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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 잘 설해진 말씀의 특성 (끝)

기자명 마성 스님

끊임없는 반조로 좋은 말 하는지 스스로 살펴야

팬데믹으로 급부상한 온라인서 이익 주지 못하는 말들 범람
붓다, 라훌라에 “자·타 해치는 행위 절대 해선 안 될 것” 강조
피해 대신 이익 주는 말이어야…아니라면 침묵이 더 나을 것

붓다의 설법을 ‘잘 설해진 말씀’이라고 한다. 법을 설하고 있는 붓다의 설법인(說法印)이다.
붓다의 설법을 ‘잘 설해진 말씀’이라고 한다. 법을 설하고 있는 붓다의 설법인(說法印)이다.

인간은 몸과 입과 뜻으로 행동하면서 업(業)을 짓는다. 그 중에서 입으로 짓는 행위, 즉 말과 글이 이 세상에 미치는 영향은 지대하다. “말 한마디로 사람이 죽고 산다”는 속담이 있다. 실제로 말 한마디로 불행을 자초하기도 하고, 말 한마디로 소원했던 관계가 개선되기도 한다. 예로부터 ‘입은 재앙을 불러들이는 문’, 즉 ‘구시화지문(口是禍之門)’이라고 경계했다. 전당서(全唐書) 설시편(舌詩篇)에 나오는 한 구절이다.

팬데믹으로 인해 비대면이 일상화되면서 반대급부로 온라인이 활성화되고 있다. 그런데 사회관계망 서비스(SNS)에 올라오는 수많은 글들 중에 감동적인 글은 드물고, 자기에게도 이익을 주지 못하고 남에게도 이익을 주지 못하는 글들이 대부분이다. 더욱이 악의에 찬 말, 진실이 아닌 말, 남을 해치고자 하는 말, 증오심에서 쏟아내는 말들이 범람하고 있다.

‘수바시따 숫따(Subhāsitā-sutta, 善說經)’(SN8:5)에 ‘잘 설해진 말씀’의 네 가지 특성이 언급되어 있다. 똑같은 경이 ‘숫따니빠따(Suttanipāta, 經集)’에도 수록되어 있고, ‘테라가타(Theragāthā, 長老偈)’(1227-1230)에도 왕기사(Vaṅgīsa) 존자의 게송이 실려 있다. 또한 ‘잡아함경’ 제1218경(T2, 332a)과 ‘별역잡아함경’ 제252경(T2, 462bc)에도 수록되어 있다. 그만큼 이 경의 내용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비구들이여, 네 가지 특성을 갖춘 말은 잘 설해진 것이지 나쁘게 설해진 것이 아니며, 흠이 없고 지혜로운 사람들에 의해 비난받지 않는다. 무엇이 넷인가? 비구들이여, 여기에 비구가 잘 설해진 것만을 말하고 나쁘게 설해진 것은 말하지 않고, 옳은 것만을 말하고 옳지 않은 것은 말하지 않고, 유쾌한 것만을 말하고 유쾌하지 않은 것은 말하지 않고, 진실한 것만을 말하고 진실하지 않은 것은 말하지 않는다. 네 가지 특성을 갖춘 말은 잘 설해진 것이지 나쁘게 설해진 것이 아니며, 흠이 없고 지혜로운 사람들에 의해 비난받지 않는다.”(일아 옮김, ‘숫따니빠따’, pp.158-159)

이처럼 붓다의 말씀은 네 가지 특성을 갖추고 있기 때문에 ‘잘 설해진 말씀’이라고 한다. 빨리어 ‘수바시따(subhāsitā)’는 ‘잘 설해진’, ‘선설(善說)’이라는 뜻이다. 붓다는 네 가지 특성을 갖춘 말을 제자들이 널리 실천하도록 이 경을 설했다. 각묵 스님은 ‘수바시따’를 ‘좋은 말[金言]’이라고 적극적으로 해석하여, 이 경을 ‘금언경(金言經)’이라고 번역했다. 그러나 필자는 이 단어의 원래 뜻을 살려 ‘선설경(善說經)’이라고 이름 붙였다.

