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찰벽화는 불교의 가르침을 함축적이면서도 상징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과거 글을 읽지 못했을 대다수 민중들은 경전 대신 사찰벽화를 통해 불교의 가르침을 보다 쉽게 이해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사찰벽화를 통해 불교를 이해하는 일은 별로 없다. 경전을 읽는 것이 어려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벽화가 불교미술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면서 불교보다는 미술의 영역으로 진입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벽화를 통해 불교에 대한 쉬운 이해를 구하기보다는 작자나 회화적 기법, 도상학적 설명에 짓눌리는 바람에 이를 통해 불교적 가르침을 구하고 더 나아가 우리 삶의 지남으로 삼기에는 너무 어려운 영역이 돼 버렸다.
‘사유를 쏟아, 붓다’는 이런 사찰벽화에 대한 두려움을 없애고 이를 통해 불교의 가르침은 물론 삶의 고갱이까지 전달하는 조금은 역설적인 책이다. ‘그림으로 보고 소설처럼 읽는 불교철학’이라는 부제에서 알 수 있듯이 글은 소설책이나 역사책을 읽는 것처럼 재미있고 경쾌하다. 그러나 그 경쾌함 속에 일관되게 흐르고 있는 화엄철학은 벽화에 대한 논(論)이나 소(疎)로 불려도 손색이 없다.
책은 흥국사, 범어사, 보광사, 선운사 등의 사찰벽화 24개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벽화는 불교적 가르침을 담고 있는 동시에 당시의 시대상과 철학, 미학을 담고 있는 거대한 문화적 용광로다. 저자는 또한 사찰벽화에서 단순히 불교만을 찾아내는 것이 아니라 도상학적 설명을 넘어 일상과 현실에 대해 해석하고, 언어와 깨달음의 단절, 앎과 실천의 분리, 종교적 배타성, 남성우월주의, 타자에 대한 수용 등 그야말로 다양한 이야기들을 내놓는다. 잡스러워 보이는 것 하나까지도 버리지 않고 결국 그 잡스러움을 통해 연화장 세계를 만들어 내는 화엄의 가르침이 빛을 발하고 있다.
책을 읽다보면 “사찰벽화를 통해 불교수행과 불교철학, 그리고 불교미술로 분리된 시대흐름을 하나로 통합해 묶고 이를 통해 종교적 폐쇄성을 벗어나 존재 각각의 개성과 자유를 회복하기를 바라고 있다”는 저자의 주장에 점차 젖어들게 된다.
김형규 대표 kimh@beopbo.com
[1613호 / 2021년 12월15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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