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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편향에서 법난까지…불교와 악연 많았던 대통령이 다수

기자명 이병두
  • 새해특집
  • 입력 2021.12.29 16:49
  • 수정 2021.12.31 10:17
  • 호수 1615
  • 댓글 2

새해 특집 - 불교에서 배우는 통치의 지혜
[불교와 정치] 3. 역대 대통령과 불교

기독경 손 얹고 취임식한 이승만 정권에 개신교 인구 10배 급증
박정희 정권의 ‘불재법’ 시행 이후 불교계 내부갈등 끊이지 않아
가톨릭 성지화 돌입한 문재인 정권은 종교 편향에도 사과 없어

한국과 같은 종교 다원 상황에서 정부나 대통령이 겉으로 ‘모든 종교와 우호 관계를 추구’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는 이와 다르다. 여러 종교 중에서 배제나 억압 대상을 선택하여 낙인을 찍어 강하게 공격하기도 하고, 특정종교 교단의 갈등과 분열에 개입하여 그것이 더 확장‧심화‧고착화 되도록 조장하여 그 종교를 권력에 종속시키는 전술을 쓴다. 

반면에 권력의 파트너로 삼은 곳에는 주류종교의 지위를 부여하려고 시도한다. 이런 정책을 밀고 나간 미군정 3년과 이승만 정권 12년, 합하여 15년 동안의 국가권력과 대통령은 그 권력이 종속된 미국의 종교조직과 강한 유대관계를 유지한 기독교의 급속 성장을 만들어 낼 수 있었다. 이와 정반대로 권력의 ‘분할 통치’ 전술에 그대로 노출된 유교는 빠른 속도로 몰락하여 소수종교가 되었고, 불교계도 수십 년 동안 심각한 상처를 받아 완전히 치유되려면 아직도 긴 시간이 필요하다.

국가가 특정 종교에 제공할 수 있는 최상의 특혜는 ‘국교’ 지위를 부여하는 것이다. 제헌헌법에서부터 ‘정교분리’ 원칙을 분명히 한 한국에 ‘국교’가 존재할 수는 없지만, 미군정과 이승만 정권은 개신교에 ‘적산(敵産) 불하 특혜‧기독탄신일 공휴일 지정‧기독교 군종장교제도 도입‧기독교방송 설립허가’ 등 ‘사실상 국교에 가까운 파격 특혜’를 주었다. 뿐만 아니라 이승만은 제헌의회 개원식과 대통령 취임식 등에서 기독경에 손을 얹고 선서를 하는가 하면 개신교 목사와의 기도 시간을 갖는 등 헌법 정신을 위배하여 국가 최고지도자로서 해서는 안 될 일탈행위를 서슴지 않았다. 

반면에 불교를 비롯한 토착 종교들에는 개신교에 비하면 매우 적은 ‘제한된 혜택’을 주면서 그것을 둘러싸고 각 교단 내부에서 경쟁과 갈등‧분열이 확대‧심화되고 굳어지게 만들었다. 해방 이후 최근까지도 전 국민에게 ‘민족’이 주요 화두로 등장하여 그 열기가 뜨거웠던 한국에서 개신교처럼 불교에 ‘사실상 국가종교’와 같은 특혜를 부여했더라면 내부의 경쟁‧갈등과 분열이 크게 줄고(강인철, ‘한국의 종교‧정치‧국가: 1945~2012’) 교세도 크게 발전했을 것이다.

이 시기 개신교에 준 특혜 격차 결과 해방 당시 총인구 대비 0.5%에 지나지 않았던 개신교 인구가 이승만 정권이 몰락한 1960년에는 5.8%로 10배 이상 급성장할 수 있었다. 그런데 이승만 정권 시절 장·차관과 군장성 등 정부 고위 인사의 39%가 개신교 신자였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이승만이 개신교에 ‘사실상 국교’ 지위를 부여했던 사실이 확인된다. 정권 초기에는 내각과 여당에 불교‧대종교 등 다양한 종교 배경을 지닌 정치인들을 참여시켰지만, 1954년 말에 이르면 이들이 정권 핵심부에서 거의 탈락하여 ‘개신교 독주체제’가 이루어지면서 계속 악화되어 갔다. 그 배경에는 오랜 미국 생활을 한 감리교 장로인 데에다 자신이 정권을 잡을 수 있도록 해준 미국을 ‘상국(上國)’으로 여기는 철저한 숭미(崇美)주의까지 합해져서 “한국이 미국과 같은 기독교 국가가 되어야 마땅하다”는 생각이 신념으로 굳어지고, 그것을 ‘하느님의 뜻’이라고 오해하는 근본주의로까지 나아간 개인 성향이 있었다.

