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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천 관음정사 주지 탄석 스님

일상에서 행하는 수행과 보시가 불자의 올바른 사회 회향 방법

망자 조문‧유족 위로하는 무외시는 자기 바로 보는 계기
무상의 의미 이해하고 일상서 불법 실천하는 힘 갖게 돼
항상 육바라밀 실천에 힘쓰고 10분 좌선으로 자기 점검

불기 2566년 부처님 성도재일(成道齋日)을 맞이하여 불자님들을 뵙게 되니 반갑습니다. 석가세존께서 6년의 긴 고행 여정 속에서 진리를 깨우치신, 그리하여 불교 교단이 태동하게 된 한량없이 경사스러운 날입니다.

제가 운수행각을 멈추고 이곳 충북 제천의 관음정사에 걸망을 풀고 부처님의 가르침을 전하는 포교에 원(願)을 세워 불자님들과 인연을 맺어 ‘묘법연화경’ 사경 수행도량을 일구어온 시간이 5년이 지났습니다. 이렇게 도량을 일굴 수 있었던 것은 모두 여러분 덕분입니다. 임인년 새해에도 불자님들 가정에 불보살님의 보살피심이 가득하여 코로나19를 극복하고 행복한 일상 이루시기 바랍니다.

코로나19의 감염확산으로 인하여 여법한 법석이 마련되지 않아 아쉽기는 하지만, 가정에서 ‘법화경’ 사경을 수행 지침으로 삼아 모두 함께 동참 입재하신 동안거도 어느덧 반철이 지나고 있습니다. 모든 분들께서 행복한 시간 속에 동안거 기간 잘 보내고 계시리라 믿습니다. 오늘은 여러분에게 두 가지를 말씀드릴까 합니다.

첫 번째는 “망자께 조문하면서 갖는 만남을 고마워하자”는 말씀입니다. 부처님께서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죽은 자의 얼굴에서 너 자신을 인식하라.” 이러한 말씀을 육바라밀의 보시에 연을 달아 말씀드릴까 합니다.

보시의 종류에는 세 가지가 있습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인 진리를 체득하여 많은 이에게 전하는 법보시(法布施), 재정적인 도움을 필요로 하는 곳에 후원하는 재보시(財布施), 외롭고 두려움에 고통스러워하는 이를 위로하고 공감하여주는 무외시(無畏施)로 구분하고 있습니다. 

이 시간에는 무외시에 관한 말씀을 전하려 합니다. 코로나19 감염확산으로, 또는 지병이나 사고로 불자님들 가까운 지인들 가정에서 상을 당하면 여러분들께서는 조문을 가십니다. 그때 어떠한 마음으로 장례식장을 찾으십니까? 아마도 유족을 위로하고, 망자의 마지막 길을 지켜드리기 위해서일 것입니다. 정말 좋은 마음을 내신 겁니다.

망자께서 가까운 지인이면 염습과 입관 할 때에 참석을 하시기도 할 것입니다. 저는 그동안 여러분들께 이런 경우에 “커다란 슬픔과 두렵고 외로움에 힘겨워하는 유족들을 위로해주는 것이 첫 번째 도리인데 이것이 보시 중에 무외시입니다. 적극적으로 도움과 위로를 드리세요”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코로나19의 감염으로 염려스러운 상황 속에 조문의 문화도 많은 변화가 있는 것 같습니다. 허례허식이란 거품이 걷어 내어지는 것은 좋은 변화이기도 합니다. 스님들께서 빈소를 찾아 망자에게 설법하는 의식인 시다림 또한 무외시입니다. 인연되어 받은 시주에 보답하는 기회이기도 하지요.

불자님들께서 재정적인 도움을 주고자 유족에게 전해드리는 조의금은 어떤 의미가 담겨 있습니까. 물론, 보편적 의미는 유족들께서 장례를 준비하시는데 재정적 도움을 주기위한 보탬입니다. 그러나 그것뿐이 아닙니다. 저는 망자께서 여러분과 인연된 시간에서 마지막 선물로 전하는 생사체험의 기회를 준 것에 대해, 여러분이 드리는 공부 값이라고 생각합니다. 

염습과 입관에 참석하여 망자의 마지막 얼굴을 대할 때 어떠십니까. 가까운 지인이라면 망자의 삶에 대해 대략은 아실 것이고, 그분의 인생행로에 마음속 점수를 주실 수 있을 겁니다. 하지만 그곳에서 보다 중요한 것은 마음의 거울을 통해 불자님 자신을 찾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 시간 이후 삶의 방향을 찾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예를 들면, 마음속 저 깊은 곳에 버려두었던 겸손이라는 위대한 스승을 다시 찾아 남은 삶의 시간 속에서 소중하게 간직 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또는 불자님 가정에서 자신의 존재에 대해서도 확인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는 불자님들께서 세연이 다하고, 유족들께서 시다림을 청하여 장례식장을 찾으면 기도하고, 염습할 때에 어린 손자‧손녀들도 함께 참석하기를 권합니다. 나이 불문하고 참석한 사람들은 시간이 지나면서 부처님께서 전하신 무상의 참의미를 이해하고, 좀 더 빠른 시기에 받아들이게 되어 생활 속에서 바른 힘을 갖게 됩니다. 그것이 생활 속에서 생로병사의 궁금함에 대한 부처님 공부를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사랑하고 아끼는 자손들이 이 세상에 펼쳐진 욕망의 늪에 빠져 허우적대는 젊은이가 되기보다, 사유하고 자신을 계발하여 그 시대의 당당한 젊은이가 되기를 원하시면 반드시 그리 하십시오. 그 젊은이의 미래는 억만금의 재물을 물려받은 이보다 더욱 빛나고 행복할 것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기회를 주신 망자에게 고마워하면서 극락왕생을 발원해 드리십시오.

