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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 생사 ⑤ (끝)

기자명 박희택

생사가 모두 인연화합의 한 작용

‘무상게송’ ‘티베트 사자의 서’ 
불교 생사관 명확하게 드러나
생사는 구름 일어나고 지는 것
해탈 전 죽음은 다른 생의 시작

지수화풍 사대가 흩어지면 우리의 이 몸뚱이는 어디에 있을 것인가? 붓다는 이를 참구하는 죽음명상으로 사마타 고요수행을 하라고 이르면서, 지대(地大)는 다 흙으로 돌아가고, 수대(水大)는 다 물로 돌아가며, 화대(火大)는 불로 돌아가고, 풍대(風大)는 바람으로 돌아간다고 설하였다. 바로 ‘원각경’ 보안보살장의 아래와 같은 말씀이다.

 “나의 지금 이 몸은 지수화풍 사대가 화합하여 이루어진 것이니(我今此身 四大和合), 이른바 머리카락·털·손발톱·치아·피부·살·근육·뼈·뇌수·더러운 물질은 다 흙으로 돌아가고, 침·눈물·고름·피·진액·거품·담즙·정액·대변·소변은 모두 다 물로 돌아가며, 따뜻한 기운은 불로 돌아가고, 움직이고 돌아다니는 것들은 바람으로 돌아간다. 지수화풍 사대가 뿔뿔이 흩어지면, 이제 이 허망한 몸뚱이는 어디에 있을 것인가(四大各離, 今者妄身 當在何處)?”

이어서 붓다는 “이 몸은 필경 실체가 없이 사대가 화합하여 형상을 이룬 것이니, 실상은 환화와 같음을 알아야 한다(卽知此身 畢竟無體 和合爲相, 實同幻化)”고 부연하고 있다. 사대가 뿔뿔이 흩어진 후에 남는 것이 없는 이 허망한 몸뚱이를 자신으로 알거나 집착하지 말고, 바른 안목을 갖추도록 수행정진하라는 가르침이다.

이러한 가르침은 한국불교에서는 근대의 고승 진호 스님이 체계적으로 정리하여 펴낸 ‘석문의범’(1935) 다비편에, 오늘날 우리가 널리 독송하는 무상게송으로 자리잡고 있다. 이 무상게송은 당초 나옹화상 누님의 한시라고도 하고, 서산대사의 한시라 하기도 하는데, 불교일반에 무상게송으로 수용되어 있다.

“이 세상에 나는 사람 어디에서 온 것이며, 이 생에서 죽는 사람 어느 곳에 가느거뇨(生從何處來, 死向何處去)? 나는 것은 한 조각의 뜬 구름이 일어남이요, 죽는 것은 한 조각의 뜬 구름이 멸함이라(生也一片浮雲起, 死也一片浮雲滅). 뜬 구름 그 자체가 본래 실상이 없는 것이므로, 나고 죽고 가고 옴도 또한 이와 같으니라(浮雲自體本無實, 生死去來亦如然).”

생종하처래(生從何處來), 사향하처거(死向何處去)? 생야일편부운기(生也一片浮雲起), 사야일편부운멸(死也一片浮雲滅). 부운자체본무실(浮雲自體本無實), 생사거래역여연(生死去來亦如然). 이 여섯 구에 불교의 생사관이 집약되어 있다고 할 것이다.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 생이란 무엇이며 사란 무엇인가? 이 본원사적 질문에 부운(浮雲)의 기멸(起滅)에 지나지 않는 환화(幻化)라는 문학적 응답이 따랐으나, 그 의미하는 바는 명료하다.

‘뜬 구름’의 일어남과 멸함이 생과 사라는 것은, 생사가 한 작용[一如]임을 말해 준다. 우리의 생사는 뜬 구름과 같이 본래 무엇이라고 말할 수 있는 고정된 실상이 없이, 오직 인연의 화합으로 오고 가는 같은 생명현상의 다른 모습이라는 것이다. 삶도 생명현상이고, 죽음도 생명현상이다. 죽음을 삶의 한 과정으로 보는 것은 생명현상의 범주에 죽음 또한 있는 까닭에서이다.

한편 생사의 과정을 아주 정교하게 강설하고 있는 경서가 있으니, 바로 8세기 티베트불교의 대성자인 파드마 삼바바가 지은 ‘티베트 사자(死者)의 서’이다. 원제목은 ‘바르도 퇴돌’인데, 바르도(bardo)는 사유(死有)와 생유(生有)의 사이에 존재하는 중유(中有, 中陰身)를 말한다.

‘bar’는 ‘사이’를 뜻하고, ‘do’는 ‘매달린’ 또는 ‘둘’이란 뜻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바르도란 삶과 죽음 둘 사이에 매달려 있는 과정적 존재를 지칭한다. 퇴돌(thoedol)은 ‘듣는 것을 통한 영원한 해탈’을 뜻하고, 죽음의 순간에 이 서를 한번 듣는 것만으로 생사의 윤회를 벗어나 영원한 해탈을 얻을 수 있음을 나타낸다.

바르도는 ① 죽어가는 과정의 바르도 ② 죽은 이후 밝게 빛나는 바르도 ③ 업에 따라 다시 생성되는 바르도의 세 단계로 전개된다. 49일 간 중음신으로 존재하는 좁은 의미의 중유는 ③을 지칭하며, 환생하는 순간까지 지속되는 바르도이다. 그러니까 바르도는 죽어가는 과정, 죽은 이후, 다시 태어나는 부분까지 모두 포괄한다. 따라서 바르도는 죽음이 끝이 아닌 삶의 과정임을 확인시켜 준다.

박희택 열린행복아카데미 원장 yebak26@naver.com

[1613호 / 2021년 12월15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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