 못한 것에 진심으로 사과한다”며 “향후 어떠한 관여도 하지 않을 것”이라는 입장도 밝혔다. 그러나 사과의 방향과 대상이 틀렸고 진정성은 더더욱 보이지 않는다. 김영삼·이명박 정권 때도 볼 수 없었던 ‘문체부 종교편향’을 자행하고도 뼈저린 반성은 고사하고 책임회피에만 초점을 둔 사과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당일 코로나 확진자 수가 5000명을 넘나들고 중증환자도 역대 최고치인 733명(2일 기준)을 찍었는데 오미크론 방역까지 뚫렸다. 병상도 확보되지 못한데다 밀려드는 환자에 의료진은 전쟁을 치르듯 사투중이다. 뒷북치는 정부가 부랴부랴 특별방역기간을 지정했는데 당장 12월6일부터 크리스마스까지 4주간이다. 

이 시국에 캐럴을 쏟아 내면 당장 거리로 내몰릴 위기에 처한 자영업자의 고통이 사라지거나 아니, 줄기라도 하는 건가? 불교, 유교, 천도교, 원불교, 민족종교를 믿는 사람들도 ‘기쁘다 구주 오셨네’ 선율을 들으면 위로를 받을 것이라 생각하는가? 종교 없는 시민들도 ‘온 세상 모든 사람들 잠자는 동안에 평화의 왕이 세상에 탄생하셨도다’(오 베들레헴 작은 마을)는 가사를 들으면 자신을 휩싼 ‘코로나 블루’가 걷히기라도 하는 것일까? 음악이 심적 안정에 효과가 있다는 점을 들어 “12월엔, 캐럴이 위로가 되었으면 해”라는 제목의 캠페인에 당위성을 부여하고 싶겠지만 어불성설이다. 

기독교계에 따르면 ‘캐럴은 예수가 태어난 밤, 천사들의 노래로부터 시작된다’고 한다. 그 이후 별다른 특이점은 안 보이는데 마틴 루터 시대(1400∼1500)를 전후로 새로운 전기를 맞는다. 마틴 루터는 ‘음악 모음집’의 머리말에서 “성령 하나님께서도 음악을 성령 하나님의 사역을 위한 도구로 인정하신다”며 “모든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과 음악을 함께 혼용하여 하나님을 찬양할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후  다양한 색채의 캐럴이 선보이기 시작했다. 일례로 ‘기쁘다 구주 오셨네’는 언더우드 선교사가 1894년 제작한 우리나라 최초의 찬송가로 알려진 ‘찬양가’에 실려 있다. 

캐럴은 교회음악이다. 그렇기 때문에 기독교 음악인 것이다. 우리 귀에 익숙한 대중성 캐럴 몇 곡 내세워 교회음악 초월을 운운해도 이 명제가 사라지지는 않는다. 기독교 음악에 정평이 난 리프블래드(Bruce H Leafblad)는 “기독교 양육으로서의 음악에는 성경의 진리와 내용을 가르쳐주는 힘이 있다”고 했다. 반복해서 찬양의 노래를 들으면 교리의 핵심을 배울 수 있고, 신앙심도 고취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크리스마스인 12월25일을 전후한 1주일도 아니고, 2주일도 아니고, 12월1일부터 25일까지 4주간을 한국의 유력 지상파 라디오방송사를 통해 캐럴을 내보내겠다는 건 기독교 교리를 전 방위로 전파시켜 신앙심을 고취시키겠다는 것이나 다름없다. 그게 아니라면 방역 뚫린 위기 상황에 대한 국민의 불만과 비판의 목소리를 캐럴로 덮어보려는 시도인가? 그렇다면 제5공화국 발상이다.   

불교계에 한정한 사과도 잘못됐다. ‘불교계가 이 캠페인의 발목을 잡고 있다’는 인상을 국민들에게 줄 수 있기 때문이다. 불교계는 이 사안의 심각성을 이웃종교보다 먼저 혹은 과감하게 지적하고 나온 것이다. 따라서 문체부는 지금이라도 종교편향 행보를 보인 점을 자인하고 종교계를 넘어 전 국민들에게 다시 사과해야 한다. 

하나 더 짚자. 종교편향 캠페인을 완벽하게 성사시켜 놓은 후 ‘불교계에는 미안하다. 중단할 수 없다’는 건 ‘불교계가 발목 잡았지만 우리는 한다’ ‘국민이 반대해도 우리는 한다’는 즉 ‘이제 어쩔 것이냐?’는 것으로 보이는데 이것은 오만이다. 의지를 갖고 중단할 묘수를 찾아라.

기독교계도 문제다. 불특정 다수에게 전하는 한 달간의 교회음악이 기독교인 외의 국민들의 귀를 거슬리게 하거나 마음에 상처를 주는 건 아닌가 하는 의문 한 번 안 품었는가 말이다. ‘캐럴’이 전하려는 건 사랑일 것이다. 그러나 이런 식의 사랑은 안 된다. 전국의 거리에 흐르는 ‘주 예수의 사랑’이 누군가에게는 칼날이 되어 상처를 내기 때문이다. 당장 멈추지 않는다면 ‘12월은, 캐럴이 칼날이 되어 상처를 주는 달’로 기록될 것이다.

[1612호 / 2021년 12월8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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