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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多)갈등사회에서 직시해야할 것

기자명 남춘호

한국사회는 다양한 주체 간의 갈등이 많은 사회다. ‘갈등공화국’이라는 말은 비단 어제 오늘만의 표현이 아니다. 2021년 6월, ‘IPSOS’라는 글로벌 조사업체는 ‘문화전쟁(Culture Wars)’이라는 주제로 28개국을 조사하였다. 조사 결과, 대한민국은 대부분의 갈등 영역에서 상위권을 차지했다. 진보 대 보수 갈등 87%(1위), 정당 간 갈등 91%(1위), 부자 대 빈자 간 갈등 91%(공동 1위), 남성 대 여성 갈등 80%(1위), 나이 든 사람 대 젊은 사람 간 갈등 80%(1위), 고등교육을 받은 자 대 고등교육을 못 받은 사람 간 갈등 70%(1위), 사회 계층 간 갈등 87%(2위). 이런 불편한 결과를 인용하는 것은 최근 발생한 현상에 좀 더 객관적으로 접근하기 위해서다.

지난 연말에 한 여고생이 보낸 위문편지가 사회적 이슈가 되고 있다. 노트를 찍어 대충 만든 편지지에는 “앞으로 시련이 많을 텐데 이 정도는 이겨줘야 사나이가 아닐까요?” “이제 고3이라 [힘든데] 이딴 위문편지 행사에 참가하고 있으니까 님은 열심히 하세요” “눈 오면 열심히 치우세요” 등이 적혀있다. 이 사실이 알려지자, 군인을 조롱했다고 느낀 사람들에 의해 각종 비난과 신상털기 등이 일어났다. 다른 한편에서는 군사독재 시절 문화로 일어난 사건이라며 이를 없애달라고 청와대에 청원하였다. 이후에도 각자의 시각만을 강조하며 갈등을 증폭시키고 있다. 

이 사건은 현재 한국사회의 갈등 구조를 반영하고 있다. 우선, 남녀 간의 갈등이다. 남성들에게 군대란 애증의 공간이며, 특히 젊은 시절을 의무적으로 희생해야 하는 혼란과 좌절, 공포의 존재라는 것은 사실이다. 그런 힘든 시기를 겪은 또는 겪어야 하는 남성들의 억울함이 터져 나오는 지점이다. 여성들은 기존의 관습적인 성역할이 여전히 남아있는지가 불만으로 터져나오면서, “왜 여고생이 위문편지를 써야 하는가?”라고 반문한다. 두 번째로 공동체와 개인 간의 인식으로 인한 충돌이다. 군대란 국가라는 최상위의 사회 공동체를 지키기 위한 무력집단으로, 철저한 조직사회이다. 이와 달리 한국의 교육시스템에서 학생은 철저한 개별 존재이다. 세 번째로, 세대 간 갈등이다. 사회적 논란이 확대되면서 세대 간 갈등으로도 해석되는 것이다. 여학생의 행동을 개인의 특성이 아닌 젊은 세대의 집단적 특성으로 보는 것이다. 아마 이외에도 더 많은 갈등이 복합적으로 내재되어 있을 것이다. 여기에 문제를 더 어렵게 하는 것은 감정 개입이다. 혹자는 군 생활이 어려운 것, 눈 오면 눈 치우는 것은 실제 벌어지고 있는 현실이므로, 감정적으로 과잉해석하지 말자고 한다. 반면 문제를 제기한 군인이 느꼈을 조롱에 군인 집단뿐만 아니라 일반인들조차도 상당부분 동의하고 있다.

이 사건에서 주목하고픈 점은 복잡성의 증대이다. 주된 갈등 외에도 다양한 갈등요인들이 추가될수록 문제가 더 복잡해진다. 다양한 원인들이 서로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이번 경우도 해프닝으로 끝날 수 있는 문제가 여러 요인들과 결합되면서 복잡성이 가중되며, 갈등이 심화되는 것이다. 

인간이 살아가는 사회에서 갈등은 어쩔 수 없이 존재하겠지만, 그 반대편에는 협력이 존재한다. 협력이 잘 이뤄지지 않으면 갈등이 되고, 갈등이 줄어들면 다시 협력이 강화되는 방식인 것이다. ‘열반경’에 나오는 맹인모상(盲人摸象) 일화에서는 6명의 맹인이 코끼리를 만지고 저마다의 의견을 강조한다. 만일 그들이 서로 협력하여 의견을 조율하였으면 어땠을까? 많은 부족함이 있겠지만, 여러 번의 시도를 통해 상당 부분 현실을 이해하는 것도 가능하지는 않았을까?

한국사회는 다(多)갈등사회이다. 이러한 갈등을 줄이기 위해서는 서로 다양한 측면을 이해하기 위한 대화가 필요하다. 마치 도돌이표처럼 반복될 것 같아도, 그 시도는 어색할지라도, 함께 현상을 분석하는 것만으로도 나아질 것이다. 이 과정을 자세히 기록한다면 비록 중단되거나 실패하더라도, 후배들에게는 좋은 자료가 될 것이다.

남춘호 한국산업개발연구원 연구위원
namchoonho@naver.com

[1618호 / 2022년 1월26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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