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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연재를 시작하며

기자명 각전 스님

산치부조·아잔타벽화, 본생담으로 성불의 길 제시

일대기로 부족한 부처의 위대함 설명하려 본생담 발전
악조차 끌어안는 난행 접하며 우리 심성도 변화 일으켜
주인공 동물의 실천은 보편적 생명에 대한 시야 넓혀줘

아잔타 석굴 파노라마전경.
아잔타 석굴 파노라마전경.

부처님의 전생 이야기를 자타카(jataka) 혹은 본생담(本生談)이라 한다. 우리는 왜 부처님의 본생담에 주목하여야 할까? 본생담에 실린 작품들의 세계관은 불교 수행에서 기초가 되는 심성(心性)과 성품을 형성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이런 기초가 없이 신행활동을 하거나 수행 정진한다는 것은 1층 없이 2층을 지으려는 것과 같다. 

본생담의 이야기들은 매우 사실적이며 인간의 심리에 대한 묘사가 생생하기 그지없다. 이는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의 마음을 그대로 투영해 비추어주는 듯하다. 인생을 살아가면서 접하는 수많은 판단과 결정의 순간들이 있다. 그럴 때마다 우리는 어떤 결정을 내릴지, 긴 인생 전체를 두고 어떤 일관된 태도로 살아가는 것이 나을지 하는 문제에 부딪힌다. 지나고 난 뒤에도 뿌듯함과 회한이 겹치면서 끝없이 반문하게 된다. 번뇌의 흐름이 다한 존재가 되어서 궁극의 인격을 실현코자하는 수행자의 입장에서는 더욱 그러할 것이다.

이러한 문제의식은 ‘나는 어떤 인물이 될까’ ‘어떤 인물이 많아야 모두가 행복할까’라는 사회적 질문으로까지 번져나간다. 결국 이것은 ‘너와 나, 우리 모두가 어떻게 하면 행복해질까’라는 질문이기도 하다.

가장 이상적인 존재는 부처님일 것이다. 부처님은 깨달으신 분이라는 의미이다. 고타마 싯다르타라고 하는 역사적 존재인 부처님의 일대기는 생로병사에 대한 고뇌와 그것으로부터 벗어나고자 하는 고행과 깨달음, 그 이후의 아름다운 수많은 지혜와 신통을 보여준다. 이렇듯 부처님의 삶은 고행자-각자(覺者, 깨달은 자)-현자(賢者 내지 초인超人)의 모습으로 정형화된다. 

그러나 싯다르타라는 한 인물의 정형화된 일대기로는 부처님의 위대함을 다 설명하기에 역부족일 뿐만 아니라 복잡다단하고 실타래처럼 얽힌 우리들의 삶의 곳곳을 비추어주기에도 미흡하다. 이러한 점이 본생담이 만들어지고 발전한 이유이기도 하다. 더욱이 부처님을 신들보다 더 위대한 존재로 만들어야 하는 종교 경쟁의 역사적 과정 속에서 우리들에게 필요한 구체적 삶의 거울들은 더욱 퇴색되었을 것이다. 

본생담에는 수많은 다양한 삶의 모습들이 기록되어 있다. 거듭되는 수많은 생들에서 결정적 순간이나 절체절명의 상황에서 한 생명체가 보여준 결단과 행동을 볼 수 있다. 나아가 그러한 숭고한 행위를 사람이 아닌 동물의 몸으로 실천함을 보여줌으로써 사람이라는 인식의 한계를 깨뜨리고 보편적 생명에 대한 시야를 열어줄 뿐만 아니라 우리들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잠겨있어 알아채지도 못하던 수많은 보이지 않는 다른 정신적 감옥들마저도 깨뜨려주고 있는 것이다. 

본생담에는 많은 인물들이 등장하는데 주역, 조역, 악인이 가장 중요한 캐릭터들이다. 부처님의 전생 보살이 주역인 경우가 많지만 조역으로 등장하는 경우도 허다하여 작품마다 다양하다. 이러한 점은 본생담의 내용을 더욱 다이나믹하고 실감나게 해준다. 

