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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 범패소리 (끝)

기자명 이제열

범패 진수 알려면 경청 선행돼야

어릴 때 ‘스님할머니’ 따라 구경
먼 길에 지루했던 기억만 남아
수십 년 지나 들으니 절로 감탄
범패 불교·문화적 가치 알게 돼

나의 할머니는 스님이셨다. 아버지를 장가보내신 후 할머니께서는 집에서 멀리 떨어진 암자에 들어가 수행으로 여생을 보내셨다. 세상의 인연을 멀리했지만 유독 나를 사랑하셨고 그 덕분에 나는 지금까지 불교인의 삶을 걷게 되었다.

나는 할머니지만 “스님”이라고 불렀다. 주말이나 방학 때는 많은 시간을 절에서 보냈다. 초등학교 4학년 여름방학이었던 것 같다. 하루는 스님이 나를 부르시더니 신도들과 함께 나들이를 가자고 하셨다. 차도 없던 그 시절 어린 몸으로 여러 동네를 거치고 거쳐 한없이 걸어도 도착지는 나타나지 않았다. 날은 더워지고 말동무도 없고 어른들 사이에서 길을 걷자니 짜증만 났다. 불평할 수도 없고 허덕허덕 도착지에 이르렀다. 이곳이 어딘가 살펴보니 산과 접해 있는 큰 호수 앞이었다. 그곳에는 여러 스님이 계셨고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호수 앞에는 큰 부처님 그림이 걸려 있었고 그 앞에는 갖가지 음식상이 차려져 있었다. 뭔지도 모르고 기다리고 있자니 스님들이 염불을 시작하였다. 목탁, 요령, 북, 징, 바라, 나팔 등 소리도 함께 울렸다. 그런데 이젠 끝났는가 싶으면 또 목탁소리가 들려왔다. 하지만 나는 아예 산 쪽으로 홀로 떨어져 멀뚱하니 어서 끝나고 절로 돌아가고 싶은 생각뿐이었다. 얼마나 지루했던지 몇 시간을 해대는지 행사는 계속 되었고 점심 해가 훨씬 기울어서야 끝났다. 돌아오는 길에 다시 고생을 했던 일로 할머니한테 떼를 부렸던 기억이 생생하다.

오랜 세월이 흘러 생각해 보니 당시 행사는 수륙재였고 그때 본 풍경은 범패였다. 그 뒤로 이런 기억 때문인지 나는 범패 의식에 대해 별 흥미를 느끼지 못하였다. 잘 알아듣지도 못하는 의식문에 왜 그렇게 느려터지게 음을 뽑아내는지 감응이 오질 않았다. 그런데 범패에 대한 정서는 한 천도재를 계기로 반전됐다. 10여년 전 한 사찰의 창건주께서 입적하셨는데 범패의식으로 성대하게 천도재를 올리게 된 것이다. 나는 이왕 천도재에 참여했으니 범패의식을 피하지 말고 그 소리들을 음미해 보리라 생각했다.

범패(梵唄)라는 말에서 ‘범(梵)’은 힌두교의 브라흐만이라는 이름의 하느님을 가리키지만 불교적으로는 청정하다라는 의미로 해석한다. 스님들의 삶을 범행(梵行)이라 한다든가 부처님의 목소리를 범음(梵音)이라고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패(唄)라는 글자는 부처님을 찬양하는 노래라는 뜻을 지니고 있다. 요즘으로 말하면 찬불가라는 의미이다. 일설에 의하면 범패의 기원은 부처님이 반열반에 드신 후 500명의 아라한들이 라자가하의 칠엽굴에서 경전을 염송한 것으로부터 시작되었다고 한다. 이런 범패는 단순히 한국의 불교음악이 아니라 불교권 전체에서 행해지는 불교의식음악이다. 넓게 말하면 불교 안에서 행해지는 음률로 이뤄진 염불, 독경, 축원문, 발원문, 기도문들이 범패라고 볼 수 있다. 나라마다 음이 다르고 내용이나 형식은 다양하게 나타난다.

각설하고 천도재에 참여한 나는 스님들의 춤도 춤이지만 의식문과 염불을 범패식으로 하는 의식문 음률에 마음을 기울였다. 좌선의 자세로 마음을 열고 귀를 스님들 입에서 나오는 소리에 집중하였다. 정성껏 들으면서 한 소절 한 소절을 음미해 보니 ‘과연 범패로구나’ 감탄이 흘러 나왔다. 부드럽고 구성진 목소리에는 강한 힘이 깃들어 있었고 고음의 가는 소리에서는 간절함이 짙게 배어 있었다. 긴 소리 속에는 여유로움과 평온이, 짧은 소리에는 흥과 신명이 일어났다. 갖가지 변화를 일으켜 내는 소리지만 표준을 잃지 않았고 흔들리거나 잡됨이 없었다. 온갖 감정이 실린 것처럼 들리지만 희로애락의 감정과는 달랐다. 깊은 선정에서 울리는 자연적·무위적 음이 그 속에 들어 있었다.

나는 이 일이 있은 후 범패의 불교적 가치와 문화적 가치에 대해 새로운 눈을 뜨게 되었다. 범패의 진가는 범패의식을 행하는 어산(魚山)의 작법 능력에만 있지 않다. 바로 범패의 소리를 듣는 청자의 몫도 똑같이 중요하다. 불자라면 마땅히 한번쯤 불교 의식문을 공부하고 범패의식에 참여 하여 그 심후한 묘미를 느껴 보아야 할 것이다. ‘소리를 관하다’라는 제목으로 연재한지 벌써 1년이 되었다. 그동안 애독해 주신 독자님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올린다.

이제열 법림선원 지도법사 yoomalee@hanmail.net

[1614호 / 2021년 12월22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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