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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인공지능 세상과 선불교 (끝)

기자명 자현 스님

편리·유용에 따른 비극 잊지 말아야

검색결과 맞춤 광고 제공하는
인공지능·알고리즘 지배 세상
어디서나 주인공 되는 ‘선불교’ 
메타버스 세상서도 유효한 가치

네이버 등 포털을 검색하다 보면, 내가 검색한 것과 연관된 광고가 따라다니는 것을 알 수 있다. 인공지능이 내가 특정 상품에 대한 구매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해 맞춤 광고를 띄우는 것이다.

그런데 이는 비단 포털에만 있는 게 아니다. 유튜브를 볼 때도 하나의 영상을 클릭하면, 그다음부터 유사한 추천 영상이 계속해 뜨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리고 이게 반복되면, 인공지능이 나의 알고리즘을 파악해 내가 좋아할 만한 것만을 지속해서 노출시켜 준다. 즉 인공지능의 천라지망(天羅地網)에 갇히게 되는 것이다.

신문은 내가 보고 싶은 것만 볼 수 있는 매체가 아니다. 여기에는 정치·경제·생활·문화 등이 한데 뒤섞여 있는 일종의 패키지 상품이다. TV는 신문에 비해 범주가 작다. 방송표에는 신문처럼 전체가 묶여 있지만, 시청 시간대에 따라 재미가 없으면 안 보면 되기 때문이다. 신문이 기사와 광고까지 무조건 전체를 구입해야하는 것에 비해, TV는 선택의 여지가 존재하는 것이다.

이는 신문이 포털로 들어가 인터넷 신문이 되면서 발생하는 변화이기도 하다. 예전에는 화장실에 신문을 들고 가 전체를 다 읽고 나온다는 분이 있었다. 그러나 인터넷 신문에는 이런 사람이 존재할 수 없다.

TV에 비해 포털은 주어지는 시간에 보는 것이 아니라, 내가 원하는 시간에 내가 원하는 정보를 검색해 보는 방식이다. 즉 정보의 주체가 제공자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라, 제공받는 사람에게도 존재한다는 말이다. 때문에 소비자에게 강력하게 어필하기 위해, 소위 낚시 제목이 등장하게 된다. 즉 인터넷의 ‘낚시 문화’는 파편화된 다양성 속에서, 선택받고자 하는 처절한 편법의 결과인 셈이다.

SNS는 여기서 한 걸음 더 나간다. 또 개인 SNS 및 인공지능의 발달은 다양성을 제한하며 극도의 편식만을 부추긴다. 때문에 이들에 의해 제공되는 콘텐츠를 습관적으로 클릭하다 보면, 어느 순간 사고방식이 경직되면서 우물 안의 개구리처럼 돼 버리고 만다.

인공지능의 발달 이후 인터넷 강국인 우리나라에서, 대립과 갈등의 골이 깊어지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즉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들으며, 믿고 싶은 것만 믿는 상황이 연출되는 것이다.

유튜브 역시 예외는 아니다. 때문에 내가 아는 분 중에는 주기적으로 유튜브 계정을 새로 만드는 분도 있다. 인공지능에 판단 당하지 않는 자신을 고수하고, 다양한 시각을 유지하기 위해서다. 물론 이런 것은 유튜브 운영자는 할 수 없는 일이며, 일반 구독자만이 가능한 일이다. 

지난 10월 페이스북 알고리즘을 담당했던 프랜시스 하우건이 퇴사 후, “수익의 극대화를 위해 페이스북의 알고리즘이 갈등을 조장한다”는 폭로를 했다. 주지하다시피, 페이스북은 2012년 인스타그램을 인수해, 인스타까지 가지고 있는 SNS를 대표하는 거대 기업이다. 지식의 편파가 인공지능의 판단을 넘어, 알고리즘을 통한 기업의 개입까지 있었음이 드러난 것이다. 이로 인해 1000조 기업인 페이스북(메타)이 창사 이래 최대의 위기를 맞고 있다.

이 사건은 시사하는 바가 매우 크다. 터미네이터 등 많은 SF영화에서는 기계가 인간을 정복하는 내용이 등장한다. 그런데 SNS의 발달과 함께 어느새 인공지능과 알고리즘이 인간의 자유의지를 통제하고 세뇌하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2016년 알파고와 이세돌의 바둑 경기가 진행될 때, 인공지능은 우리에게 엄청난 충격을 주었다. 그런데 불과 5년 만에 우리는 부처님 손바닥의 손오공처럼, 인공지능 안의 감정적 동물이 되고 있는 것이다.

부처님께서는 치우침 없는 중도를 가르치셨다. 오늘날은 이 중도가 더욱더 미세하게 작동해야 하는 시대이다. 4차 산업혁명의 핵심에 빅데이터와 인공지능이 존재한다는 점에서, 편리함과 유용함에 따른 비극의 탄생을 조절할 필연성이 강하게 요청된다. 선불교는 언제나 모든 곳에서 자신이 주인이 되도록 가르치는 동아시아의 가장 위대한 정신 혁명의 결과물이다. 이런 점에서 유튜브, 아니 더 나아가 메타버스의 세상에서도 불교의 가치는 퇴색하지 않는 영원의 존재가 아닌가 한다.

자현 스님 중앙승가대 교수  kumarajiva@hanmail.net

[1614호 / 2021년 12월22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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