두 번째는 염치없는 스님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염치의 사전적 뜻은 ‘체면을 생각하거나 부끄러움을 아는 마음’입니다. 20여년 전 제가 충북 진천의 어느 산골 수행처에서 몇 년 머무를 때의 일입니다. 여름철에 그곳에 작은 토굴을 마련하고 정진하면서 가을을 맞이하였습니다. 새벽정진 후에 뒷산 정상까지 포행을 다니곤 했는데, 어느 날부터인가 포행 중에 국유지에 있는 산밤나무 숲 옆을 지나가다 보니 알밤이 떨어지기 시작했습니다. 첫날은 몇 알을 주워 와서 토굴 마루턱에 앉아 까먹었는데 그것이 재미가 들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그 후로는 작은 자루에 가득 담아 오곤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마을의 노보살님께서도 아침 일찍 산에 오르시며 밤을 함께 줍다가 하시는 말씀이 추석명절에 제수용으로 필요해서 줍는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면서 “스님, 이 밤나무를 우리가 젊었던 시절, 이 마을로 시집와서 마을 사람들이 함께 심었습니다”라고 하시며, 1970년대에 국가사업으로 유실수를 장려했던 이야기를 들려주셨습니다. 그런데 근래에 다른 지역 분들이 와서 주워가는 일이 빈번해지면서, 그에 대한 불편한 마음이 있으셨던 것입니다. 저 또한 머쓱한 마음이 들어 내려오면서 노보살님댁 마루턱에 밤을 덜어 놓고 왔습니다. 그 후로 제가 “염치없는 스님네였구나”를 한동안 되뇌었던 적이 있습니다.

그 후로도 밤 줍는 재미는 계속 이어졌습니다. 다만 작은 자루에 3분의1 정도만 담아 왔습니다. 불자님들께서는 밤알이 3개인 이유를 아시는지 모르겠습니다. 첫 알은 싹을 틔워 밤나무로 성장할 몫이고, 둘째 알은 자연 속 모든 존재들의 몫입니다. 다람쥐 등 그곳에서 살아가는 생명들 말입니다. 마지막 셋째 알이 사람이 가질 수 있는 몫입니다. 참 자연스럽다는 표현에 적합하지 않습니까. 이러한 것이 참된 생태적 이치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우리 불자님들께서 법당에 모여 부처님 전에 삼귀의, 천수경을 소리 높여 독경을 한들 십선행(十善行)의 두 번째인 “남의 소유물을 함부로 취하지 않겠다”는 서원을 저버린다면 십악행(十惡行)이고 진참회를 해야 될 것입니다. 우리 사회에는 언제부터인가 소유의 기준이 불분명한 경우를 자주 볼 수 있습니다. 추운겨울이 지나 봄이 오면 산행 겸 봄나물 채취를 위해 산에 오르는 분들이 있는데, 그 중에 주변 산을 국유지라 생각하여 임산물의 주인이 등산객이라 여기며 필요 이상 마구 채취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그렇게 하면 안 된다는 것을 알면서도 하는 것은 훔치는 것과 같습니다.

이제 넓은 세상 속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을 말씀드려보겠습니다. 제가 머무는 곳 제천은 어르신들의 인구 비중이 높은 지역입니다.

코로나19 이전의 어느 날에 시내중심 버스정류장을 지나다가 맞은편의 광경을 보고 한참을 서있던 적이 있습니다. 차를 기다리는 분들이 30여명 되는데 가장 젊어 보이는 분이 60대 이시고 모두 그 이상 노령의 어르신들이어서 제게는 낯선 풍경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분들의 얼굴 표정은 숙제를 마친 학생처럼, 근심 없이 한가하신 것이 참 평화로워 보였습니다.

그분들은 오늘날 우리사회가 이만큼 발전하고 여유롭게 생활을 영위할 수 있기까지 가장 중심에서 땀 흘리시고, 20∼30대부터 청춘과 열정을 불사르시며 가정을 지키고 사회발전을 이끈 우리 모두의 영웅들이십니다. 언젠가 대학에서 사회복지학을 가르치는 지인이 이런 이야기를 전해주셨습니다. “80∼90세 되신 어르신들께 몇 살의 몸으로 되돌아가고 싶으냐고 질문을 했더니, 60대로 가고 싶다는 분들이 가장 많으셨습니다”라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이유는 자손들 뒷바라지 모두 마치고, 건강은 유지되어 어르신들 의지대로 활동하실 수 있기 때문이랍니다. 

여러분 요즈음은 한 두 자손만을 양육하시니 더욱 빨리 자손 뒷바라지를 마칠 수 있을 겁니다. 저는 그 이후 시간을 재가불자로써 육바라밀 실천에 더욱 힘쓰실 것을 권하고 싶습니다. 또한, 출‧재가를 막론하고 우리 불자들이 지금의 생활 조건을 만들어 놓으신 주변 어르신들에게 항상 고마운 마음을 표현하는 첫 번째 방법은 올바른 수행에 있다는 점도 잊지 않으시길 바랍니다.

그것은 그분들이 이루어 놓은 바탕을 공유하며 화합된 세상을 이루는 방법이 될 것입니다. 불자님들 모두 반야의 안목으로 무탈한 생활 영위하시고, 하루를 마치실 때 매일 10분 좌선 정진을 권해드립니다. 모두 성불 하십시오.

정리=강태희 충청지사장

이 법문은 제천 관음정사 주지 탄석 스님이 1월10일 부처님성도재일을 맞아 설한 법문을 요약 게재한 것입니다.
 

[1618호 / 2022년 1월26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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