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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원효의 표주박과 크레이지 코리안 떼창

K팝 저변에 민족기질 형성해온 불교 음악 있다

경전은 합송으로 성립…중국서 역경할 때 반드시 범패사 함께해
자비송이 세계 명상 음악된 이유, 설법에 팔리어 율조 있기 때문
한국인 유별난 음악적 기질에 2000여년 불교문화 깃들어 있어 

2013년 안산밸리 록페스티벌, 오른쪽 영상에 네이트 류이스가 보인다.

지난해 공립합창단의 종교편향에 대한 불교계의 항의와 여론이 거세었다. 그리하여 총무원 사회부에서 불교음악원으로 국·시립 합창단의 연주현황을 조사·분석해 달라는 의뢰가 있었다. 처음에 몇몇 프로그램들을 보니 그간 익히 알아왔던 베토벤, 모차르트, 헨델의 미사곡이나 레퀴엠들이 보였다. “이런 것은 예술곡인데 너무 과민한 것 아닌가?” 그러나 전국의 연중 프로그램을 조사하면서 “이건 아니다”는 분개감을 억누를 수 없었다. 무엇이든지 정도와 균형이라는 것이 있어야 하는데, 국민의 세금으로 운영되는 단체가 이럴 수가….

필자는 청소년기부터 성가대 활동을 하였고, 라틴어를 배우며 이탈리아 수도자로부터 그레고리안찬트를 공부했던 경험이 있다. 그러므로 국·시립 합창단의 프로그램 속 라틴어 혹은 연가(戀歌)로 보이지만 실제로는 기독교 성서 속 시편이나 아가(雅歌)를 가사로 하는 찬송가들이 한눈에 들어왔다. “너무하네. 이 정도면 기독교 합창단이지.” 게다가 그런 노래를 하면 내면이 어떻게 변하는지에 대해서도 잘 알기에 “공립합창단 창립 이래 지속해온 현 상태는 앞으로도 개선 불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주변의 몇몇 음악전문가와 학계 사람들에게 이런 생각을 얘기했더니 “기독교는 음악, 불교는 미술, 우리가 실력이 없으니 어쩔 수 없는 일”이라는 반응도 있었다. 음악인류학자로서 지구촌 인류문명과 음악의 면면을 연구해 온 바에 의하면, 불교는 음악 그 자체라고 할 만큼 음률의 종교이고, 경전 자체가 합송에 의해 성립되었는데 이 무슨 소리인가?

부처님의 말씀 자체에 율이 있으므로 굳이 작곡가의 기술을 빌리지 않더라도 경전 자체가 음악이 되는 경구(經句)들이 많다. 그러므로 중국에서 역경을 할 때는 반드시 범패사가 함께하였다. “찬송 한 번이 기도 세 번”이라는 기독교 성서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현상이다. 남방불교에서 일반 신도들이 다함께 외는 자비송 ‘메따’는 세계적인 명상음악이 되었다. 이러한 데에는 부처님의 설법어 팔리어의 율조가 있다. 그래서 상좌부불교 스님들이 어떤 경전을 욀 때는 마치 노래하는 듯이 들리기도 한다. 그런 모습을 보면서 만약 저 대목을 부처님이 직접 설했다면 어땠을까? 서른여섯에 깨달으시고, 꽃미모 만발하는 사십대 쯤에 그 대목을 설하는 한 인도 남성의 모습을 떠 올려보니 그야말로 월클 유랑시인이자 싱어였다.

소파이 스타디움 앞에 BTS 굿즈를 사려는 사람들로 교통이 마비되고, LA 공연 역사상 최고의 수익을 올렸다는 뉴스가 채 가시지 않은 2021년 12월4일, BTS 멤버 진이 생일을 맞아 1분13초짜리 B급(?) 트로트풍 뮤비 ‘참치’를 올렸다. 그리고 몇 시간이 채 지나지 않았는데, 온 세계 사람들이 ‘슈퍼참치’ 챌린지를 하는 바람에 유튜브와 음원차트를 휩쓸더니 요즘은 온 세계 유치원, 초등학교 아이들이 교실이며 운동장에서 떼창·떼춤을 추는 동영상이 도배되고 있다. 21세기 세계문화를 선도하고 있는 K팝에는 한국이라는 문화토양이 있고, 거기에는 한국인들의 유별난 음악적 기질이 있다.
 

