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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육종에 무너진 청년의 꿈…“다시 웃을 수 있길”

  • 상생
  • 입력 2021.12.28 21:09
  • 수정 2022.01.11 10:42
  • 호수 1615
  • 댓글 1

베트남 출신 이주노동자 탄 골육종에 왼쪽다리 절단
병원비만 1000만원 이상…의족 있으면 걸을 수 있어

가족을 위해 한국에 온 베트남 출신 탄씨는 언젠가 다시 걸을 수 있다는 희망으로 하루하루를 견딘다.
가족을 위해 한국에 온 베트남 출신 탄씨는 언젠가 다시 걸을 수 있다는 희망으로 하루하루를 견딘다.

베트남 출신 이주노동자 탄(22)은 작은 농촌마을에서 태어났다. 가족들은 쌀농사에 매달려 생활을 연명해왔다. 홍수나 극심한 가뭄을 겪을 때면 종종 입에 풀칠하기조차 힘들었다. 아이들을 제대로 돌보지 못해 자책하는 부모님 앞에선 배가 고프다는 어리광조차 부릴 수 없었다. 학업을 중단한 형이 전기공으로 일하며 가족을 책임지고는 했지만 월급 30만원으로 5명을 부양하기엔 턱없이 부족했다. 어린 탄은 가난의 절망 속에서 하루하루를 보내야만 했다.

형의 도움으로 가까스로 고등학교를 마친 탄은 지인으로부터 한국에 가면 돈을 많이 벌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한국행을 결심했다. 연로한 부모님, 생계를 위해 학교까지 그만둔 형, 학비 때문에 학업 중단을 고민하고 있는 동생을 생각하면 무엇이든 해야겠다는 생각뿐이었다. 한국어를 못하면 무시당할 수 있다는 생각에 누구보다 열심히 한국어 공부에 매진했다. 그렇게 1년이 흘렀을 무렵 취업비자취득에 성공했다. 공항으로 가기 전 탄은 동생의 손을 잡으며 “대학에 꼭 입학시켜주겠다”고 약속했다. 탄은 2019년 12월25일 ‘코리안 드림’을 꿈꾸며 한국땅을 밟았다.

베트남에서 온 청년을 환영하는 듯 인천공항에 첫 발을 내딛은 날 하늘에서는 흰 눈이 펑펑 내렸다. 탄은 소복이 쌓여가는 눈을 보며 마음을 다잡았다. 한국을 떠날 때까지 열심히 일해서 돈을 많이 벌겠다고.

한국에 도착한 탄은 월요일부터 일요일, 아침 8시부터 밤9시까지 주방제품을 만드는 공장에서 쉴 새 없이 일했다. 일주일을 꼬박 일하고 받는 월급은 300만원 남짓. 그 덕에 고향의 부모님과 동생의 생활은 갈수록 나아졌다.

그러나 무거운 목재를 운반하고, 자르고, 조립하고 앉지도 못한 채 매일 서서 강도 높은 노동에 시달리다보니 몸은 지쳐 갔다. 공장에서 근무하는 이주노동자들에게 주어진 휴식은 밥 먹는 시간과 잠자는 시간뿐이었다. 그렇게 1년 5개월을 보냈다. 열악한 환경과 고된 노동이 계속될 때면 포기하고 싶은 마음도 적지 않았다. 그러나 여기서 포기해버리면 꿈꿔왔던 모든 게 끝나버릴 것 같아 결코 돌아갈 수 없었다.

탄의 몸에서 이상증상이 발견된 것은 2021년 5월부터다. 걷지도 못할 정도로 심한 통증에 시달리기 시작했다. 오래 서서 근무했기에 단순한 근육통으로 판단한 탄은 통증을 가라앉히려 진통제만을 계속 털어넣었다. 가족을 떠올리며 이를 악물고 몸을 움직였다. 하지만 고통은 멈추지 않았다. 왼쪽다리가 심하게 부어오르기 시작했다. 참을 수 없는 고통에 탄은 동료들의 도움을 받아 동네 정형외과을 찾았다.