어쨌든 이승만은 불교(와 유교) 교단의 갈등과 분열을 조장(또는 조종)하여 한국을 기독교 국가로 만들려고 했던 인물이다. 훗날 이명박이 “서울시를 하느님에 봉헌하겠다”는 식의 언사를 서슴지 않고 하게 된 선구자인 셈이다. 불교와는 악연(惡緣), 그것도 결코 맺어서는 안 될 최악의 인연이 이승만이다.

1960년 4월 이승만이 자리에서 물러난 뒤 짧은 과도정부 기간을 거쳐 집권한 민주당 정권 시절에 윤보선 대통령은 상징적 존재에 지나지 않고 장면 국무총리가 국정책임자였는데 이승만처럼 노골적이지는 않았다고 할지라도 종교 문제에서는 심각한 인물이었다. 불교와 특별히 마찰을 일으키는 일은 없었지만 가톨릭 의존도가 지나쳐서 불교계는 상대적 피해를 입었다. 장면 시절 주요 정치지도자의 종교 분포는 ‘개신교 19.8%, 가톨릭 11.9%, 불교 7.0%…’로, 가톨릭이 약진하여 총인구 대비 신자 비율의 4.1배나 되면서도 불교 등 전통 종교 홀대는 바뀌지 않았다. 그런데 5‧16 군사쿠데타로 장면 정권이 무너지자 가장 먼저 군사 정권 지지에 나서 미국의 케네디 정권 설득에 앞장선 이가 미국인 신부였다는 사실은 ‘장면-가톨릭’ 사이의 묘한 역설이다.

박정희를 바라보는 불자들의 시선은 ‘부정과 긍정’ 사이에 넓게 퍼져있다. 긍정적으로 보는 이들은 불국사 복원 등 외형적인 모습과 부인 육영수가 신심 깊은 불자였다는 사실 등을 근거로 여전히 그 믿음을 버리지 않고 있다.

해방 이후 계속 갈등을 이어오던 비구-취처 양측은 5‧16군사쿠데타 이후 계속 박정희를 지지하며 자신들에게 유리한 상황을 만들려고 하였는데, 그 배경에는 권력이 불교계를 강력하게 직접 통제할 수 있었던 ‘사찰령’(1911년 발효, 1962년 1월 폐지)을 이어받은 ‘불교재산관리법’(‘불재법’ 1962년 5월 제정‧시행)이 있었다. 특히 ‘불재법’ 제정‧시행 이후, 1963년 11월까지 단일종단을 이어온 불교계에 빠른 속도로 신생종단이 늘어나 1972년에는 그 숫자가 18개로 늘어났다. 정부의 인정을 받아 등록된 종단 숫자 증가는 박정희 정권이 여러 종단을 합법화시키는 ‘불교계 분할통치’ 정책 구사에 성공(?)했다는 표시이다. 현재까지 불교계 내부 갈등이 끊이지 않고, 수백 개 종단 시대를 맞이하게 된 것도 박정희의 이런 불교계 ‘분할통치’ 정책이 남긴 후유증일 것이다.

집권 18년 동안 불교계의 갈등과 분열을 심화시켜 계속 이어지게 하고 정권 우호 세력으로 활용한 박정희, 선연과 악연이 얽힌 그를 냉정하게 평가하면 악연 비중이 훨씬 높을 것이다.

1980년부터 1992년 초까지 이어진 전두환과 노태우의 12년 집권 기간에도 불교계와 대통령의 악연은 멈추지 않았다. 무엇보다도 1980년에 일어난 ‘10‧27법난’은 대통령 전두환과 보안사령관 노태우가 함께 지은 악업(惡業)인데, 최근 세상을 떠난 두 사람과 불교 인연은 대조적이다. 본래 기독교인으로 알려졌던 전두환은 끝까지 ‘10‧27법난’에 대해 자신의 잘못을 공식 인정하거나 사과한 적은 없었다. 그러나 1988년 겨울부터 백담사에 들어가 지내고 나온 뒤 불교계 인사들과 만나 편하게 이야기를 나누는 등 불교신자로 살아오다가 세상을 떠난 뒤에는 유가족들이 절에서 7‧7재를 지냈다. 반면 노태우는 모친이 독실한 불자였고 자신도 불자로 알려졌었는데 죽음을 맞이하기 몇 년 전부터 개종했다는 주장이 있었고 사후에 절에서 재를 올렸다는 소식도 없다.