스님들이 염불하며 춤추는 일본 오도리넨부츠.

영국의 국민밴드 오아시스의 리더 노엘 갤러거(Noel Gallagher, 1967~)는 괴팍한 성질과 행동거지로 “인간 로큰롤”이라 불리었다. 그가 한국에 오기 전에는 떼창하는 한국인을 “Crazy Korean”이라고 독설을 내뱉고는 했다. 그런데 막상 한국에서 코리안 떼창을 보고는 그의 마음이 180도로 바뀌어 “한국인은 즐길 줄 안다”며 극찬 했다. 2019년 다시금 한국에 와서는 “여러분이 노래하는 걸 보려고 서울에 왔습니다”라는 달콤한 멘트와 함께 “Live Forever”를 불렀다. 사실 그 노래는 고음이 많아 한 번도 라이브로 불렀던 적이 없던 노래였으나 한국인의 떼창마력이 그 노래를 무대로 불러내었던 것이다.

미국의 3인조 인디밴드 ‘펀(Fun)’은 2013년 안산밸리 록페스티벌에 참가해 ‘We Are Young’을 불렀다. 당시 펀은 창단된 지 얼마 안 된 밴드였고, ‘위 아 영’도 별로 알려지지 않았던 노래였다. 그런데 한국 사람들이 일제히 손을 흔들고 따라하는 것을 보고 메인 싱어 네이트 류이스(Nate Ruess, 1982~)가 어리둥절해졌다. 미국에서도 그다지 알려지지 않은 노래를 동양의 조그만 나라 음악행사에 온 사람들이 다 외워 부르는 모습에 감동이 북받쳐 눈물을 흘리느라 노래는 떼창이 다했다. 2년 후에 그는 아예 ‘Korea Song’을 만들어 왔다. “Korea~. I don’t understand…. Korea~~~ bibimbab” 그리고 “…코리아~♬♪”를 격하게 외치는 엔딩은 그야말로 류이스와 한국 팬들의 진심과 열정이 한데 어우러진 감동의 도가니였다. 무대 위의 가수를 향해 떼창하는 모습들을 보면 가슴이 먹먹해진다. 한국인의 이러한 기질을 헤아릴 때라야 불교가 그들의 삶 속으로 들어갈 수 있다.

1분13초짜리 ‘슈퍼참치’를 듣고 또 듣지 않고는 배기지 못하는 코리안이 또 사고를 쳤다. 그것을 계속 이어 붙여서 한 시간짜리 ‘참치’를 만들어 버린 것이다. 그러자 이제는 온 세계 나이트클럽에서 춤을 추고 난리가 났다. 끊임없이 반복되는 그 노래를 듣다보면 염불과도 같아서 원효의 무애가를 따라 나무아미타불을 노래하며 표주박춤을 추던 신라 사람들이 떠오른다. 원효가 누구인가? 외국물을 전혀 먹지 않은 토박이 신라인이 아니던가. 그러한 원효의 무애가와 민중의 표주박춤이 일본으로 건너가 ‘봉오도리(ぼんおどり盆踊)’가 되었다.

훗날 봉오도리는 정토종의 ‘오도리넨부츠(おどりねんぶつ 踊り念仏)’와 자연스럽게 연결되었고, 오늘날 일본의 유명한 무용장르요, 불교예술로 자리를 잡고 있다. 노래와 춤의 신명을 지닌 한국인의 DNA가 요즈음은 온 세계를 흔들고 있고, 그 저변에는 2000여년간 우리네 기질을 형성해온 불교음악이 있다. 그러한데 “불교는 미술, 기독교는 음악이라?” 여기에는 알게 모르게 잘못 인식되어온 착시현상이 있다. 앞으로 종교와 불교음악이야기로 이러한 착시현상을 하나둘 풀어볼까 한다.

윤소희 음악인류학 박사·한국불교음악학회 학술위원장 ysh3586@hanmail.net

[1616호 / 2022년 1월12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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