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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전‧분단 극복은 우리 힘으로

종전을 반대하는 나라는 일본뿐이다? 종전이 되면 손해를 보는 나라는 일본뿐이다? 그렇게 쉽게 말해서는 안 된다. 정확하게 우리나라와 주변국들의 이해관계, 그리고 대의명분을 따져야 한다. 본디 국제 사회는 정의가 지배하기보다는 국가 간의 이해관계에 의해 결정되기 마련이다. 우리나라가 분단국이 된 것도 미국과 소련, 영국 등의 열강들이 자기 국가의 이해관계에 따라 멀쩡한 땅에 금을 그어서 그리된 일이다. 그런 열강들의 횡포에 대하여 정의를 내세워 저항하는 일 자체가 부질없는 일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그렇다고 해도 명분이라는 것 또한 하나의 힘이기에, 아무리 강대국이라고 하더라도 명분 없는 일을 무조건 강행할 수가 없다. 명분이 힘을 갖추도록 하는 것 또한 국가의 능력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나라가 분단국, 전쟁이 끝나지 않아 겪는 괴로움을 벗어나, 종전을 하고 분단을 벗어나는 길로 가야 한다는 것은 분명하다. 그것은 우리가 합의한 역사의 지향성이기에 그것을 부정한다는 것은 곧 우리 민족의 정체성을 부정하는 것이요, 또한 우리나라의 역사성을 부정하는 일이 될 것이다. 그렇다 하더라고 그것을 지향해 나가는 과정은 또한 실제적인 이익과 명분을 갖추어야 한다는 조건을 만족시켜야 한다. 

우선 거칠게나마 주변국들이 이해관계를 말해보자. 우리나라의 통일을 바라는 주변국들은 거의 없었다고 보는 것이 옳을 것이다. 미국으로서는 사회주의 진영을 상대하는 교두보로 삼기에 우리나라만큼 좋은 조건을 갖춘 곳을 찾기 힘들 것이다. 일본이야말로 우리나라의 전장을 통해 큰 이익을 보고 그 뒤에도 분단된 한국이라는 상황을 통해 지속적인 이익을 본 나라이니 두말할 필요가 없다. 중국과 구 소련도 미국과 대척적인 입장에서 한국의 분단 상황을 통해 이익을 보았다. 그러니 종전을 말하고, 통일을 말하는 것은 정말 실현 가능성 없는 공론이었다고 하겠다. 

그렇던 상황이 미국과 중국의 힘겨루기가 심각한 상황에 이르면서 큰 변수가 생겼다. 한국을 지속적으로 우방으로 둘 수 있다면, 중국의 북한에 대한 영향력을 없애나가는 것이 미국의 국익에 부합하는 것이 되는, 새로운 국제적 역학관계가 성립된 것이다. 중국은 이런 상황으로의 발전에 경계적인 태도일 수밖에 없지만, 그렇다고 대놓고 그것을 반대하기에는 명분이 부족하고, 또 그렇게 반대를 할 때 닥쳐올 한중간의 대립각이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 그렇기에 적절히 중국을 달랜다면 종전 선언을 이룰 수 있는 현실적 가능성이 생겼다 할 수 있다. 이런 조류 속에서 전혀 이익을 볼 수 없고, 오히려 손해만이 있는 일본의 입장이 종전 ‘시기상조’론으로 나온 것이다. 명분상 완전 반대는 불가능하기에 시기상조라는 모호한 말로 반대 입장을 호도하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가 취해야 할 노선은 무엇일까? 참으로 어려운 선택이겠지만, 적어도 일본식의 ‘시기상조’론으로 우리의 종전에 대한 의지와 명분을 약화시켜서는 안 된다는 것은 분명하다. 종전 선언이 끼칠 부정적인 영향을 조심스럽게 살피고, 그것을 조심해야 한다고 말하는 것과, 종전 반대를 적당히 다른 말로 포장한 ‘시기상조’론에 힘을 싣는 것은 하늘과 땅 차이가 있다. 우리 내부에서 명분과 의지가 약해지면 우리의 근본 지향이 흔들리게 되고, 결국 종전과 분단 극복의 길에 외세의 영향이 커질 수밖에 없다. 외세의 힘으로 독립을 이루었기에 우리가 얼마나 큰 질곡의 역사를 겪었던가? 지금의 분단 상황이 바로 그 결과가 아닌가? 그런데 종전과 분단 극복의 길도 다시 외세에 의해 이루어진다면 또다시 참혹한 질곡의 역사가 반복될 것이다.

종전과 분단 극복으로 가는 새로운 역사의 길, 이 길은 우리 힘으로 개척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 우선 우리의 확고한 지향과 의지가 큰 명분으로 세워져야만 한다. 그것이 외국의 힘을 최소한으로 배제하는 첫걸음이다. 그러한 길에 있을 수 있는 작은 부작용과 손해, 그것은 우리가 지혜를 모아 극복해야 할 것이지, 우리의 지향과 의지를 꺾는 핑계가 될 수는 없는 일이다.

성태용 건국대 명예교수 tysung@hanmail.net

[1612호 / 2021년 12월8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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