대통령 재임 시절 두 사람 다 이승만과 박정희의 선례를 따라 불교계 갈등과 분열을 악용하여 정권 우호세력으로 만들려 했던 것은 분명한 사실이지만 이승만 시절처럼 장·차관과 군 장성 등 고위급에 특정 종교인을 치우치게 등용하는 일은 없었는데, 이것은 ‘친 정권 행보’에서 벗어나 현실을 냉정하게 볼 줄 아는 불교인들이 늘어난 덕분일 것이다. 두 사람의 12년 집권 기간에, 특히 ‘10‧27법난’을 겪은 뒤로 “더 이상 이래서는 안 된다”는 자각이 일어나지 않았다면 정권에 대하여 저항의 목소리를 내고 때로는 정권의 사과를 받아낼 수 없었을 것이다.

김대중‧노무현‧박근혜 대통령은 종교 때문에 특별한 문제를 일으키지 않아서, 정치와 종교는 ‘너무 가까이도 너무 멀리도 하지 말라’는 불가근불가원(不可近不可遠) 원칙을 지켰다고 평가할 수 있다. 그러나 김영삼‧이명박과 현 문재인 대통령은 정책 수립과 집행, 개인 언행에서 자신의 종교에 지나치게 기울어 종교 편향의 나쁜 사례를 남긴 점에서 ‘심각한 문제를 가진 대통령’들이다.

이승만과 같이 개신교 장로였던 김영삼과 이명박은 인재 등용에서도 그와 똑같은 길을 가면서 심지어 “충현교회‧소망교회 인맥이 정권 중심을 장악하고 있다”는 말이 국민들 사이에 설득력을 얻을 정도였다. 김영삼 시절엔 조계사에 경찰 병력을 두 차례나 투입하는 일이 일어났을 뿐 아니라 군 내부에서도 불교 폄훼 사건이 이어졌고 이명박 집권 당시엔 불교를 멸시하는 일이 여러 차례 일어나 한여름 뙤약볕 아래에서 수천 불자들이 항의 집회를 열기도 하였다.

그래도 두 사람은 문제가 불거지면 사과를 하고 재발 방지를 위한 조치를 취하기도 하였지만, 현 문재인 대통령은 집권 초부터 현재까지 이 두 사람에 뒤지지 않는 종교편향 언행을 이어가면서 단 한 차례도 사과나 재발 방지 약속이 없다. 이런 분위기에 편승한 가톨릭은 중앙 및 지방정부와 함께 전국 곳곳에서 성지조성 사업을 추진하며 심지어 과거 선조 교도들을 숨겨주었던 사찰들까지 ‘순교성지’로 만들겠다는 파렴치 행위에 나서면서 국민화합을 해치고 있다.

이병두​​​​​​​​​​​​​​ 종교평화연구원장
이병두 종교평화연구원장

이처럼 해방 이후 70년이 넘는 기간 불교와 국가권력 또는 대통령들과의 관계는 선연(善緣)보다는 악연(惡緣)으로 엮일 때가 많았다. 그리고 앞으로도 선연보다는 악연이 더 자주 재연될 가능성을 부정하기 어렵다는 사실도 우리가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슬픈 현실’이다. 두 달 뒤에 치르게 되는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이번에는 훌륭한 분이 대통령이 되어 국민을 행복하게 해주면 좋겠다!”며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하는 국민들이 많다. 다음 대통령이 할 일이 숱하게 많겠지만, 무엇보다도 종교 사이의 갈등을 유발하여 평화를 깨뜨리고 국민화합을 해칠 가능성이 있는 후보는 낙선시켜야 한다. 대통령의 종교에 신경 쓰지 않아도 될 정도 상황이 오면 가장 바람직하겠지만, 그런 날이 오기엔 아직도 먼 것 같으니 어쩌겠는가.

[1615호 / 2022년 1월1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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