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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씻은 사람

기자명 성원 스님

‘세심청심’ 10년 반추하니
사욕이 담긴 듯 부끄러워
국정 책임지는 대통령의
잇따른 교황 ‘알현’ 행보
부디 사심이 아니길 희망

벌써 올해도 마지막 달까지 와버렸다. 참으로 세월이 빨라도 너무 빠르다. 시간은 나이의 숫자와 같은 속도로 흘러간다고 하니 앞으로가 더 걱정이다. 1년이 이렇듯 빨리 흘러갔지만 생각해보면 지난 10년의 세월이 그림자같이 지나가 버린 것만 같다. 

처음 ‘세심청심’ 원고를 청탁받고 이름이 너무 좋았다. 혼자서 ‘씻는 마음 깨끗한 마음’이라고 어린 시절 표어같이 이름 지어놓고 항상 즐거이 글을 쓴 것 같다. 때로는 마감 시간에 쫓겨 허둥지둥 글을 쓰기도 했지만 때로는 마음 속에서 울려오는 이야기들을 기꺼운 마음으로 담아 독자들에게 내보이며 소소한 기쁨을 느끼기도 했다. 

그러나 이제 긴 시간이 지나서 돌이켜 예전 글을 보니 아찔한 현기증이 난다. 무슨 용기로 그렇게 글을 썼는지 부끄러움이 앞선다. 무엇보다 글을 쓰면서 내 마음이 얼마나 씻기고 얼마나 깨끗해졌을까 돌이켜본다. 자신의 글로 자신의 마음을 씻기도 쉽지 않은데 나의 글로 독자들의 지친 마음을 얼마나 씻어주었을까 생각하니 더욱 부끄럽다.

살다 보면 주장하고 고집하고 다투는 것이 일상이 되곤 한다. 언제부터인가 나의 글에서 자꾸 내 고집이 보이기 시작해 쉬이 글이 쓰이지 않기도 했다. 마음을 가벼이 해서 수필같이 쓴다고 하더라도 결국에는 자신의 생각과 그 마음이 고스란히 스며들기 마련이듯이 주장들을 감추고 싶었지만 그렇게는 안 되는 것 같다. 

세월이 흘러도 자긍심만 가득 남는다면 얼마나 행복할까? ‘듣는데로 이해하고, 무슨 말을 들어도 귀에 거슬리지 않는 여유가 생긴다‘는 이순(耳順)의 나이에 자꾸 부끄러움으로 앞가림을 하는 것만 같다. 그래도 작은 위로를 찾는다면 글을 쓰면서 사사로운 이익 챙기는 사리사욕은 부리지 않았다는 것이다. 

얼마 전 대통령이 국제행사 참석차 해외 순방에 나선 길에 교황을 만나는 것을 봤다. 임기 중 두 번째로 기억된다. 하나님의 권세를 업고 있는 교황의 권위는 이 세상 누구와도 동등한 위치에서의 만남을 허락하기가 쉽잖은 것이 현실이다. 하지만 종교자유 국가이면서 가장 활발한 종교활동으로 세계종교의 용광로와 같이 여겨지는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대통령이 교황 앞에서 머리 조아리는 모습을 볼 때 참담한 심정이 들었던 사람들이 많았다. 

물론 같은 종교를 가진 분들은 마치 우리나라가 신의 축복이라도 받은 것 같이 뿌듯한 느낌을 받았을 수도 있을 것이다. 

이 일 또한 다 지난 일이다. 오늘 갑자기 이 사건이 떠오른 것은 바쁜 일정을 진행하면서 교황을 두 번이나 ‘알현’한 것이 진정 임기 중 사적 욕구가 아니었는가 묻고 싶어서다. 물론 본인만이 알 것이다. 언론에서는 휴전선의 철책으로 만든 십자가를 들먹이면서 야릇한 퍼포먼스를 연출하기도 했지만, 이 또한 사욕을 감추며 그 의미를 전환하려 한 것으로 보였다.

한편의 짧은 글을 쓰면서도 사욕이 있었다면 시간이 흐를수록 부끄러워지는데, 국사를 도모하면서 개인의 종교적 신념을 위해 또 사적인 무언가를 연출했다면 한참은 더 부끄러울 것 같다. 정말 진심은 알기 힘들 것이다. 

현 정부의 대북 정책을 많은 부분 지지하는 마음이지만, 국가의 수장이 공사의 경계를 혼용하는 것만 같아 갈무리 지어가는 가을처럼 쓸쓸한 기운이 자꾸 든다.

우리 대한민국에 사리사욕을 말끔히 씻어버리고 맑은 마음, 오직 세심청심으로 대한의 국민들만을 진정 위하는 위대한 지도자는 없을까? 

성원 스님
성원 스님

또다시 새로운 지도자를 뽑는 시절이다. 이번에는 제발 종교에 나부끼는 사람, 강낭콩보다 더 푸르고 종교보다 더 붉은 마음으로 나라를 위해 몸을 던진 한 여인만도 못한 사람이 뽑히지 않았으면 좋겠다. 세월이 흐를수록 마음 잘 씻고 깨끗한 마음으로 더욱 살피며 살아가고 싶다.

성원 스님 약천사 신제주불교대학 보리왓 학장
sw0808@yahoo.com

[1613호 / 2021년 12월15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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