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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스님이 기록한 따뜻한 밥상·쉼표 같은 산사

  • 불서
  • 입력 2022.01.10 16:59
  • 호수 1616
  • 댓글 0

무료급식소·심곡암서 벌어지는 진솔한 일상 
시·수필 넘나드는 정갈한 글로 담담히 기록
실천하는 보살의 모습 훈훈한 온기 전해줘

밥 한술, 온기 한술
원경 스님 지음 / 담앤북스
228쪽 / 1만5800원

밥 한술, 온기 한술
밥 한술, 온기 한술

“수천의 생을 반복한다 해도
사랑하는 사람과
다시 만난다는 것은 드문 일이다.
지금 후회 없이 사랑하라.
사랑할 시간은 그리 많지 않다.”

자비와 연민, 보살의 마음을 일으키는데 있어 최고의 경전으로 꼽히는 샨티데바의 ‘입보리행론’에 나오는 게송이다. 사랑할 대상은 많다. 친구, 배우자, 부모, 자식, 환경, 생명, 지구, 우주. 무엇을 소중히 생각하느냐에 따라 사랑의 대상은 다를 것이다. 불자라면 부처님일 것이고 부처님이라면 중생일 것이다. 사랑하는 대상이 그 무엇이라도 좋다. 다만 지금 후회 없이 사랑해야 한다는 것이다. 수천 생을 반복해도 다시 만나리라 보장할 수 없다. 이생의 삶 또한 이슬처럼 찰나에 불과하다. 

원경 스님의 책 ‘밥 한술, 온기 한술’은 ‘입보리행론’의 사랑에 대한 게송을 떠올리게 한다. 한국문인협회 시인이기도 한 스님의 글은 시와 수필을 경계가 모호할 정도로 정갈하고 아름답지만, 글 속에 담긴 내용 또한 삶에서 배어나온 향기를 담은 까닭에 진솔하고 감동적이다. 글의 소재는 스님을 둘러싼 잔잔한 일상의 일들이지만 여운이 가볍지 않다. 스님이 행동으로 보여주는 삶의 여적이 수행자를 넘어 보살의 일상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글은 눈으로 읽지만 내용은 가슴으로 느껴진다. ‘입보리행론’에서 말하는 사랑의 의미가 스님을 통해 우리 삶으로 들어와 대화를 하는 것 같다.
 

서울 탑골공원 앞 원각사 노인무료급식소에서 노숙인들을 위해 공양을 준비하는 원경 스님. 
서울 탑골공원 앞 원각사 노인무료급식소에서 노숙인들을 위해 공양을 준비하는 원경 스님. 

조계종 사회부장 소임을 맡고 있는 스님은 가난한 노인들이 모이는 서울 탑골공원 앞에서 원각사 노인 무료급식소를 운영하고 있다. 2015년 20년 가까이 이어지던 무료급식소가 운영상 어려움에 처해있다는 것을 우연히 알고 자청해서 맡게 돼 지금껏 운영해 오고 있다. 또 북한산 자락에 도심 속 산사인 심곡암에서 23년째 산사음악회를 이어오고 있다. 책은 원각사 무료급식소와 심곡암을 중심으로 1부 “따뜻할 때-어서 드세요”라는 말, 2부 심곡-일지, 3부 울리지 않는 종은-종이 아니다로 구성돼 있다. 때로는 스케치하듯이, 또는 독백을 하듯이 주제별로 수필처럼 써 내려간 글이지만 시인답게 곳곳에 시를 더해 글에 더욱 깊은 여운을 주고 있다. ‘따뜻할 때 어서 드세요’로 시작하는 첫 번째 글은 한파에 섬처럼 흩어져 겨우 추위를 피할 곳에 숨어있는 노숙자들을 일일이 찾아다니며 도시락을 건네주는 사연이다. 혹시라도 노숙자를 못 찾고 지나칠까 노심초사하며 도시락에 작은 온기라도 남아있음에 감사하는 스님의 자애로운 마음이 난로처럼 글 전체를 훈훈하게 하고 있다. 평생을 원각사 무료급식을 위해 헌신했던 보살님의 죽음과 육신을 벗는 순간에도 자원봉사들에게 “어떤 힘든 상황이 오더라도 무료급식소를 지켜 달라” 당부했던 절절한 사연에는 눈시울을 붉어온다. 그리고 이어지는 스님의 헌시는 “내안의 사랑을 퍼주기도 전에 떠나가지 않도록 마음을 기울여 사랑할 일이다”로 끝맺는다. 미국에서 한 달간 법정 스님을 모셨던 이야기, 고졸하지만 아름다운 절 심곡암에서 느끼는 자연의 고마움과 수행자로 살아가며 느꼈던 단상, 18년을 함께한 공양주 보살과의 이별 등은 작은 깨달음을 주기도 하고, 소욕지족이나 고향의 어른들을 생각하게 하는 쉼표와 같은 순간을 선사하기도 한다. 그래서 글은 수많은 조각으로 나뉘지만 색색들이 모여 아름다운 조각보를 완성하듯 다른 맛 같으면서도 돌아보면 한맛이다.

김형규 대표 kimh@beopbo.com

[1616호 / 2022년 1월12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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