엑스레이를 살펴본 의사는 왼쪽 다리에 13cm정도 되는 혹이 있다고 했다. 당장 큰병원으로 가서 정밀검사를 받아볼 것을 권유했다. 회사에 양해를 구하고 대학병원으로 향했다. 불안한 예감은 왜 빗나가지를 않는지. 조직검사결과 골육종이었다. 청천벽력 같은 소식에 탄은 ‘왜 하필 나일까’하며 침대에 웅크린 채 떨었다.

“골육종이 처음에 뭔지도 몰랐는데 의사선생님의 설명을 들으니 무서워졌습니다. 베트남에서 암은 무조건 죽는다고 생각해요. 어떻게해서든 살고 싶었습니다.”

수술 대신 항암치료를 선택했다. 하루 종일 가슴에 주사를 꽂은 채 항암제를 투여 받고 약을 복용하고 방사선치료까지 받았다. 약이 독한 까닭에 구토는 일상이었고, 밥 한술 뜨기도 힘들었다. 간에는 열이 올랐으며 심지어 위에 궤양까지 생겼다.

6개월 동안 매일매일 치료를 받았지만 암은 고작 5cm밖에 줄지 않았다. 다른 부위로 전이될 가능성이 높아 다리를 절단해야만 한다고 했다. 어린 탄으로서는 받아드릴 수 없는 현실이었지만 결정을 해야만 했다. 베트남은 의료기술이 발달하지 않아 암 치료가 불가능했기에 언젠간 돌아갈 생각을 하면 별다른 선택지가 없었다. 11월24일 수술대 위에 오른 탄은 결국 왼쪽 다리를 잘라냈다.

수술은 성공적이었다. 자신을 괴롭혀 왔던 다리 통증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전이가능성도 없어졌다. 몇 차례 항암치료를 더 받은 탄은 상태가 호전돼 퇴원할 수 있었다. 그러나 절단한 다리 부위고통은 쉽게 줄지 않았다. 뜬 눈으로 밤을 새우기 일쑤였다. 정신과 약을 먹지 않으면 잠을 이룰 수 없을 정도였다.

“잘린 부분이 너무 아픕니다. 암은 제거가 됐지만 없어진 무릎 아래만 보면 정신적으로도 너무 힘듭니다. 통증이 사라지지 않지만 약이라도 먹어야 생활할 수 있어요. 힘들지만 그래도 버텨야죠. 저는 다시 일을 해야하니까요.”

최근 항암치료차 찾았던 병원에서 희망어린 말을 들었다. 예후가 좋아 항암치료를 조금 더 받고 재활치료를 받아 의족을 착용하면 다시 걸을 수 있다는 것이었다. 어두컴컴한 터널 속에 서 있는 것만 같았던 그에게 한줄기 빛이 보이는 듯했다.

그러나 발목을 잡는 건 돈이다. 대부분의 이주노동자들이 그렇듯 월급 대부분을 베트남으로 보냈기에 수중에 남은 돈으로는 병원비 감당이 불가능했다. 일하던 회사에서 돈이 없다는 핑계로 4개월 동안 일한 임금 또한 전혀 받지 못했다. 동료와 친구들로부터 빌려 일부만 납부했지만 1000만원 정도가 고스란히 빚으로 남았다. 이런 상황에서 얼마가 들지도 모르는 의족제작비용까지, 가난한 이주노동자에겐 너무나 가혹할 뿐이다.

그럼에도 22살 청년은 애써 웃음 짓는다. 언젠간 자리를 털고 일어나 걸을 수 있다는 희망을 품고서. 베트남에서 온 이주노동자가 시련을 딛고 다시 일어설 수 있도록 불자들의 자비온정이 절실하다.

모금계좌 농협 301-0189-0372-01 (사)일일시호일. 070-4707-1080

김민아 기자 kkkma@beopbo.com
 

[1615호 / 2022년 1월1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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