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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이렇게 사는 스님들도 있었네

  • 불서
  • 입력 2021.12.20 11:23
  • 호수 1614
  • 댓글 0

소박해도 존경스런 스님 등 등장
수행자 시각으로 음식 해석도

스승들이 납시어 어른스크림을 사드리다
함영 지음 / 참글세상 296쪽 / 16,800원

스승들이 납시어 어른스크림을 사드리다
스승들이 납시어 어른스크림을 사드리다

큰스님은 수행 기간이 길고 덕이 높은 스님에 대한 존칭이다. 그러나 일반인들이야 ‘수행’과 ‘덕’의 정도를 헤아릴 수 없다 보니 큰 사찰의 주지, 회주, 조실, 방장 스님 등을 큰스님으로 받아들인다. 수행과 덕이 없이 주지나 회주가 될 수 있을까 싶지만 그렇더라도 큰스님 호칭은 내면이 아닌 직위에 치우친 경향이 없지 않다. 신문이나 방송, 책에서 대하게 되는 큰스님의 행동과 말씀도 너무 정형화되거나 거룩해 오히려 거리감이 더 느껴질 때가 있다.

이 책에 등장하는 큰스님의 모습은 사뭇 다르다. 큰절 주지를 지내고 여전히 많은 이들의 존경을 받는다는 점에서 일단 큰스님이 분명하다. 그런데 여느 큰스님과는 다른 점들이 있다. 일찌감치 초기불교 수행법을 받아들여 정진하고 남방 스님들처럼 주홍색 가사를 걸쳤다. 한겨울에도 맨발에 낡은 슬리퍼를 신는다. 구순을 넘겼지만 법문을 청하는 곳이 있으면 천릿길을 마다않고 찾아간다. 시봉도 없고 오롯이 대중교통을 이용해서다.

저자가 자신의 또 다른 이름으로 내세우는 삼례라는 주인공이 지켜본 큰스님은 평안도 사투리에 유머감각이 넘친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서울의 한 포교당에서 천도재가 있어 스님이 부산에서 올라왔을 때다. 삼례가 이를 알고 서울역에 나왔지만 정작 큰스님을 초청한 포교당 스님이 마중을 나오지 않아 택시를 이용하게 됐다. 스님은 당연하게 여겼지만 부아가 난 것은 삼례였다. 근데 조금 가다 운전기사가 퉁명스럽게 물어왔다.

“스님은 보아하니 조계종 승려는 아닌 것 같고, 어디 다른 종파인가보구랴?” 탈 때부터 못마땅한 표정을 짓던 운전사의 질문에 삼례가 발끈하려는데 스님이 온화한 목소리로 순풍을 불어넣었다. “아이 조계종이고 어디이고 간에 제가 실력이 있어야 말이지요. 저는 원체 실력도 없고 바보 같은 중이래서리 아무데서고 데려가는 사람이 없다오.” 그 말에 삼례의 성난 마음도 택시운전사의 거친 마음도 고요해졌음은 물론이다.

여기에 소개된 큰스님 가르침은 알짜배기 통팥이 꾹꾹 눌려 담겨있는 단팥빵 같다. 이해가 쉽고 여운이 짙다. 간단명료한 말로 툭 던지거나 옛날이야기나 농담 속에 슬쩍 숨겨두기도 한다. 책 제목의 ‘어른스크림’도 맨발의 큰스님이 “아이에게 사준 것은 아이스크림, 어른에게 사준 것은 어른스크림”이라고 농담한 큰스님식 아재개그에서 따왔다.

이 책에는 진짜 큰스님 외에 산신령 같은 외모에 추리닝만 입고 다니는 괴짜 노스님, 개그맨 대부로 활약한 도인셰프, 서양인 티베트 라마, 4대 스님들이 함께 지내는 야단법석 공양간, 탈북자들, 돌아가신 할머니와 소통하는 아이 등 여러 이야기들도 실렸다. 밥과 삶, 밥과 사람, 밥과 수행에 조예가 깊은 저자의 과거 책들이 그렇듯 여기서도 음식이 등장한다. 독특한 점은 그들과 함께 먹는 밥을 통해 깨달음을 구하고 발견하기에 음식의 맛보다는 수행자의 시각으로 음식의 의미를 부여하고 해석하는 점이 예사롭지 않다.

이재형 기자 mitra@beopbo.com

[1614호 / 2021년 12월22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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