여러 본생담에 부처님의 전생 보살로등장하는 인물들을 종합해보면, 상황과 상황의 연속 속에 공통된 인격이 등장하는데, 그것을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난행(難行, 어려운 행)의 능행(能行, 능히 행함)이며, 내용적으로 열거해본다면 불해(不害)와 용서, 자기희생, 인욕, 보시, 정진, 지혜 등으로  요약된다.  

또한 본생담에 등장하는 악인(惡人)은 바라밀의 실천을 더욱 어렵고 더욱 고귀한 것으로 만들어 주고 있다. 선(善)과 악(惡)의 대결이라는 고대 문학의 전통적 프레임이 그대로 재현되고 있기는 하지만, 선의 편에 서 있는 주인공들은 악에 대항해서 싸우는 것이 아니라 악(자신을 해치는 자)마저도 끌어안는 선을 행한다.  

이러한 독특한 구조는 바라밀 특성에서 유래한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악한 자는 욕심 때문에 가지려 하지만 선한 자는 자신을 버리기 때문이다. 자신을 버리는 것이야말로 난행이다. 난행은 바라밀을 실천하는 보살로서의 삶의 위대성을 더욱더 고귀하게 만들고, 우리가 인생의 과정에서 순간순간 어떤 삶을 살아야 할지, 어떤 유형의 인간일지, 어떤 마음으로 살아야 할지 돌아보게 하고 그에 대한 해답을 주고 있는 것이다. 

본생담을 읽음으로써 보살의 의지와 결단 그리고 실천에 대해 알아가는 것은 우리들의 마음에 오래도록 흔적을 남기고, 깊은 곳에 자리한 심성을 바꾸어줄 것이다. 이러한 변화야말로 부처를 이루는 길에 한 발짝 걸음을 내딛는 것이리라.

본생담 가운데 가장 분량이 많은 것이 스리랑카에서 전승된 남전 ‘본생경’인데, 그 전체가 번역되어 우리나라에 소개된 것이 ‘한글대장경’ 다섯 권의 ‘본생경’이다. 그 외에도 인도 대륙과 파키스탄, 중앙아시아에서 유포되었던 ‘자타카말라’가 있지만 우리말로는 번역되어 있지 않다. 한역된 것으로 ‘육도집경’ 등이 있지만 분량으로만 볼 때 ‘육도집경’은 남전 ‘본생경’의 6분의1 수준이다. 

산치 제3탑.
산치 제3탑.

‘본생경’의 내용이 너무 방대하므로 이번 연재에서는 산치대탑의 탑문에 부조로 조각되고 아잔타 석굴에 벽화로 그려진 본생담들을 모음으로써 고대인들이 가려 뽑은 기준을 되살리고 본생담이 형성되는 과정도 느끼고 짐작해 보고자 한다. 산치대탑의 부조는 기원 전후이며, 아잔타 석굴의 벽화는 기원후 6~7세기의 작품들(16·17굴은 6세기 중엽, 1·2굴은 7세기 초)이기 때문이다. 

산치·아잔타 본생담은 총 25편인데, 산치 5편, 아잔타 25편이다. 산치대탑에 새겨진 총 5편의 본생담은 10점의 부조로 작품화되었다. 총 5편의 본생담 중 가장 많이 작품화된 본생담은 베산타라 본생담 3회(아잔타까지 총 6회 반복), 육아상 본생담 3회(아잔타까지 4회), 사마 본생담 2회(아잔타까지 3회) 순이다. 그리고 원숭이 본생담과 용왕 본생담이 한 번씩 부조되었다. 

이들은 아잔타 석굴의 벽화에서도 그대로 재현되었고, 여기에 20편의 작품들이 더해져서 총 25편의 본생담을 31점의 벽화로 아잔타 석굴에서 만나볼 수 있다. 물론 벽화굴로 분류될만한 1·2, 16·17굴의 벽화만 보았을 때의 이야기이고, 너무 훼손이 심하여 알 수 없는 작품들은 제외한 것이다.

각전 스님 선객 agami0101@naver.com

 

[1615호 / 2022년 1월1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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