각묵 스님의 번역에 따르면, ‘좋은 말[金言]’이란 네 가지 특성을 갖추고 있다. 즉 ①좋은 말만 말하고 나쁜 말은 하지 않는다. ②법만을 말하고 비법은 말하지 않는다. ③사랑스런 말만 하고 사랑스럽지 않은 말은 하지 않는다. ④진실만 말하고 거짓은 말하지 않는다.”(각묵 옮김, ‘상윳따 니까야’ 제1권, p.613)

세존께서는 다시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잘 설해진 것은 최상이라고 선한 분들은 말한다. 이것이 첫째다.
옳은 것을 말하고, 옳지 않은 것은 말하지 않는다. 이것이 둘째다.
유쾌한 것은 말하고, 유쾌하지 않은 것은 말하지 않는다. 이것이 셋째다.
진실은 말하고, 거짓은 말하지 않는다. 이것이 넷째다.”(일아 옮김, ‘숫따니빠따’, p.159)

그러자 왕기사 존자가 붓다의 설법을 듣고 감흥을 시로 읊었다.

451. “자기 자신을 괴롭히지 않고, 남을 해치지 않는 그런 말만을 말해야 합니다. 그런 말은 참으로 잘 설해진 말입니다.”
452. “환영받을 말인 유쾌한 말만을 말해야 합니다. 다른 이에게 악함을 가져옴이 없이 말하는 것은 유쾌한 말입니다.”
453. “진리는 참으로 죽지 않는 말입니다. 그것은 영원한 법칙입니다. 진리 속에 목표도, 가르침도 굳건히 서 있다고 선한 분들은 말합니다.”
454. “열반의 성취를 위하여, 괴로움의 종식을 위하여, 부처님이 말씀하시는 평온한 말씀은 참으로 말씀 중에 으뜸입니다.”(일아 옮김, 위의 책, pp.159-160)

한편 ‘수바시따와짜(subhāsitavācā-sutta, 善說語經)’(AN5:198)에서는 다섯 가지 요소를 갖춘 말은 잘 설해진 것이고 나쁘게 설해진 것이 아니며, 허물이 없고 지혜로운 사람들로부터 비난받지 않는다고 설해져 있다. “무엇이 다섯인가? 올바른 때에 하는 말, 진실한 말, 온화한 말, 이익을 주는 말, 자애로운 마음으로 하는 말이다. 비구들이여, 이러한 다섯 가지 요소를 갖춘 말은 잘 설해진 것이고 나쁘게 설해진 것이 아니며, 허물이 없고 지혜로운 사람들로부터 비난받지 않는다.”(AN Ⅲ, 244)

여기서 우리는 당시 일곱 살이었던 아들 라훌라(Rāhula)에게 교계(敎誡)한 붓다의 가르침을 되새겨 볼 필요가 있다. 어린 라훌라는 장로 비구들에게 거짓말하는 것을 좋아했다. 그러면서도 전혀 부끄러워하지 않았다. 그래서 붓다는 라훌라의 나쁜 습관을 고쳐주기 위해 특별히 라훌라에게 설한 것이 바로 ‘암발랏티까에서 라훌라를 교계한 경’(MN61)이다.

붓다는 라훌라에게 “지속적으로 반조하면서 몸의 행위를 해야 하고, 지속적으로 반조하면서 말의 행위를 해야 하고, 지속적으로 반조하면서 마음의 행위를 해야 한다”고 일러주었다. 붓다가 라훌라에게 일러준 가르침의 핵심은 몸과 입과 뜻으로 어떤 행위를 하고자 할 때에는 반드시 먼저 그 행위가 나와 다른 사람 중 하나를 해치거나 둘 다를 해치는 행위인지 생각하고 만약 해친다면 절대로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좋은 말이란 자신을 괴롭히지 않고 남을 해치지 않는 말이다. 이른바 자기와 남에게 이익을 주는 말이 좋은 말이다. 자기와 남에게 이익을 주지 못하는 말이라면 침묵하는 편이 낫다. 이렇게 말하는 나 자신도 간혹 온화한 말이 아닌 거친 말을 쏟아내기도 했다. 좀 더 반조하면서 좋은 말만 하고 나쁜 말은 하지 않았다면 좋았을 것이다.

끝으로 지난 2년 6개월 동안 연재한 졸고 ‘마성 스님의 법담법화’를 읽고 성원해 주신 <법보신문>의 독자님들께 머리 숙여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그리고 이재형 편집국장님과 담당 기자님들에게도 감사드립니다. 그동안 수고 많으셨습니다. 감사합니다.

마성 스님 팔리문헌연구소장 ripl@daum.net

[1614호 / 2021년 12월22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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