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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찰 일구기’는 지역공동체 선도 청사진

기자명 법보
  • 사설
  • 입력 2022.01.10 16:38
  • 호수 1616
  • 댓글 0

치밀‧생생 200쪽 보고서 큰 의미
모범사찰 흉내로는 결국 ‘실패’
지역주민과 호흡이 성공 원동력

조계종 백년대계본부 불교사회연구소가 최근 ‘지역사회와 함께하는 사찰 일구기’라는 이색적인 연구보고서를 발간했다. 기후위기, 코로나19 등과 맞물려 세계적 화두로 떠오른 지역공동체의 중요성을 불교 관점에서 조명하고 8개 모범 사찰을 분석해 유형화한 결과를 제시했다. 200쪽에 이르는 이 보고서는 ‘지역공동체 사찰’ 청사진과 함께 이 시대 사부대중이 걸어야 할 길을 제시하고 있어 주목된다. 

불교사회연구소가 정한 지역사회와 함께하는 사찰이란 ‘스님·신도·전문가·지역주민·공공기관 등 다양한 관계자가 주체적으로 참여하며 해당 지역의 기후·풍토·역사·환경 및 삶의 문화, 나아가 시대·사회적 요구를 사찰의 공간과 프로그램에 담아내고 실천하는 사찰’이다. 화엄사‧실상사‧낙산사‧미황사‧대광명사‧대각사‧성림사‧선덕사를 모범 사찰로 꼽았는데 성공에 이르게 한 결정적 요소는 대규모 재정투입이 아니라 놀랍게도 원력이었다.

사찰의 지역사회 활동은 다양하지만 압축하면 쓰레기 줍기 등의 환경운동, 자비나눔, 명상‧다도 등의 문화강좌 그리고 복지시설 운영이다. 그렇다면 여느 한 사찰이 환경, 자비, 문화, 복지 중 주지스님의 취향이나 재가자들의 요청에 따라 선택만 하면 될까? 이 보고서는 “아니오!”라고 답하고 있다. 8개 사찰의 실무자들이 공통적으로 전하는 고언은 “모범 사례 흉내 내려 하면 실패한다”는 것이다.

지역활동에 대한 명확한 철학과 의지를 갖춰야 한다고 조언하고 있다. 또한 지역사회의 현황과 사찰의 역량을 정확히 파악하고, 향후 활동에 대한 구체적인 계획수립의 중요성을 일깨우고 있다. 그래야 역량을 축적하며 꾸준히 실천해 갈 수 있기 때문이다. 가장 중요한 건 철학과 의지인데 이것은 곧 원력이다.

‘사찰 일구기’의 본격적인 첫 행보는 지역주민들과의 소통‧교감인데 보고서는 ‘지역사회와 마주앉기’로 표현하며 이 부분에 상당한 지면을 할애했다. 단순히 생각하면 서로 협동하고 연대하기 위해 만나고 모이는 것이지만 지역주민과의 마음경계를 허무는 중요한 과정이다. 따라서 “조급함보다는 여유로운 기다림이 요구된다”고 짚었다. 대표적으로 낙산사와 화엄사, 실상사가 방증한다.

2013년 한국가스공사가 용호리에 도시가스 정압관리소 설치를 강행하자 낙산사와 지역주민은 공동대책위를 가동해 대처했고 결국 이 사업을 백지화시켰다. 2015년 발생한 산불로 홍련암을 제외한 낙산사의 모든 전각이 전소됐지만 당시 주지 금곡 스님은 지역주민들을 위로하며 함께 재난을 극복해 갔다. 2016년에 도입한 ‘기업형 농촌 도약마을’에 용호리가 선정에도 적극 도왔던 낙산사다. 호혜적 관계를 확인‧경험한 용호리 주민들은 2017년 자체 투표를 거쳐 ‘불자마을’로 결정했다. 이후 낙산사 주변의 사하촌 주민들의 요청이 쇄도해 불자마을이 추가로 설립됐다.

화엄사의 ‘지역사회 마주앉기’는 2005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주지로 선출된  종삼 스님은 “부처님 진리의 말씀을 바탕으로 1700년 이어온 한국불교의 문화적 유산과 감수성으로 지역주민은 물론 국민 모두의 편안한 쉼터가 되도록 하겠다”고 선언하며 지역주민들과의 소통을 시작했다. 구례군 농민회와의 만남을 두고는 “운동권과의 만남”이라 비판받기도 했지만 신경쓰지 않았다. 이 만남은 템플스테이로 이어졌고, 나아가 ‘통일 쌀 공동경작단’이 구성됐다. 현 주지인 덕문 스님 역시 지역주민들과 호흡하고 있다. 1990년대 후반 대안 문명으로 생태계와 농업에 주목했던 실상사는 당시 뜨거운 이슈로 떠오른 ‘귀농정착’을 선도한 바 있다. 이후에도 주지 도법 스님을 중심으로 한 실상사는 지리산댐살리기 운동, 산내면 온천개발 반대 운동을 주도적으로 이끌었다. 현대적 개념의 지역공동체 조성에 따른 사찰의 중요성을 처음으로 설파하고 증명해 보인 사찰이 실상사다.

연기사상에 기반한 상생의 실천적 의지가 ‘사찰일구기’의 성공 요소임을 이 보고서는 행간 곳곳에서 역설하고 있다. 사찰과 지역사회와의 공동체 조성의 의미는 어디에 있을까? 보고서의 ‘지역활동’ 의미에서 찾을 수 있다. ‘붓다의 가르침을 전하고 실천한다. 신도들의 종교적‧사회적 서장을 도모한다. 그리고 신도들의 성장은 사찰이 사찰공동체로 도약할 수 있는 기반이 된다.’ 이것은 “모든 사람의 이익과 안락을 위해 길을 떠나라”고 했던 전도선언과 맥이 닿는다. 조계종 홈페이지를 통해 내려받을 수 있는 이 보고서에 사부대중의 관심이 더 집중되기를 기대한다. 여건이 허락되면 책으로도 출간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1616호 / 2022년 1월12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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